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5:00:37, Hit : 562, Vote : 67
 2008-02-27 아리랑의 위상은?

                    
                                        김연갑/(사) 아리랑연합회 이사

지난 25일 오전에는 남측의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고, 26일 저녁에는 북한 동평양 극장에서 울려퍼졌다. 전자는 국악관현악에 의한 박범훈 작곡 <시화연풍 아리랑>, 후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여주 최성환작곡 <관현악곡 아리랑>(일부)이었다. 장소와 연주 배경은 달랐어도 두 작품의 주제 선율과 가사는 본조아리랑, 1926년 10월 개봉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이다. 이 주제가는 나운규가 14살에 회령, 청진간 철도 부설 노동자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듣고 ‘가슴 절절해’ 깊이 담고 있다 영화로 재현하며 그 주제가로 형상화 해 낸 것이다. 회령 출신 나운규가 고향에서 들은 민요 아리랑을 12년 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영화<아리랑>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혁명이었다. 판소리 <춘향전>이 읽는 ‘소설’ 장르로 확산됨으로서 판소리 전체를 오늘의 위치에 있게 했듯이,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은 당시로는 첨단 뉴미디어인 ‘영화’ 장르로 확산시켜 50여 종의 모든 아리랑을 우리 민요의 대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르를 확산시켜민요의 대표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혁명이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총독부 청사(전 청와대) 환공 기념식 날을 택해 개봉을 서둘렀고, 이를 알아차린 총독부가 영화 선전지 모두를 압수하자 나운규는 일단의 악대를 동원해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다 두고/ 동량의 쪽박이 왠일이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 간다”라는 주제가를 부르며 종로통과 광화문통을 돌며 선전을 핑계로 시위를 했다. 이렇게 개봉한 영화는 서울 유학을 왔다 3,1운동에 가담했다 일경에 폭행당해 정신병자가 되어 고향에 온 주인공과 아들의 성공만을 기대했다 낙담한 부친, 그리고 고생으로 집안일을 꾸려가는 여동생이 동양척식회사의 사주를 받은 지주의 고리채 채근에 시달리는 상황, 드디어 이들은 견디다 못해 살길을 찾아 만주로 떠나려는 어느날, 빗 대신 여동생을 뺏으려다 거절당한 지주의 앞잡이가 여동생을 겁탈하려하자 주인공이 낮으로 찌르고 제정신이 들었으나, 결국 일경에 잡혀가며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돌아올테니 나를 위해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줄거리였다,
그러니 관객들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술을 깨물고 눈물로 주제가를 따라 불렀다. 나운규는 이렇게 관객들을 동원해 순식간에 영화<아리랑>을 항일 민족영화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그 주제가를 부르는 관객들을 항일 운동을 하는 비장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지 않고 주제가를 담은 전단지를 압수하고, 순사를 임검석에 앉혀 변사의 입을 단속하는 총독부의 탄압을 영화를 확산시키는 힘으로 역이용해서 영화는 전국극장을 돌고, 산간벽지 ‘운동장 영화’로 까지 되어 나라 안을 휘돌았으니 살길을 찾아 만주로, 일본으로, 러시아로 떠난 동포들은 아리랑은 곧 조국이요, 고향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운규는 이렇게 영화 한편으로 그 주제가<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고난을 극복한 한민족의 상징으로 되게 했다.
뿐인가? 남북은 제3국에 단일팀으로 출전 할 때는 단가<아리랑>을 함께 부르기로 합의 했고, 세계 145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구성원 모두는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꼽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만족이 그 민족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노래를 ‘민족의 노래’로 공인하는 노래를 갖고 있는가? ‘민족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의 이 위상을 나운규가 바로 영화<아리랑>으로 마련 한 것이니 어찌 혁명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아리랑에 대해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가? 그 많은 민요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아리랑은 아니다. 그 많은 국공립 전수관과 기념관이 있어도 아리랑은 없다. 문화재청은 지정된 무형문화재만 소관이라며 지원할 도외시하고, 문광부는 거의 1년 동안 <아리랑세계화위원회> 구성안(案)을 요청하고 무응답이다. 국보1호 남대문이 그렇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나?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어느 결에 어떻게 될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설마 아리랑이?
탁월한 보편성으로서의 ‘세계적 브랜드’, korea의 아이콘, 이런 아리랑을 문화정책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하는가? 이 기본적이 질문에 문광부는 10여년간 무응답이다. 과연 아리랑은 ‘비문화’인가?  

아는 오늘의 위상 ‘민족의 노래’, ‘세계의 노래’가 되게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이 후렴구는 주제의 환정적인 효과와 상호 효과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제창성을 갖는데 대중의 유인과 흡입으로 공감을 촉발시키는 기능을 한다
논리 이전에 우리를 하나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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