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9:04, Hit : 655, Vote : 62
 2007-09-14 신용하 교수의 ‘아리랑’ 해석에 대하여 174호

최근 인문학의 위기론에 대한 대안으로 학제간의 융합론 또는 통섭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 결과로 학계의 원로들이 전공의 틀을 벗어나 거시적인 문화론 차원에서 새로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 한 예가 근래 <동아일보>  연속기획물 <신용하의 새로 쓰는 한국문화>를 집필한 신용하(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교수의 활동이다.

즉, 2003년 이 기획 기사와 금년에 또다시 이어 같은 신문에 연재한 <다시 보는 한국역사>이다. 그런데 전공을 벗어나 인접분야 논지를 자신의 전공에 적용시키다 보니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논의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역시 신용하교수의 논지에서도 그런 예가 확인되는데, 바로 2003년 발표한 글 중 아리랑의 어원을 다룬 <아리랑>(下)에서이다.  

  먼저 신교수가 제시한 부분을 보자
  
  “아리랑’은 무슨 뜻인가? 아무도 모른다. 현재까지 수긍할 만한 해석이 없었다.
한 연구논문을 읽었더니 아리랑의 ‘뜻은 없으며 흥을 돕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고 쓴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신용하교수의 새로 쓰는  한국문화, 아리랑>(下), 신용하, 동아일보 2003-01-15)

요지는 한 연구자가 조흥구설  또는 여음설을 제시했는데, 사실 이  주장은 ‘한 연구자’의 독자설이 아니라 민요학계의 다수설 내지 통설이다. 한국음악사전, 대한민국 예술원, 253쪽 그런데 이를 가소롭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러한 설을 신교수가 이렇게 한마디로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아리랑의 연원을 떠나 ‘아리랑’이란 음가(音價)를 대상으로 할 때 이 여음설은 공감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경복궁 중수공사(1865~1872) 이후에 강원도아라리와 문경아라리의 ‘아리’ 또는 ‘아라리’, ‘어리’ 또는 ‘어러리’에 고개‘령’(嶺)의 첨가와 음전(音轉), 변이(變移)를 거쳐 ‘아로롱’(이승훈(1756~1801)의『만천유고』중〈農夫詞>)·‘아라성(충북 중원아라성),아라렁(H·B. 헐버트 채보 아라렁) 등, 유사음의 노래들이 형성되고, 이에서 다시 1910년대에 이르러 ‘아리랑’(1910년대)으로  정착되고, 1926년 나운규 영화<아리랑> 개봉 이후 ‘아리랑’으로 정형화 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이 ’아-리-랑‘이란 3음만은 여러 음운 현상을 거처 형성된 음소의 결정체임으로
뜻 없는 것이다. 순전히 조흥성 또는 향성(響聲)성의 이유로 민중적 합의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신교수는 이 이론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글에서는 “오래 탐색해 왔으므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필자의 견해를 밝힌다.”라며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사실 주의주장에서 ‘조금이라도’ 라는 표현은 어색하기 그지  없다.)

“문제의 구절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경기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또는 사투리로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에
나오는 ‘아리랑’· ‘쓰리랑’·‘아라리’·‘아리랑 고개’ 같은 말의 뜻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아리랑’의 ‘아리’의 첫째 뜻은 ‘고운’의 뜻이고, ‘랑’의 뜻은
‘님’이다.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아리+다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몽골어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용하교수의 새로 쓰는 한국문화, 아리랑>(下), 신용하, 동아일보 2003-01-15)



요지는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 ‘아리랑 고개’를 전제로 이중에 ‘아리’와  ‘랑’을 어원의 근간으로 보고 ‘아리+랑’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한국어와 몽골어로  해석하니 ‘아리’는 ‘곱다’이고, ‘랑’은 ‘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이라했고, 자신은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아리’(가슴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고 했다. ‘쓰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라고 강조사 ‘라’를 넣는 것처럼 ‘가슴아리’는 ‘가슴아라리’ ‘아라리’와 같다”고 했다. 그리고 글의 끝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한국인들이사랑하고 소망하는 ‘곱고 그리운 님’ ‘아름답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모두 ‘아리랑’으로 상징화되었다”
이는 아리랑의 성격을 ‘사랑의 노래’로 본 것인데, 이 자체만으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아리랑’의 어의가 주장대로 이기 때문에 형성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금년 3월 <다시 보는 한국역사> 연재 예고 기사에서 2003년 신교수가 주장한 논지를 반영하여 “-아리랑-의 어원이 ‘아리땁다’와 ‘마음이 아릴만큼 사무치게 그립다’는 뜻”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결국 <동아일보>는 신교수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가소로운’ 기존설을 딛고 다수설로 또는 통설로 인정받을 수 있는 탁견이라고 단정한 것이 된다.  


당연히 어떤 누구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하나의 설로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원로학자가 다른 분야의 통설을 비하하고, 자신의 가설을 단정적으로 언론을 통해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땅히 지적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80년대 이후  독립적인 어원 연구를 기피하는 민속학계나 국악계의 관행 때문인지, 이에 대해 무반응, 무대응이다. 아리랑의 어원 문제가 가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신교수의  주장을 탁견으로 공감해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1934년 10월 7일자에서
김규은이 “아직 이 노래의 생긴 내력과 ‘아리랑’이란 그 말의 뜻을 안다고 하는 이가 없으니 웬일일까요?”라는 문제 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아리랑을 독립적인 장르로 인식한1930년대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또 외국인이 아리랑의 어원과 그 뜻을 얼마나 많이 물어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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