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빛나는 생의 정점에서 동시대 또는 후대인들에게
   천부적 업적이나 추종할 수 없는 삶의 쾌적을 남기고 사라졌다면
   그는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일 역사인물 중에 오늘의 우리 앞에 다시 서주기를
   바라는 인물들을 들게 된다면 그런 인물을 꼽게 될 것이고,
   그 중에 반듯이 김 산(金山)이란 인물이 포함 될 것이다.
   33세의 짧은 생애을 불꼿처럼, 화살처럼 항일전선에서 사라져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산, 그는 참으로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저자에 의해, 의외의
   책 ≪SONG OF ARIRAN≫의 주인공 (주:194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벅 여사의 남편이 운영하는 뉴욕의 죤 데이 출판사)
   이다.
   이름 김 산은 위의 책을 펴내기 위해 님 웨일즈와 함께 지은
   가명으로 “金剛山”에서 딴 것이다.
   본명 長志鶴 외에 장지락·유정화·장북성·유 명 등 10여 개의
   가명으로 중국공산당 건립과 항일전선에서 활약한 인물로
   짧은 생애를 중국·시베리아·만주·일본으로부터 불어 닥친 침략과
   혁명의 폭풍을 맞으면서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 같이
   산 조선인 혁명가”이다.
   그는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고뇌와 좌절, 사랑과 사상의 피어린
   발자취”인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자 조선인의
   참된 자존심의 보루”이기도 했다.
   10대 후반, 3.1운동의 좌절을 체험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톨스토이적 인도주의에 매료, 심취하기도 했고, 다시 마르크스의
   나라 러시아로 가려다 기착한 만주 유하현
   삼원포(柳河縣 三源浦)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함으로서
   민족주의자로, 그리고 의열단에 가담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젖게
   되나 192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베이징 시(市) 당
   조직책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회영·이동휘·김약산(김원봉)·오성륜·김충창·이광수
   같은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을 접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7살에 당 일각에서 영어·일어·중국어·에스페란토어
   등의 외국어에 능통함이나 강직한 성격을 시기, 모함하여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1930년 11월 베이징에서 장개석 국민당의 비밀경찰에
   체포, 일본영사관에 넘겨져 1931년 4월까지 감방생활을 했다.
   김 산은 바로 이 때 절망의 수형생활에서 아리랑을 인식하게
   되고 감방의 벽과 기둥에 손톱으로 옥중가(아리랑)를 새겼고
   민족 수난사의 마지막 고개를 ‘열두고개’로 설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각오를 피력하기도 했다.

   아리랑옥중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첫 번째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드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
   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들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
   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금시계줄은어디로 갔나
   쇠수갑은 맞지를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감옥행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
   나 이제 생사 갈림길에 서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아리랑 고개에 간이역 하나 지어라
   집행인 기차를 기다려야 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리니

   이 노래는 조선의 정치범들이 자주 부른다. 1921년, 투옥된 한
   조선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어진 이 노래는 죄수 경험을 여러
   단계로 말하고 있다.
   즉 경찰에 의한 체포,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 <한강 펌프>라고
   명명된 물고문, 사형선고의 기다림, 그리고 다른 혁명가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종래의 열두 번째 고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승리 즉 아리랑의 열세 번째 고개를 쟁취할 것을 의미하는 마지막
   구절 등이다.
   간이역과 기차에 대한 언급은, 오늘의 죽음이 우선 고개 넘어
   교수대까지 걸어가야 했던 옛날보다 더욱 빠르게 그리고 쉽게
   이루어짐을 뜻한다.
   출옥한 뒤의 김 산은 더욱 금강석 같이 강해졌다. 그 강건함은
   님 웨일즈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졌다.
   “내가 거둔 오직 한 가지 승리는 나 자신을 이겼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와 같이 나의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단 한 가지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사람들의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나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대한 인내의
   한계와 심리상태에 대한 압력의 한계 모두를 최악의 방법으로
   실험 받았다.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시련이 닥치겠는가?”

   다음의 시는 위의 내용을 재확인시켜 준다.
   역시 그의 각오가 선연하게 담겨있다.

    살아있는 한은
    혁명의 길을 걸으며
    이 세상 적을 무찌르기 위해
    총 칼을 손에 들고
    빛나는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자!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미친 듯이 춤을 추자!
    강철과 같은 튼튼함은 우리의 진영
    아교와도 같은 단결은 우리의 대오(隊伍)
    쓰러지고 쓰러져도 끊임없는 돌격은 우리의 전술
    십이억 오천만의 억압당한 이들은 우리의 벗
    결단코 잘라 없앨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목이다!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피다!
    싸우자! 싸우자!
    내일이야말로 인터내셔널을!

    그러나 김 산은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운명의 날을
    맞게 된다.
    석방된 지 7년 후인 1938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일본 스파이
    (일본 특무)로 또한 트로츠키파로 오인을 받아 같은 해
    10월 연안의 항일군관학교에서 강의 도중 중국 공산당에 체포된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총살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중국 공산당 내부의 모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는 체포 당시의 중국 공산당 기록에 “아무런 자백도 받아
    낼 수 없는 배짱 좋은 놈”이라고 기록해 놓은 것과 일본 측
    조서에 “변절 가능성이 없는 자”라고 기록해놓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 한 가지는 1983년에 중국정부의 심의에서 중국 공산당의
    어떤 기록에서도 간첩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의해
    복권시킨 사실에서다.
    이로서 김 산의 사후 45년 만에 복권이 되어 그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김 산(金山), 그의 33년 짧은 생애는 당시 중국 혁명과정을
    취재하러 북경에 온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Nym Wales)가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소금처럼(like salt in water) 되어서는 안 된다"
    칼날 같은 각오로 항일투쟁을 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구술에
    따른 일대기를 쓰게 된다.
    (그래서 공동 저자로 표기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김 산이
    처형된 사실을 모른 채 1941년 미국에서 출판하였다.
    님 웨일즈는 그 존재 자체도 묻혀 있을 한 조선인 투사를
    “영원한 생명”으로 탄생시켜 놓았다. 그것은 김 산의 생애를
    ≪Song of ariran≫으로 담아 출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기구한 생애만큼이나 출간된 책도 그에
    못지않은 수난을 겪어 왔다. 출판 당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
    계열 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아 유통이
    금지되었고, 1954년에는 먼저 적국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1972년에는 미국에서 다시 재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의 생애를 다룬 책이라고 하여 출간할 수 없었고,
    북한에서는 연안파 인물이라는 이유로 기피되었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의 민주화 열기로 미국에서
    출간된 지 43년만인 1984년에야 완역, 출간하게 되었다.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로 귀향을 한 것이다.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그리고 이후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했던 이들(원서)과 70년대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밤을 밝혀 읽은 책
    (일어판)이 되었고, 80년대 민주화 과정의 사회 과학도들의
    필독서로 읽혔다.
    이 때에 철학자 신일철은 이 책을 말하여 “≪아리랑≫을 읽지
    않고 민족해방 투쟁사를 말한다는 것은 속빈 강정이다.
    이 책에는 님 웨일즈의 코리아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한국인
    김 산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정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감동의
    인간 드라마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책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한국의 항일투쟁 모습과
    조국에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한 청년의 장렬한 모습을 전했다.
    이로해서 김 산은 최근 재미작가 김영희선생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세계적인 지도자들에게도 알려져 있는데, 신부·신학자·
    고고학자로 현대 진화론의 대가로 꼽히는 떼아뜨르 샤르뎅은
    김 산을 “새 시대의 새 인간”이라고 평했고 큐바의 카스트로는
    김 산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민요 아리랑의 가치와 일제가 “위험한
    사상만큼이나 위험한 노래”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 등도 함께
    전했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진술도 담겨있다.
    아리랑의 탄압상, 전승실태, 사회적 성격 등을 언급한 것 중에
    아리랑의 성격에 대한 진술 대목만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In Korea we have a folk song, a beautiful ancient song which was created out of the living heart of a suffering people. It is sad, as all deep-felt beauty is sad. It is tragic, as Korea has for so Long been tragic. 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
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이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김 산의 생애와 진술은 번역판 출간만으로 진정한
    귀향으로 볼 수는 없다. 아직 그가 꿈꾸었던 혁명된 세상을
    맞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 자신 혁명노선의 자체적인 모순을
    지녔던 것이다.
    그것은 강대국 중국혁명의 성공을 통해서만 조선혁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소수 민족인 우리의 주체적인 힘보다는
    다수 민족인 중국인의 힘을 더 믿고, 더 의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김 산의 고결한 영혼을 더없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님 웨일즈 조차도
    “He believed Chinese. He was stupid.”란
    코멘트를 몇 번씩이나 한바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김 산의 한계였고 역시 오늘의 우리에게도 남겨진
    문제이다.
    그럼으로 김 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민족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김 산의 아리랑은 ‘미완의 노래’,
    ‘다 부르지 못한 노래‘인 것이다

   
 
   
   

 아리랑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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