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9:57, Hit : 537, Vote : 68
 2007-11-27 북한의 아리랑 인식

북한의 아리랑 인식
              

북한에서도 아리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920 년대의 아리랑’, 그러니까 영화<아리랑>에서 비롯된 주제가<아리랑>을 말한다. 북한은 이 아리랑을 모든 아리랑의 맨 앞에, 또 중심에 놓고 있다. 그런 만큼 북한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정형화된 해석을 해 놓았다. 관련문헌과 음반, 기타의 자료에서 이를 축출하면 대략 다음의 열두 가지 정도가 된다.  
모든 아리랑의 총칭으로, 모든 아리랑의 대표로 표현된 것들이다.

① 아리랑은 1920년대 새로이 형상화되면서 인민들의 노래로 되었다.
② 조선 인민의 정서와 넋이 담겨 있고, 민족의 력사가 비켜있는 노래이다.
③ 아리랑은 우리의 민족 정서를 진하고 풍부하게 구현하고 있다.
④ 아리랑은 그 담고 있는 풍만한 민족 정서로 하여 우리 인민들의 깊은 사랑 속에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
⑤ 통치배들에 대한 원한, 그리고 행복한 생활에 대한 지향과 염원이 절절하게 반영되어 있다.
⑥ 아리랑은 새로운 생활적 내용을 담고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여 왔다.
  ⑦ 아리랑의 통속성이야말로 가장 큰 인민의 재보이다.
⑧ 아리랑은 슬픔과 기쁨도 있다고 하여 애환의 가락으로 일러온다.
⑨ 아리랑 후렴구의 선율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누구나 한번 들으면 쉽게 기억하고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⑩ 3/4 박자로서 후렴이 먼저 오는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⑪ 아리랑은 우리 시대(1976년)에 와서 관현악곡<아리랑>의 소재로 쓰이게 됨으로 해서 주체음악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⑫ 아리랑은 1988년 녀성독창과 방창으로 다시 형상화되면서 가사 일부가 부분적으로 수정되었다.
⑬ 아리랑은 지역적 범위를 벗어나 전국 각지에 파급되어 다시 국경과 지역을 넘어 조선 민족이 살고 있는 곳 어디에서나 애창되고 있다.
⑭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훌륭한 우리 민요들은 국제적 친선과 연대성을 위한 힘 있는 수단들로 되고 있다.
①과 ②는 아리랑의 위상을 말한 것이고, ③은 담고 있는 내용을 말한 것이다. ⑤와 ⑥은 아리랑의 기본 성격을 말한 것이고 ⑦은 아리랑 최고의 가치를 통속성에 두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곧 대중성 또는 민중성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⑧・⑨・⑩은 아리랑의 구조와 형식이 통속성을 담보한 조건임을 말했다. ⑪과 ⑫는 북한에서 민요(아리랑)의 노랫말이 개사되는 시점과 관현악화하게 된 시점을 알려 준다. ⑬은 아리랑의 전승 범위가 전 세계임을 말한 것이고, ⑭는 아리랑의 가치가 연대성에 있음을 말 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아리랑에 대한 함축적 표현은 곧 아리랑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니까, 총론상으로는 우리와 그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북한아리랑연구』, 김연갑)
결과적으로 아리랑은 통사적으로 4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경복궁 중수기 이전에 불리던 토속요로서의 아리랑, 그러니까 ‘아라리’와 그 변이형인 ‘아라성’의 존재이다. 둘째는 근대요로서의 아리랑으로 경복궁 중수 이후로부터 불려지는 ‘강원도아리랑’과 ‘아르렁계(한일병탄조약 전후까지의 아리랑을 총칭한 것이다. 그러니까 1912년 총독부 조사에 나타난 지역 아리랑 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잡가집의 출현 이전이 되기도 한다)와 ‘긴아리랑’ 등 통속적인 아리랑이다. 셋은 잡가집시대의 아리랑으로서 한일합방 이후 발행된 잡가집에 수록되어 불려진 아리랑들이다.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한 대목이다.  그러니까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탄생의 시·공간적 배경이다.
넷은 영화 <아리랑>의 탄생으로 주제가아리랑이 부각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토속아리랑도 중앙에서 함께 부각되게 되는 시기로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이다. 이 시기는 항일적인 노래말과 잡가식의 사설이 공존하고 동시에 새로운 장르로의 파생이 있게 되는 시기로 대전환의 계기이다. 다섯은 해방 이후의 시기로 열린 장르로서의 아리랑, 그리고 ‘민족의 노래’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시기이다. 아무래도 해외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의 망향가로 간절함으로 불려진 시기로 연대성(連帶性)이 중심 정신으로 불려진 시대이다. 이 연대정신은 대동정신이며 이는 아리랑의 대표적인 민요적 속성이다.

“우리 노래가 내 소리이고, 내 소리가 우리노래인 그런 경지에서 아리랑은 노래 불려진 것이다. 이같이 ‘집단성과 개인성의 긴장된 공존’은 <아리랑>에서 가장 풍부하게 또 전형적으로 실천된 민요의 속성이다.”(『소리여, 노래여, 아리랑이여』·김열규)

경복궁 중수공사를 아리랑이 맞은 최초의 문화·사회사적 충격이라면, 의병전쟁과 동학전쟁과 일한병탄조약은 사회·정치적 충격이 되어 잡가집 시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대두 될 수 있었다. 그리고 3.1운동과 이에 대한 일제의 지능적인 탄압으로 잠복된 민족의식을 영화<아리랑>은 저항정신을 기저로 하여 충적된 민족의식과 통합을 갖게 했다. 이것은 나운규가 대낮에 영화 <아리랑>이란 폭탄을 던져놓자 민중들이 서울 한 복판과 지방 곳곳에서 이를 폭발 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영화의 폭발력은 ‘아리랑’이란 굉음으로 터져 나와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을 되 살려 냈다. 이것이 아리랑이 맞은 세 번째 충격이다. 그러니까 이 세 번째 충격은 새로운 매체, 뉴미디어와의 결합인 것이다.
결국 영화<아리랑>은 “민요 아리랑의 이쪽과 저쪽을 가늠하는 높으나 높은 고개로 솟아” 잡가시대의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을 통합하여 대표성을 부여한 본조아리랑으로 위상을 변화시켜 ‘시대의 노래’로의 대 변신을 하게 했고, 급기야 ‘민족의 노래’로의 지위를 얻게 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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