고영광은 누구인가?
    
    고영광씨는 김산의 유일한 실자로 중국여인 조아평과
    사이에서 1937년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 성을 따라 고영광으로 불린 적은 있지만
    1945년 어머니 조아평이 재혼함에 따라 계부 성을 따라
    고영광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씨는1957년 천진, 난카이대학을 졸업하면서 하얼빈
    공대교원으로 재직하고 78년 베이징으로 이주해 국가계획
    위원회 과학 기술사로 근무했다
    그는 1945년 어머니 조아평을 따라 공산당 통치 지구에
    가서 공부 하면서 자신의 부친이 김산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981년 님 웨일즈와 편지를 주고 받고 그해에  중국어로
    번역된 부친의 전기문인 <아리랑>을 비로소 읽게 되었다
    그는 70년대 중반에서야 부친과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을 만나
    부친에게 씌어진 일본 간첩 협의가 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중국공산당 중앙 조직부에 이 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
    하기도 했다.
    이 결과 83년 고씨는 공산당 중앙 조직부로부터
   “김산의 처형은 특수한 역사 상황 아래서 발생한 잘못된
    조치였다.
    본 결의에 의해 그에게 덮어 씌워졌던 불명예가 제거 되며
    그가 지녔던 명예를 모두 그에게 되돌린다 이로서 그의
    당원자격은 회복된다”라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또한 이 조치로 인한 명예 회복이 이루워진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두아들과 함께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자신의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김산의 분신인 고영광이 장영광이 되었다.


  
  님 윌즈가 김산의 아들 고영광에게 보낸편지(축약)  

    존경하는 선생님
    오늘 아침 뜻밖에 당신이 띄운 편지를 접하고서 찹착한 심정을
    걷잡을 길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남아 길이 전해지는 거라면, 하나는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책을 출간해 후세에
    남기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당시 부친의 소원이 오늘에 와서
    성취된 셈입니다.
   [아리랑의 노래]를 소설이라 일컬음은 지당하지 않습니다.
   그 책엔 꾸면 낸 이야기라곤 없습니다.
   (중략)
   난 또 그에게 김산이라는 별명까지 달아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본명을 장지락이라고 알려주면서 자신의 원명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중략)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습니다.
   그는 [백의동포의 영상]이란 장편 소설을 집필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을 거짓 없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조국인민의 투쟁을 직접 도와 나서지 못함을 한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중략)
   1961년 난 [조선과 김산의 일생]이란 소설을 써냈고,
   아울러 그 책의 판권을 얻었습니다.
   (중략)
   그분처럼 그렇게 용감하고 완강하며, 일본인에 굴복을 모르는
   사람은 조선인중에서도 드물었습니다.
   그런 그를 일본침략자의 주구로 간주한다는 건 너무나도 터무늬
   없는 일입니다.
   (중략)
   나의 <아리랑의 노래>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더욱이 조선과 일본의 독자들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이 책자는 오늘날까지 줄곧 일본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책이고, 이제 이런 글을 더 쓸
   사람도 없습니다.
   (중략)
   그때 그는 그렇게도 흥분된 심정을 안고 나와 얘기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만간에 목숨을 잃으리라는 걸 각오 했고, 심지어
   폐결핵으로 숨질것도 각오 했습니다.
   내가 쓴 책이 그가 이 세상에 최후로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짧디 짧은 32년의 경력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에 대한 불공정한 심판은 이 책에 비극적 색채를 돋구었고,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를 더 심화 시켰습니다.
   달톤교수는 다음과 같이 쓴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내가 1944년 봄에 처음으로 읽을 때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때 난 미네소타주 화와이병영에서 일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 책은 나를 따라 바다를 건넜고, 대동아 전쟁의 초연에
   그을리기도 했다.
   그 책은 나로 하여금 자신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침략한
   조선,중국,그리고 기타 국가 인민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속에
   뛰어든 한 성원이었음을 깨닫게했다.
   우린 인종차별현상이 더 이상 지속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난 당신이 나와 계속 연계를 가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부친의 정황을 보두 밝히게 된다면 편지로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난 그런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그걸로 내 정상적인
   인간성을 굳히렵니다.
   불공정한 결과를 보리라 예상되지만, 이 역시 침통한
   사건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고 싶습니다.
   소원성취를 기원합니다.

 

   
 
   
   

 아리랑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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