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9:41, Hit : 552, Vote : 64
 2007-09-17 영남아리랑의 재발견(2) 176호

영천, ‘새로운 아리랑’의 탯자리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귀향하게 된 영천아리랑. 이 노래는 아리랑의 생명력과 그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 보배로운 노래다. 이를 기념하여 경북 영천지방에서는 음반을 발매하여 배포했고, <영천아리랑축제>와 <아리랑미술제>로 까지 발전 시켰고 금녕에는 전국 최초로 독립적인 아리랑경창대회로 까지 컨텐츠화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통문화의 현재적 가치화로 지역공동체문화로 육성시키고 있다. 그럼으로 ‘강인한 생명력과 역사성을 담은 영천아리랑에 의한 문화컨텐츠’로 재탄생 하고 있는, 그래서 영천지역은 ‘21세기형 아리랑’의 ‘탯자리’가 된다. 아리랑과 연고가 있는 전국 여러 지역이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된다.
그런데 이런 영천아리랑에 대한 이해가 일반화 되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글은 제1회 아리랑경창대회 축사의 자리를 빌어 영천아리랑에 의한 형태의 컨텐츠가 이뤄지게 된 배경과 당위성을 재확인하고 연구를 촉진 시킨다는 뜻에서 영천아리랑의 형성에 따른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영천아리랑’의 ‘영천’과 ‘용천’은 별개
1930년『조선』이란 총독부 기관지에는 <정읍신태인아리랑>과 <순창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아리랑의 사설 중 전자에는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가, 후자에는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 / 거름손이나 하는 놈는 제자품팔고” 라는 사설이 있다. 이 두 자료의 ‘용텬’ (용천)은 ‘질알’이라는 비속어가 함께 쓰이고 있어 문맥상으로도 욕설인 ‘용천’이 분명하다.  
그런데 영천아리랑 후렴(고정부)에도 얼핏 보기에는 유사한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고개로 날넘겨 주오”가 나온다. 여기에는 ‘질알’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오”라는 전형적인 후렴 후행과 함께 쓰인 ‘아리 쓰리형’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럼으로 이때의  ‘영천’은 지명 경북  ‘영천’ 이지, 위의 두 자료에서와 같이 욕설  ‘용천’ 이 아니다.
결국 두 자료의 ‘용천’과 영천아리랑의 ‘영천’은 전혀 다른 별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일부 논자들은 위의 두 아리랑의 사설을 제시하며 “근래 용천을 경북의 영천으로 이해하여 이 노래를 <영천아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라고 주장 한다. 이는 논리적으로나 민속음악의 속성상으로나 문제가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에 대한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의 이유를 들어 시정하고자 한다.
  
    첫째는 전라도 지명을 쓴 <순창아리랑>과 <정읍신태인아리랑> 자체와 문제의 사설(후렴)
              이 지역적 기층을 이루고 전승력을 확보한 아리랑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기록 이외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랄)인가 용천인가’가  다른 민
              요의 일부 사설로 쓰인 예가 없진 않지만, 이른바 전승사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같은 아리랑의 사설과 후렴이 영향을 주어 영천아리랑의 후렴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오”로 전이되었다거나, 또는
            ‘질알 용천’에서 전이되어 ‘영천’아리랑이 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는 경상도 욕설로 잘 알려진 이 ‘지(랄) 용천났네’를 지명과 환치시켜  ‘지역’ 아리랑으로
            부른다는 것이 공동체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의 문제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이고
            관용적인 표현이긴 해도 말이다. 이러함에서 오히려 영천 지명을 쓰는 ‘아리랑인가
            쓰라린가 영천인가’를 전라도의 정읍이나 순창 지역의 어떤 제보자 또는 기록자가
           ‘지(랄) 용천났네’로 대체 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김지연이『조선』에 게재한
           내용을 일부 첨삭하여 5년 후 단행본으로 출판한『朝鮮民謠아리랑』에서 후자의
           후렴을 “아리랑인가 질알인가”를 “아리랑인가 ‘쓰리랑인가”로 수정하여 수록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본다. 이 전이의 역방향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부정할 근거가 있는가이
           다.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의 두 가지는 지역 정서를 감안하여 문제를 제기 한 것이다. 다음은 기록 문제를
           제기해 보기로 한다.

    셋째 영천아리랑이 경부 영천 지역의 소리임을 명시적으로 밝힌 기록 중에는 1954년
            북한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가 발행한『조선민요곡집 1』이 있다. 여기에는
           총 31곡, 그 중 아리랑,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영천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6종을 곡보와 함께 수록하고, 영천아리랑에 대해서는 ‘윤봉식창, 영천지방 민요’라고
            밝혔다. 바로 여기에 북한이 굳이 ‘용천’을 남측 지명으로 고처 수록할 이유가 있었겠
            는가? 이는 일제강점기 때 중국 동포들이 부르던 것이 남북 분단 기간 북한과의 교류
            로 전해졌든가, 抗米援助(한국전쟁) 기간 중국동포들의 참전으로 북한에서 불려지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 반세기 전의 기록과 중국과 북한과 일본총련 사회에서의
            전승상을 어떻게 부인 할 수 있는가?

     영천아리랑의 역사성 부인 못해

   넷째는 이 영천아리랑을 이미 1970년 남측 학술논문에서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구 계명대가 발행한 『東西文化』(제4집)에 김진균교수가 <韓國音樂民謠의
             類型的 考察>에서 영천아리랑과 경상도아리랑을 ‘경상도’ 민요로 텍스트화 한 것이
            다.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북한 문헌에서 자료화 한 것으로 보는데, 계명대 교수로
            서 영남지역 아리랑을 허수이 취급할리 없었을 것임을 감안하면, 이 사실을 어떻게 부
            인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메나리조에다 특히 중국과 북한에서 불려지는 경상도아리
            랑의 존재가 영천아리랑의 존재를 상보해 준다고 보아 연구자료화 했다고 보는 것이
           다. 이를 부인 할 수 있는가

    다섯째는 중국 또는 러시아 접경지대에 거주하던 동포들이 부르는 광복군아리랑과 독립군
           아리랑의 곡조가 전자는 밀양아리랑, 후자는 영천아리랑 곡조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다. 이는 독립군과 광복군이 활동하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불렸다고 볼 때 중국동포
          사회에서 밀양아리랑과 영천아리랑이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것이 된다. 이를 어떻게
          부인 할 것인가?
    
      여섯째는 1935년 12월 <조선일보>에 연재한 김사엽(金思燁)의 논문 <新民謠의 再認識>
             에서 ‘永川아리랑’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는 점이다. 김사엽은 경북 칠곡(漆谷) 출신
            으로 경성제대 법문학부 재학 중이던 1935년 10월 같은 신문에 <慶北民謠의 特異性
            >을 16회에 걸쳐 연재한 이로 영천아리랑 2수의 사설을 제시한 것은 오늘의 영천아리
             랑과의 동일성 여부를 떠나서 이미 영천 지명을 쓴 아리랑이 존재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논문에서 제시한 ‘永川아리랑 一節’은 다음과 같다.

아주까리 피마자는 일년에 한번/ 지럼머리 단장은 나날이 하네
물여다 놓고서 거렁지 보니/ 촌갈보 되기도 원통하다

위의 사설에서 후렴이 수록되지 않고 곡조 표기가 없어 그 정체성을 드러내 주지 못한 점이 유감이지만, 이는 설령 ‘용천’이 ‘영천’으로 轉移 되었다 해도 민속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오늘의 영천아리랑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용천’을 사설에서 쓴 정읍신태인아리랑이나 순천아리랑을  ‘용천아리랑’으로 바꿔 불러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되돌릴 수 있는 논리가 없다면 백번 양보하여 영천아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가?

그럼으로 이 문제의 본질은 과연 현 ‘영천아리랑’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이냐에 있다. 영천에서 ‘귀향 한 영천아리랑’으로 부르지 않아야 할, 또는 못 할 이유를 제시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러함에서 “근래 용천을 경북의 영천으로 이해하여 이 노래를 <영천아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사실 민요에서 소위 ‘곡명의 자극전파설’에 의한다 해도 욕설인 ‘용천’을 전이시켜 아리랑의 곡명으로 쓴다는 것은 좌중을 웃기기 위한 일회적인 가창은 몰라도 공동체적인 합의를 획득하기는 어려운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설령 ‘용천’을 쓰는 ‘용천아리랑’이 있다하더라도 오늘의 경북 영천의 영천아리랑과는 별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이다.

    ‘21세기형 아리랑’의 전형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논란조차도 영천아리랑으로서는 일종의 역사성, 시대상을 반영하는 아리랑의 속성상 긍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 귀향의 역정이 고난이었듯이, 그러나 그것을 넘어 아리랑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영천지역의 공동체 문화로 거듭나고 있음은 바로 ‘새로운 아리랑’, ‘21세기형 아리랑’의 전형을 영천아리랑이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영천 지역은 우리나라 새로운 아리랑의 탯자리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이번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적인 <아리랑경창대회>를 영천에서 개최한다는 사실이 이를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 아니겠는가.
-끝-       김연갑/(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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