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5:03:14, Hit : 560, Vote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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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9 "아리랑 문화연표" 외 8종의 저서 탈고



1979년 11월, 군 복무지였던 강원도 철원으로부터 아리랑 답사를 시작한 (사)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가 아리랑과 함께 한지 금년으로 30년을 맞았다. 이에 지난 달 초, 영화<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을 답사하고 온 김연갑 이사를 만나 그간 아리랑으로 살아온 30년을 회고 하는 자리를 가졌다.

* 기자 - 우선 이번 중국 여행의 목적과 성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김 -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대남방송에서 들었던 아리랑이 너무
        생생하여 복학을 앞두고 전국 아리랑 기행을 시작 했어요. 바로 강원도 철원에서 부터지
        요. 그로부터 금년이 아리랑과 함께 한지 30년이 되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이를 기념
        한다는 마음으로 나운규 감독의 고향인 회령 지역을 먼 곳에서라도 보려고 중국 삼합 지
        역과 중국 생활 동안 독립사상을 고취한 명동학교, 그리고 영화<아리랑>이 상연된 용정
        의 <조기극장> 등을 답사했습니다.  나운규가 12살 때 회령-청진 간 철도노동자들이 부
        르는 아리랑을 듣고 가슴에 담았다가 영화<아리랑>을 구상하게 된 그 철도를 직접 보
        니 내가 그의 입장이 되어 묘한 감상에 젓기도 했습니다.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기자 - 1986년 자료집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발행하고, (사)아리랑연합회를 결성, 활동
        했으니 우리나라 아리랑역사에 획을 그은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동안 아리랑과 관련하
        여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김 - 글세요. 나로서는 어떤 하루도 아리랑을 생각하지 않고, 말 해보지 않은 날이 없으니 아
        리랑으로 살았다는 것에 스스로 자인을 합니다. 그렇다고 성과도 자랑 할 만하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우선, 아리랑을 일반 민요나 유행가나 또는 의식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노래라는 것을 말 하고 다녔어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한민족아리랑연합회>라는 단체
        도 결성했고, <아리랑선언문>도 발표했고, <아리랑축제>도 해봤고, <아리랑賞>도 제
        정, 시행하고, 남부 단일팀 단가 합의를 기념하여 <아리랑 주간>도 제정했고, 북한 <아
        리랑축전> 관련 업무도 위탁받아 실행 해 보았고, 일본·미국·러시아·중국 등 교민사회
        아리랑 상황도 조사해봤어요. 그 결과 아리랑은 독립된 장르로 인식해야 하고, ‘역사에
        의 의탁성향’이란 속성을 가진 ‘역사의 노래’이고 ‘노래의 역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 - 그동안 저술 활동도 있으셨지요?
  김 - 예, 자료집을 세 종 냈고, 2006년 『아리랑시원설연구』까지 6권을 냈습니다.

*기자 - 이후 작업은 어떻 내용인지요? 당연히 아리랑을 주제로 한 작업들 이겠지요?
  김 - 30년을 기념한다고 나름은 노력을 했습니다. 집문당과 국학자료원과 논의를 마친 것은
        개론서인『아리랑의 세계』외에 8권입니다. 국악신문에 연재한 짦은 글을 모은『아리랑
        은 아리랑이다』를 일어로 번역하여 낼 예정이고, 특히 늘 마음안 먹고 있다 2년간 집중
        적인 서지작업 끝에 탈고한『아리랑문화연표』가 잇습니다. 그리고 아리랑의 전체상을
        조감한『아리랑통사』(상권),『19~20세기 초 문헌소재 아리랑 연구』,『일제강점기 아
        리랑 연구』,『디아스포라아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 한 아리랑에 대
        한 언술을 정리 한『아리랑 말·말·말』(한·영·일)과 기행문『나운규의 길을 걷다』가 금
        년 말부터 출간 예정인 책들입니다.

*기자 - 기대가 됩니다. 우리 노래 중 가장 주목받는 노래가 아닌가 십네요.
         그러면 이번에 탈고 한 주제 말고 또 준비하는 것들도 있겠지요?
  김 - 예 물론 저희 연합회 차원에서 준비하는 건데요. 자료 총서입니다. 물론 기미양 이사 등
        의 공동 편찬이 되는데, 몇 군데서 채록 작업은 이뤄지고 있는데, 문헌 작업은 없는 것 같
        아요. 그래서 영인 작업 등이 있습니다.

*기자 - 대북 사업은 어떤 진전이 있는지요? 2005년 <아리랑축전>과 관련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잇는데요?
  김 - 예, 1차적으로는 남북 공동의 『아리랑대전』 출간입니다. 사설편과 자료편으로 이미
        2007년에 기본적인 작업을 마쳤는데, 이는 남북이 마주 앉아 논의하여 편집해서 발간해
        야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도 기본적인 의견은 나눈 상황입니다.

*기자 - 주제를 좀 옮겨 볼까요? 몇 년전에 김이사님도 참가한 문화재청의 아리랑 지정문제
          얘긴데요. 당시 발의한 것도 김이사님인 걸로 아는데요?
  김 - 예, 역지 춘향격입니다. 아리랑을 정부에서 알아달라는 뜻에서 모 의원에게 정책질의서
        를 제시했는데, 당시 유홍준 청장이 ‘문화재 지정도 가능하다’고 국정감사에서 답변하
        여, 이후 두 차레나 보고서가 마련됐는데, 1차 보고 이후 저는 빠졌는데, 결론 없이 끝났
        어요. 왜 않되고, 왜 이 것으로 종결해야 하는지 누구도 말하지 않고 묻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 기자 - 주최가 모호하고 공식 명칭도 모호한데, 얼마 전 아리랑국제 심포지움이 있었잖아
        요? 이 모임도 김이사가 건의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목적으로 시작 된 건가요?
  김 - 물론 발의도 내가 했고, 1년 정도 준비 과정에도 참여했지만, 그동안 문광부가 아리랑을
        주제로 사업을 하려했다가 폐기 한 예가 3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화가 났습니다만,
        그래서 이번 일이 성사되어 사업이 진척되는 것에 대해 고무 됩니다. 내가 30년 해 온
        일을 의미 있다고 국가에서도 한다는 것이니 얼마나 뿌듯한 일입니까.
        원래 발의자는 이미 고정관년을 갖고 그를 관철하려고 하여, 본 사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
        가 많다고 해요. 또 연합회 일과 자유로운 저술 활동 등을 위해 빠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
        했습니다. 스승님이신 최서면(국제한국연구원)박사님과 이종학(초대 독도박물관장)
        선생님 모두가 관(官)과 거리를 두어야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희 단체에서도 <아리랑세계화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만, 사설 단체에
        서 세계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부분은 전적으로 기대
        는 부분입니다.(웃음)

*기자 - 또 정책 건의도 많이 하였지요? ‘아리랑치기’ 용어 사용하지 않기는 실효를 거두셨지요?
  김 - 예,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원래, 일제시대
        때 일본의 형무소에서 조선 소년범을 다루는 은어(隱語)였다고 해요. 매우 부정적인 용
        어지요. 최근에 발의 한 것은 청와대에 광화문 광장 명칭에 대해 <아리랑광장>으로 하
        자는 제안, 외교통상부에는 해외 교민사회 한글보급 기관 명칭을 <아리랑의 집>으로 하
        자는 것과 종로 3가 단성사에서 창덕궁 사이 길을 <아리랑거리>로 하자는 안을 서울시
        청에 냈습니다. 단성사는 1926년 10월 1일 나운규 감독의 영화<아리랑> 개봉 외에 5종
        의 <아리랑> 영화가 개봉 된 극장이고요, 창덕궁은 1894년 정월 <아리랑타령>을 고종
        과 민비가 들은 곳이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서 제안 했습니다.

* 기자 - <아리랑> 방송국 이름도 제안 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참, 북한 <아리랑축전>
            참여에 대해서도 여러 차래 주장을 했지요? 진전이 있나요?
  김 - 나는 아리랑의 속성 또는 정신이 저항·대동·상생이기 때문에 북한의 <아리랑축전>
        내용에 대해 일면 ‘아리랑적’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유명한
         옥류금 연주, 그 유명한 백고산의 아리랑 같은 명 연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기자 - 금년 바쁜 일정은 무었인지요? 송년회 때 초청 해 주십시오.
  김 - 예, 물론입니다. 남은 일은 <아리랑상> 시상이 있습니다. 이번 제 4회에는 일본의 젊은
        연구자가 수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일과 출판사 다니며 교정보는 일입니다. 또 <박
        물관연구회> 결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리랑박물관>을 위해서입니다. 이러다 보
        니 금년 말도 동분서주 할 것 같습니다.

*기자 - 앞으로도 많은 활동 기대하고, ‘아리랑과 함께 30년’ 다시 한번 축하 합니다.        







2010-01-28 정선아리랑의 정체성 문제(상) 1월
2009-03-09 영화<아리랑>의 감독은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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