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진행프로그램



  기미양(2005-10-26 21:42:01, Hit : 1764, Vote :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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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역사를 찾아서 진행(현재 진행중)

"kbs 역사를 찾아서 "진행(현재 진행중)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제1편>

                                 빗나간 프로젝트, 동북공정





                                        극본-이상락  연출-이상여





*시그널 + 타이틀

<해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을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신설된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의 진행을 맡은 김연갑입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없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요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동북공정'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며 한민족의 기상을 자랑했던 나라가 바로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 번도 우리 역사임을 의심해 본 적 없는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측의 역사 왜곡 공세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분통터질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 역사를 탈취

             하려는 그들의 부당한 시도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고구려  의 정체성을 차분하게 되새겨보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일이겠지요.

            고구려 705년, 그 당당하고 자랑스런 역사를 찾아서, 지금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음악>  (브릿지)

  

<효가>  (학술대회장-사람들 웅성)BG

<해설>  1993년 8월 11일, 중국 집안(集安)에서는 한국의 해외문제연구소와 조선일보사,

             그리고 중국 조선사 연구회가 주최하고, 롯데그룹에서 경비를 지원한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제1차 고구려 문화 국제학술 토론회였습니다. 이 토론회에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지에서 300여 명의 학자들이 대거 초청됐는

             데요, 한국에서 건너간 학자들만도 90명이나 되었습니다.

             나흘 일정으로 계획된 학술대회 중 종합토론이 벌어지고 있던 첫째날에 있었던

             상황입니다.

정인갑  (방청석에서)아, 잠깐만요, 여기 질문 있습니다!

사회자  아, 예, 방청석에서 질문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신분을 좀 밝혀 주시겠습니까?

정인갑  저는 북경 청화대학에 근무하는 정인갑입니다. 지금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주제와는 좀 동떨어진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현재 중국 당국이나 학계에서는 고구려사가 중국역사의 한 부분이다, 내부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해설>  애당초 그 학술대회에서는 고구려, 혹은 고구려사의 귀속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기획되지 않았었는데, 방청석에서 느닷없는 질문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 학술대회를 지켜보았던 서경대학교 서길수 교수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인서트-1.

    (11:06 한국에서 90명의 학자가 참석했어요.  굉장했습니다.  그래서 한 300명.  중국

    대만 일본 많이 갔단 말이에요.  북한에서도 오고.  그랬는데 그때 이제 우리 교포 중에

    우리 동포 중에 청화대학의 교수가 한 사람이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바보란 말이에요.  중국은 이미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다 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돈 대고 와서 앉아 있거든.  그래서 이 사람이 일부러 질문을 한 겁니다. 11:41)

<해설>  그런데 한국 측 참가자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그 질문에 대한 중국학자

             들의 답변이었습니다.

경철화  (마이크 켜고)아, 예. 저는 집안박물관 부관장 경철화입니다. 에, 중국 동북지방

            역사 및 고고학에 대한 연구성과에다 제 개인의 학설을 가미해서 답변하겠습니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서기 427년부터는 고구려가 조선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구려 문화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용, 아시지요? 전설의 동물 말입니다. 고구려 문화는

           중국 동북지방의 용(龍)문화에 속한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고구려족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의 하나였다, 이런 얘깁니다.

<효과>  (일부 사람들 크게 웅성거림)

*인서트-2.

     (12:23 한국 사람들은 90명이 갔지만 깜짝 놀란 거예요.  아무 소리도 못한 거예요.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라는 걸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하고 중국이 그러고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로서는 이건 뭐 답변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멍하니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에.  우리 동포 학자는  그걸 쇼크를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죠.  너희들도 좀 알아라.  중국이 이렇게 되고 있다 하는 것을.

    준비를 안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런 판인데, 갑자기 노인이 하나 올라가

    더니.  86세였습니다, 그때.  딱 올라가셔 가지고. 13:03)

박시형  (80대 노인)한 나라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법입니다. 과거의 고조선과

           고구려 땅이 오늘날 중국영토가 되었다고 해서 그 역사를 어떻게 중국사에 갖다

           붙여서 소수민족 운운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고구려는 옛날부터

           고조선, 부여와 함께 중국인들 스스로가 역사책에서 동이족이라고 해서 독립적으로

           지칭하지 않았습니까.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었다는 서술은 중국의 역대 어느 사서에도

           없어요. 증거가 있으면 대보시오!

<해설>  이렇게 반박하고 나선 사람은, 북한 김일성 대학의 원로 역사학자 박시형이었습니다.

            다시 중국학자가 반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심양에 있는 '동아연구중심'이라는

            연구단체를 이끌고 있는 손진기였습니다.

손진기  에, 우리들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상 고구려는 오랫동안 중국의 중앙 황조에 예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후예는 조선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뒤, 그 유민들 대부분은 오늘날 중국의 각 민족이 된 것입니다.

<해설>  한 번도 고구려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 한국학자들은

            그들의 그런 주장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학술대회의 영향으로

            중국 역사학계 연구의 흐름은, 이제 공공연히 '고구려사는 곧 중국사'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지요.

<음악>  (브릿지)



<해설>  그리고, 그로부터 11 년이 지난 2004년 7월.

아나운서 (라디오 뉴스)다음 뉴스입니다. 중국 소주 (蘇州)에서 열리고 있는 유네스코

              제2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 1일,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또한 이보다

              앞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인 '고구려 수도 및 귀족과 왕족의 무덤'도 문화

              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송 뉴스자료로 대체 가능)

<해설>  중국은 자국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북한과 공동으로 등재함

             으로써, 고구려는 변방에 있었던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국제사회에

             전파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사회과학원 등이 중심이

             되어서 중국 동북 변경 지방의 역사에 대한 일련의 연구작업으로 추진해온 프로

             젝트, 즉  '동북공정'이라는 말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한·중간에

            '역사전쟁'이라 일컬어질 만큼 뜨거운 외교문제로까지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인서트-3.  시민 인터뷰 테입 <동북공정 관련>

     -(남)중국에서 동북지방의 역사를 자기네 소수민족의 역사로 해서 역사를 편입하려는

      공산당의 계획?

     -(여)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세계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어요.

     -(여)글쎄, 자기가 좀 먹고 살만 하니깐 용트림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더 뭉쳐서 내 나라

       잘 지켜야지.

     -(남)중국정부가 우리한테 어필하는 거에 비해 우리정부가 중국정부에 어필하는게    

       너무 약한 것같은데 좀 더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더 강력하게 어필했으면 좋겠어요.

    -(여)고구려가 우리 거라고 배웠는데 갑자기 그러니깐 뜬금없죠.

    -(남)어차피 고구려가 우리 거라면 과다하게 나설 필요는 없고 일단은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거에 대해서는 대처…

<해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 중에는 애국심을 앞세워서 더 격한 주장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정부는 외교력을 발휘해서 중국측이 역사 왜곡 시도를 포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고구려사 연구를 더 심화해서 중국이 내세우는

             왜곡된 논리에 대응해야 한다, 대체로 이런 주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자랑하는, 우리 역사속의 고대국가 고구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인서트-4. 시민 인터뷰 테입 <고구려 시조/ 동명(주몽)에 대한 질문 부분>

     -(남)고구려 시조? 모르겠는데...동명성왕? 주몽이오? 고조선인가?  

     -(여)고구려 시조가 이성계 아니예요? 장수였다가 나중에 삼국통일하면서 고구려 시조가

           된 거 아닌가? 난 역사를 잘 몰라서..

     -(남)광개토대왕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옛날에 다 배웠는데 너무 오래돼서 생각이

         안 나는데? 장수왕 광개토대왕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여)고구려 시조요? 박혁거세 아닌가 모르겠어요.

<해설>  20세기가 낳은 대표적인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에게 고구려는 흘러가버린 '과거'지만,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사실(史實) 왜곡 시도에 직면한 상황은 '현재'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했던 시민 인터뷰에도 나타났듯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동안 고구려라는 과거와의 대화에 너무 소홀했던          것이 아닐까요.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는 지금부터 동북아시아의 강국이었던           고구려의 역사를 차분히 탐색해 나감으로써, 고구려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노력할 것이          다. 물론 중국측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의 왜곡과 허위도 함께 짚어          나가려고 합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자, 그렇다면 도대체 '동북공정'이 무슨 뜻일까요?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동국대 윤명철 교수의 설명입니다.

*인서트-5   테입<2>

     (38:35 중국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연구공정입니다. 정식명칭은, 그런데 약칭 동북        공정이라 그러는 것이고 동북이란 말은 우린 사실 써서는 안 됩니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이라는 것은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했을 때 동북지방이라는 변방을 얘기하는 것        이고요 우리 입장에서는 과거에 우리의 조선, 고조선이지요. 고구려, 발해가 시원했고        발전했던 그 땅을 얘기하는 것이고 세계사적으로 거기는 만주, 만추리아라고 부르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만주라고 부르는 곳을 중에서는 동북지방이라고 부르면서        오히려 한 지역이라는 것을 깔고 있는 겁니다. 39:15)

<해설> 보충설명을 하자면, 중국은 1986년부터 티베트를 중국의 일개 지           방정부로 예속시키기 위한 서남공정을 추진한 적이 있고, 서북지            방의 신강, 위구르, 몽골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서          북공정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동북공정이란 북경을 기준          으로 해서 동북지방에 존재했던 고구려, 발해 등의 모든 역사와 문          화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          러니까 동북공정이라는 말은 다분히 중국 중심의 용어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우리가 따라 써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고유명사가 돼버렸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          쩔 수 없이 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발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 시점          에서 동북공정을 강행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인서트-6. 테입<2>

    (02:20 중국에서는 조선족의 정체성을 강화한다고 한다든지 또는 탈북자들이 넘어오       고 북한에 어떤 정치적인 변화가 있을 때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입장이라고 얘기를 하       는데.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반대로, 북한에 어떤 정치적인 변화 내지는 위기가 있을        때 중국이 한반도 북쪽, 지금 북한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 뭔가 개입한다든지 영향       력을 행사한다든지 이런 측면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앞으로 남북통일이 됐을 때 간도       문제와 같은 영토 문제 국경 문제, 이런 거에 대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02:57)

<해설>  고려대 최광식 교수의 진단입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됐을 때 중국은 통일된 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중국 동북지방의 연고권을 확실히 해둠으로써 통일한국의

             만주지방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사전에 차단하자, 그런 의도가 깔려 있다는

             얘깁니다.

             거기다가 윤명철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동아시아 전체의 새로운 질서 편성을

             염두에 둔 보다 장기적이고 원대한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은 남미까지를 포함해서,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울타리로 해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거기 대항하기 위해서 유럽은 이미 EU로 통합이

             됐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서트-7. 테입<2>

    (49:59 우리의 운명을 미주세력과 아니면 유럽세력에 맡길 수는 없잖아요. 거기에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 지역입니다. 동아시아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권이 될 수밖에 없어요. 동아시아 공동체가 수립이 되는 겁니다. 저는 이미

     200년도에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동아시아는 머지않은 장래에 연방이 탄생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통일한국, 일본, 중국 이런 나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체가

    하나로는 연방이 탄생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문제가 생길까요 당연히. 50:33)

<해설>  당연히 세 나라 중에서 누가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만주지역이 현재의 자국영토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국 영토

             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둠으로써, 새로운 질서로 편성된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다, 이런 거 대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라는  분석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이기도 하고,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미래 문제이기도 하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얘기지요.

<음악>  (브릿지)





<해설>  자, 그러면 이제부터 고구려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화 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전에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중국측의 역사 왜곡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990년도부터 고구려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 중국을 드나들면서 고구려사 왜곡의 진행과정을 관찰해온

             서경대학교 서길수 교수는, '고구려 정체성에 대한 중국의 연구 현황과 논리'라는

             논문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도돼 왔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그의 논문을 중심으로 시기별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동북공정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짚어보기로 하죠.  

             어떤 나라의 역사인식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정부당국의 검인정을

            받아서 발행하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1980년까지 30년 동안은 중국 역시 고구려사가 한국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 발행한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대학의 역사교재에

            실린 내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효과>  (타이핑 소리)BG

낭독자  (F)'고구려는 조선반도 북부의 노예제 국가였다.'

           (타자기 손잡이 왼편으로 옮기고)'수나라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은  수와 당의

           대외 침략전쟁이었다.'

          (타자기 왼편으로)'고구려는 중국에서 세워졌으나 고구려인은 국경 너머에 있는

          한 민족이다'

<해설>  그리고 60년대 들어 네 차례에 걸쳐서 중국과 북한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고구려

             유적 발굴 작업을 했는데, 당시 두 나라 사이에 고구려의 정체성을 두고 논란을

             벌인 적이 한 번 도 없었습니다.

             같은 공산권 국가로서 한국전쟁을 함께 치렀던 혈맹관계였기 때문에 굳이

             고구려를 중국사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특히 1965년 5월부터 2개월여에 걸쳐 진행됐던 요령성 심양시의 유적발굴 작업을

             통해 북한 학자들은 출토된 유물 상당부분을 북한으로 가져갈 수 있었고,

             광개토대왕비의 원석탁본도 입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간의

             밀월관계는 그 발굴작업에 대한 보고서 때문에 깨지고 맙니다. 서길수 교수가

             중국측 관계자를 통해 들었다는 얘기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인  발굴은 공동으로 하되, 발굴 보고서는 발표하지 않기로 우리 중국과 조선간에

            약속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인 1966년에 조선에서 일방적으로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발굴 보고서'라는 걸 발행 했어요. 그 뒤로는 양국 학자들간에

            단 한 번도 교류가 없었고 학술지 교환마저 끊어버렸지요.

<해설>  이후, 1975년까지 중국의 고구려 연구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발표되었던 20여 편의 논문이래봤자 고구려 유적지에

            종사하고 있는 고고학자들의 발굴보고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65년부터 75년

            까지 10년 동안은 중국에서 고구려에 대한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되지 않았던 것

            입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1978년, 중국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중국이 개혁 개방화 정책

             노선을 선언한 것이지요. 이 때부터 고구려 연구가 양성화되기 시작하고 1981년

             에는, 이전부터 주장했던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낭독자  (F)중국은 현재뿐만 아니라 2000년 전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현재 중국 영역 내에 있는 주변 소수민족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구성원으로서,

            중원 대륙의 통일, 분열에 상관없이 중원 왕조와 항상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연계를 가지며, 중국 영역의 일부를 구성하고 중국사에 공헌한 것으로 본다.

<해설>  그러니까 이전에는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에 있을 때에만 중국사의 일부로 파악

             했지만, 이제는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주장을 하고나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하면서 이런 주장을 들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요.

             서경대 서길수 교수의 설명입니다.

*인서트-8.

     (15:03 공산주의 상태에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같은 인터내셔널리즘에 의해서 형제국가

    기 때문에 국경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개혁 개방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

    들이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55개 소수민족입니다. 그게 8%라고 그러지만

    그게 1억이 넘습니다.  그리고 수로는 1억밖에 안 되지만 영토로 봤을 때는  전 영토의

     60%를 차지합니다.  바로 그 중국 자체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을 끄집어낸 겁니다. 15:41)

<해설>  한편 이 무렵 북한은 주체사상에 입각한 우리 역사 개설서인 '조선 전사'를

             새롭게 발간하기 시작합니다.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1979년부터 1992년에 걸쳐 펴낸 이 역사개설서는

             총 34권과 2권의 연표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사해석을 둘러싼 북한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조선전사는 당초 김일성의 70회 생일인 82년 4월 15일을  기해

             완간할 목표로 편찬 작업이 추진되었는데, 79년부터 82년까지 33권이 발간됨으로써

              1차 발간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은 고구려사를 다른 조선 전사 제3권

             에는 대외투쟁에 관한 내용을 담았는데, 고구려의 반침략적 애국투쟁정신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부각

             시키기 위해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 문제에 큰 비중을 두었던 것입니다. 중국은

             고구려의 영웅적인 대외투쟁의 대상, 즉 적국이었던 셈이지요.  

             1985년도에 중국은 이 조선전사를 번역해서 학계에 소개하게 되는데, 북한의

             조선전사가 번역 소개되고 나서부터 중국에서 고구려에 대한 연구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인서트-9.

    (18:58 해방돼서 1965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논문이 20편이 나와요, 고구려에 대해서.

    20편에 대부분 발굴 보고서입니다.  실제로는 그게 큰 논문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65년부터 75년까지 단 한 편의 논문도 안 나와요.  문화대혁명기. 75년부터 85년까지

    한 90편 정도 나옵니다.  그때 이제 상당히 연구 시작 되죠.  80년대부터 막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85년도에 이 조선전사가 번역되고 95년까지 10년 동안 350편의 논문이

    나와요.  거기서는 이것에 대한 반대 논문을 써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때부터.  

    어마어마하게 나왔어요. 19:48)

<해설>  그러나 중국은 1990년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축적된 고구려 관련 연구 성과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방국인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 당국의 지침때문이었습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맺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을 타고 한국 관광객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가는, 중국관광 붐이

             일었던 거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어딜 가나 애국심

             하나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효과>  (관광버스 멈추고)

            (사람들 내리는) / 바람소리

관광객1  이 만주벌판이 왕년에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우리 땅이잖아.

관광객2  그럼. 광개토대왕이 호령하던 우리 땅이지. 언젠가는 다시 찾아야지.

관광객1 어이, 태극기 가져왔지?

관광객2  그래. 백두산 올라가서 태극기 흔들면서 대한민국 만세나 한 번 부르고 가자.

<해설>  관광객들의 이런 행태가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들 식의 애국심을 충동질

             했을 것이고, 동북공정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인서트-10.

    (58:09 바로 그것이 저쪽이 동북공정을 시작하고 역사 왜곡을 하는 데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거든요.  그러면 그러기 전에 우리는 그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진행을 하고 어떻게 연구를 했고, 파악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지금도 마찬가지

    예요.  연구 성과가 아직도 파악이 안 됐어요.  그러면 그런 것을 투자를 하고 연구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다봐야 하는 것이지, 그건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일 원도 대 주지도 않으면서 거기 가서 쓸데없는 짓들만 한 겁니다.  무슨 배에다가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압록강에다 띄우고.  이런 일을 굉장히 많이 해요. 이거 전부

    약점으로 기록해 놨습니다, 중국에서.58:49)

<해설>  이때부터 중국 각지에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각종 연구단체들이 줄줄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국학자 손진기가 중심이 되어서 '심양시 동아연구중심'이라는 민간단체

             가 결성되고, 통화사범대학에 고구려 연구소가, 길림성 사회과학원에 고구려연구

             중심과 조선·한국 연구소가, 그리고 동북사범대학에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이

             세워집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 고구려 문제를 중점연구과제

             로 입안한 것도 바로 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인서트-11.

    (36:41  96년에 사회과학원에서 고구려 문제를 국가의 중점적인 중점 연구 과목으로

    채택을 합니다.1996년이 되면고구려 눈제가 국가 사업이 된다는 얘깁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거예요.  많은 사람은 동북공정이 되면서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미 여기서 다

    된 겁니다.  그리고 1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 가지고 97년 말에 이미 여기에

    대한 기본 분석과 방향이 다 끝났어요.  97년 말에.  현장 답사도 다 끝내고 가만히

    가지고 있었습니다.37:28)

<음악>  (브릿지)



<해설>  1997년부터 고구려 고분벽화를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해오던 북한은 고분벽화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 역시, 중국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지요. 그런데, 2001년도가 되자 북한은 평양의 동명왕릉

             주변의 고구려 고분과 평안남도의 덕화리 고분군, 남포지역의 약수리 고분군과

             쌍영총 등 고구려 고분 63기를 잠정목록으로 유네스코에 제출합니다.  그러자,

             고구려 문화유산 등록 신청을 선점당해버린 중국은, 문화부 부부장, 우리 식

             관제로 말하자면 문화부 차관을 부랴부랴 평양으로 피견합니다.

중관리  에, 고구려 문화유산은 조선 땅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고구려의 초기 수도였던

            졸본성도 우리 중국에 있고, 집안지역에도 수많은 고구려 유적이 있습니다.

북관리  그렇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중관리  그러니까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을 할 때 우리하고 같이 하자는 얘깁니다.

            우리 중국쪽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정비할 시간을 달라는 얘깁니다.  2년쯤 후에

             함께 신청합시다.

북관리  공동등재를 하자는 얘깁니까?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인서트-12.

     (40:42 문화부 부부장이 급히 평양으로 날아가요.  2001년에.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가 가지고, 중국에도 문화재가 있으니까 이걸 같이 등록을 하자.  공동등재를

     하자.  공동 등재라는 것은 북한에서도 반대를 했는데, 공동 등재를 했을 경우에는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 되니까 북한은 할 수가 없었단 말이에요.  이것은 아주 굉장히

     이것을 북한에서 거절했었던 것은 중국으로서는 굉장한 타격이 되는 거죠.  그리고

     만약의 경우, 2002년도에 세계 유산이 돼 버리면.  적어도 세계 유산이 되면 200개의

     나라에 한 줄씩이라도 다 나갑니다.  세계 유산이 되면.  그러면 자기들이 지금 20년

    동안 역사 왜곡을 했고, 한참 자기들도 신청하려고 하는 판이잖아요.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건 완전히 닭 좇던 개가 되잖아요.  굉장히 화가 났어요, 중국으로서

     는.4 1:49)

<해설>  고구려유적에 대한 공동신청이 무산되자 중국당국에서 가정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기 위해서 개발해왔던 논리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고대중국 고구려 역사총론'이 그것이었

             습니다. 흑룡강교육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에는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들과, 고구려 연구에 대한 지침들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그 동안 북한을 의식해서 대외적으로 내놓지 않았던 그들의 주장을 이제 공식적

             으로 드러낸 셈이었습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그리고 2002년 2월, 동북공정이라는 특별 프로젝트를 중국 변강사 지연구중심에

             설치합니다. 지금까지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는 중국의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다뤄

             져 왔는데 이제부터는 전국적인 과제로  천명하고 나선 셈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출범한지 불과 몇 달 뒤인 7월9일부터 13일까지, 관련학자 1백여 명을 참여시킨

             가운데 고구려 전반에 관련된 특별토론회를 갖고 한꺼번에 무려 70편이 넘는

             논문을 쏟아놓았던 것입니다. 중국으로 하여금 동북공정을 서두르게 만든 데에는,

             중국동포에게 법적 지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한국의 움직임도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고려대 최광식 교수는 얘기합니다.

*인서트-13. 테입<2>

      (01:16  2001년에 남한에서 재중동포에 대한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된 게

     중국을 자극하고, 북쪽에서는 2001년에 또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중국으로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뭔가 국가적인 대비책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에도 고구려를 중국사라고 하려는 프로젝트가 있긴

     있었지만 그건 동북삼성의 지방정부 차원이라고 할까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다가

     2002년 2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주도

    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으로 된 것이 차이인데. 02:05)

<해설>  한편, 유네스코 유산위원회에서는 북한이 2001년도에 신청한 고구려 유적을

             현지 답사하는 등 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2002년에 열린 유네스코 유산위원회

             제27차 총회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효과>  (회의장-웅성)

의장    에, 북한이 신청한 평양 소재 동명왕릉을 비롯한 고구려 유적들은 관리 보존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를 정비하고 보완할 때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보류하기로 결정한다.

<효과>  (의사봉 3번 두드리는)

<해설>  그런데 한 가지 미심쩍은 대목은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유적을 심사하는 심사위원

             에 중국학자가 끼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상당수 한국학자들은, 중국이

             외교력을 발휘해서 북한의 고구려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한편,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하던 2002년도에 중국의 조선족

             학생들은 평소에 받지 않던 생경한 교육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연변대학 등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역사학자들과 꾸준히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서경대 서길수

             교수의 경험담 한 토막을  들어보지요.

<효과>  (다이얼 돌리는)

서길수  안녕하십니까? 저 서길수입니다.

교수     (F)아 ,예, 또 오셨군요.

서길수   이번에, 고구려 시대의 산성에 대한 자료조사를 좀 하려고 왔는데, 오늘 시간

             되시면 저녁이나 같이 하시지요. 제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교수     아, 만나고는 싶은데 그게 좀…서 교수께서 우리 학교 당국에 허락을 좀 받아주신

            다면 모를까 움직이기가 좀 그렇습니다.

서길수   아니, 저를 만나는데 학교당국의 허가를 받아요?

교수     아, 보통 사람이면 몰라도 서교수는 고구려를 연구하는 한국학자 아니오.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기가 좀 그렇습니다. 동북공정이다,  3관 교육이다 해서 분위기가…

사길수    3관…교육이오?

<해설>  중국당국이 조선족 자치주에서 조선족을 상대로 실시하도록 내린 지침이 바로

             3관 교육이었습니다. 조선족에게 민족관, 조국관, 역사관을 주입하라는 지시사항이

             떨어진 것이지요.

*인서트-14.

     (52:38 조선 민족은 중국 민족이다.  조선족은.  조선족 역사는 중국 역사다.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다.  하는 것을 당과 학교에 교육을 시켰어요.  이것은 굉장히 우리로

     봤을 때는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한 군데도 보도를

     안 했어요.  얼마나 웃기냐 하면 매일 신문, 일본 매일 신문에 보도가 되니까 전부

     그거 받아서 쓰는 거예요.  이건 정말 매스컴이라는 게 이런 게 책임이 있는 거예요.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이런 문제들은 말이에요.  그거 하나도 밝히지 못했던 거예요.

     53:21)

<해설>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어떤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시키지 않는 교육을

             유독 조선족 학생들에게만 하도록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조선족의 반발로

             이른바 그 3관교육이라는 것은 곧  유야무야 되고 말았지만, 중국 당국이 고구려

             사를 자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그 동안 중국은 고구려사를 남의 나라 역사로

             여겨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은 물론 학생들도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시피했습니다. 그래서 동북사범대학의 동북강역민족연구중심이라는 연구

             단체는, 고구려에 대한 쉬운 읽을거리를 개발해서 학생들과 일반시민에게 제공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2003년 2월, 중국도 유네스코에 자국내에 있는 고구려유적을 세계 유산으로

             신청합니다. 그 해 9월에 심사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6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지요. 중국은 집안시의 유적들을

             정비하는 데에만 우리 돈으로 6백여억원, 환인 쪽에도 수백억의 예산을 투여하고,

             문화부차관과 공산당 고위간부까지 현장에 내려가 문화재 정비사업을 진두지휘

             합니다.  

<효과>  (불도저 등 중장비 부산하게 공사하는)

<해설>  그들이 6개월 동안에 진행한 유적지 정비사업은 그야말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공사라기보다는 군사작전이었습니다. 유적지 부근에 거주

             하던 주민들의 이주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서 국내성 안에 있던 인민정부의

             시청 청사를 우선 철거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그 무렵에 유적답사단과

             함께 현지 취재에 나섰던 한 일간지 기자의 취재기 한 토막을 들여다볼까요.

낭독자  (F) 전세버스가 통화에서 집안으로 향하는 동안 승용차 한 대가 미행했고, 집안시내

            호텔에 투숙한 후에도 중국 기관원으로 보이는 감시원이 계속 답사단을 따라다녔다.

            장수왕릉 인근에 있었다는 군부대는 물론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주변 400여호의

            민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20년도 더 된 비각을 새로 고치고, 방탄유리까지 설치한

           광개토대왕비 주변에는 감시원 4명과  감시견 4 마리가 배치돼 있어 살벌한 분위기

           마저 감돌았다.

*인서트-15.

     (45:59 광개토대왕릉하고 광개토대왕비 사이에는 400호를 갖다가 뜯고.  그 다음에

     거기다 초지를 작성했어요.  그리고 국내성 서쪽도 300호, 아파트까지 다 뜯어내고

     거기다 초지를 작성했는데.  두 가지를 사용했어요.  가장 빨리 나는 것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자운영. 있죠, 클로버.  아주 빨리 자라는 거 있죠.  그거.  처음에는 잔디를

     몇 군데 심었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몇 군데로는 안 되겠으니까 밀밭을

     만들려고 밀을 심은 거예요.  밀이야 며칠 있으면 바로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전부

     밀밭으로 만든 거예요.  막 빨간 황토흙으로 해 놓으면 갑자기 했던 게 드러나잖아요,

     이게. 46:50)

<해설>  그리고 지난 2004년 7월. 중국 소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제28차

             총회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유적과 북한이 신청한 유적 모두가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되었던 것입니다.

<음악>  (브릿지)



<해설>  그렇다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주장한 논리는 어떤

             것일까요? 그들이 내놓은 주장의 왜곡과 허구성은  앞으로 고구려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차차 구명해 나가겠습니다만, 우선 여기서 요점만 간추려서

             소개하기로 하지요.

낭독자  (F)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중국 땅에 세웠으니 당연히 중국 역사다.  

<해설>  고구려가 세워진 곳이 한나라의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 땅에 세웠으니 당연히 중국 역사라는 얘깁니다.  

낭독자  (F) 고구려는 중국의 중앙정권과 신하로 예속되는 관계였다. 중앙정부로부터 관직을

            받고 공물을 바쳤다. 따라서 고구려는 독립국가가 아니고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해설>  조공과 책봉 관계야말로 중국학계에서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할 때 가장

             자신있게 제기하는 이론입니다. 우리 학자들은 이 조공과 책봉에 관한 연구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 비해서 중국은 오히려 초보 단계라고 얘기합니다. 무엇보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는 '영락'과 '연가'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중원정부의 조공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패자임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고대국가 사회에서 조공을 주고받았던 것은 외교적인 한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 분야를 연구해온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낭독자  (F)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의 유민들은 어떻게 되었나? 일부는 중원으로, 일부는

           돌궐로, 일부는 발해로 들어가서 중국 각 종족에 융화되지 않았는가. 대동강 이남의

           일부 고구려사람들만 신라에 귀속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갈래 민족이지 조선족이 아니다.

<해설>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경내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의중국에 포함되고

             나머지 일부만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주장입니다. 옛 고조선의 자리에 고구려가

             세워졌고, 고구려가 멸망한 자리를 한 사군이 점령했다가 뒤이어 발해가 들어섰

             으며, 발해를 멸망 시킨 것은 거란족의 요나라지 결코 중원정부가 아니지요. 보다

             근본적으로 얘기하자면 고대 역사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국과 역사상 중국의 중원에 존재했던 중원정부는 구분해야 하겠지요.

낭독자  (F) 고구려는 고려를 이어받지 않았다. 고구려를 오랫동안 고려라고 불렀기 때문에

            같은 나라로 잘 못 인식된 것이다. 왕건은 신라김씨 계통으로서 고구려 고씨의

            지위를 계승한 게 아니다.

<해설>  그렇다면  고려명장 서희가 담판으로 요나라를 물리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서트-19.

      (27:33 서희 장군이 소손녕이하고 싸웠던 게 고구려예요.  소손녕은 고구려가 멸망

      하고 발해가 됐는데 그 발해를 우리가 멸망시켰으니까 우리 땅인데 너희가 왜 쳐들

      어오냐.  그 다음에 서희는 우리는 이름도 고려, 고구려 때 고려라고 했습니다.  

      고려라고 했으니까 똑같은 이름을 쓰니까 너희 동경도 우리 땅이다, 이렇게 나온 거거

      든요.  이렇게 했을 때 중국은 끼어들지도 못했어요.  적국이었으니까 요나라도.  그

      당시로서는 요나라를 쳐부순 사람이 영웅이었고.  지금은 자기 나라 역사로 해 놨고

      웃기지만 그 당시 국제적인 관계로 봤을 때는.  그리고 송나라의 송사에서도 이것을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28:15)

<해설>  그런데, 중국측은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논리가   군색해지자

             자신들의 정사(正史)인 송나라 역사서마저 틀린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중국측은 이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낭독자  (F) 역사상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친 것은 대외침략전쟁이 아니고 중국 민족

            간의 전쟁, 즉 국내전쟁이었다.

            한반도 북부가 한국의 일부분으로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5세기에 고구려

            가 평양으로 천도했다고 해서 조선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니다. 고구려는 두 나라로

            나위어서 귀속할 수 없지 않은가. 오늘날의 한중 국경은 한민족이 북쪽으로 확장

            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북부지역도 역시 중국의 역사다.

<음악>  (브릿지)



<해설>  중국이 고구려사가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논리들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중심 사장, 혹은 중화제국주의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를 자기나라가 아닌

             오랑캐로 취급해서 동이전으로 남겨두었는데 이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려대 최광식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지요.

*인서트-20    테입<2>

     (04:55 동이전이라는 것은 동이 남만 북적 서융 해서 주변의 오랑캐를 전부 다르게

     불렀는데.  그것은 자기의 역사가 아닌 다른 오랑캐, 즉 타자로써 인식한 것이죠.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고 스스로 그런 인식과 그런 서술을 한 것이죠.  몽고 같은 경우

     에도 중국 스스로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은 내몽고고 자기 밖에 있는 것은 외몽고라고

     하지만, 사실은 몽골 입장에서 보면 몽골 공화국이 사실은 내몽고고 밖에 있는 중국

     땅에 있는 게 외몽고인데.  중국 중심의 사관을 바로 이런 데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

     다.  05:34)

<해설>  안팎이 뒤바뀐 내몽고 외몽고라는 호칭만 하더라도 그들의 이른바 중화중심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측이 들고 나온 이 공격적인 역사왜곡 공세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까요? 한국의 고구려에 대한 연구 인력과 실적은 중국에 비해서

             턱없이 미약하다는 보도가 있었고, 이런 보도는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주기

             도 했는데요,

             고구려연구회가 자료를 수집해서 집계한 바에 의하면, 중국의 경우  고구려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네 명에 불과하다고 그나마 그 중 세 명은 조선

             족이라고 합니다.  거기 비해서 한국의 경우 고구려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만 서른 두 명이고, 석사 학위자는 198명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에

             대한  연구인력과 실적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제 학계가 할 일은, 기왕에 축적된 이 다양한 성과를 기반으로 해서,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대응논리 개발에도 힘을 써야 한다는 점이

             겠지요. 저들의 주장에 맞서서, 그렇다면 우리도 만주나 간도를 당장 찾아오자는

             식의 맞불작전은 우리 역사 지키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인서트-22. 테입<2>

   (03:27 아, 그럼 우리  그 지역도 우리 걸로 되겠다, 영토를.  이렇게 소위 맞불작전을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 영토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중국이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을 빌미로 해서 우리 역사를 더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런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고구려의 웅혼함 고구려의 강인함 이런 것들을 우리가 이어받

    아서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 시켜서.  지금은 문화영토 시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고

    분벽화에 나타나는 다양성, 나타나는 디자인이라든지 이런 걸 우리가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 시켜서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독특한 문화 상품으로 개발한다든지 이런 쪽으로

     한차원 높여서 대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04:19)

<해설>  물론 일반 국민들도 고구려의 역사가, 잊어버려도 그만인 전설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모태라는 점을 인식하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

             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희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가

             그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악>  (엔딩)

*시그널 + 클로징









                      나오는 사람들



정인갑(조선족 학자)     홍진욱

사회자                         이재웅

경철화(중국학자)          곽윤상

박시형(80대 북한학자)   김계원

손진기(중국학자)           진웅

아나운서                      이미향

관광객1                        김대중

관광객2                        신찬혁

중관리                          이광수

북관리                          손정성

의장(유엔)                    윤동기

교수(조선족)                 홍진욱

서길수                          김계원



해설자                          김연갑

낭독자                          최하나          

운전사                          최창석






삼척mbc 민요기행 해설(현재 진행중)
우리노래기행(2000년 10월~2001년 10월 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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