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5:04:49, Hit : 583, Vote : 68
 2010-04-13 아리랑 회엽서(繪葉書)에 대하여

아리랑의 다양한 얼굴의 한 모습 중에 일제강점기 상품으로 팔렸던 것이 있다.
단적으로 아리랑이 얼마나 유행했고, 수 많은 노래 중에 대표성을 부여받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바로 아리랑 사진엽서 또는 아리랑회엽서로도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엽서 형태만은 아니다. 내용은 같지만 엽서가 아닌 실제 사진 인화지
상태와 크기도 엽서보다 적은 것도 있다.이는 사진과 아리랑 자체를 상품화, 유콘 시킨 것이다.) 이런 엽서는 원래 일본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한 것으로 조선 내에서는
주로 일본인에 의해 1930년대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 발매되었다.
당연히 상업적인 관광 상품으로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출현한 것인데, 당시 조선의
이미지와 연관성을 갖고 출현하였다. 주로 관변 단체인 경성관광협회·남만주철도
교통안내사가 판매를 전담했다.
전체적으로는 일제의 시혜적 통치 상징으로 근대화된 경성 시가지, 전국, 특히 경주의 고적을 담은 것, 농촌의 기속, 기생의 모습, 총독부 시정을 알리는 통계자료와 사업弘報歌 가사를
수록한 것 등이나 주제별, 소재별로 세분화하면 백여 종 내외가 된다.
이중 ‘아리랑 회엽서’는 기생 사진에 아리랑 사설을 결합시킨 것과 장승의 모습 등 풍속을
찍은 사진에 사설을 결합시킨 것, 풍속과 기생을 스케치 한 것, 그리고 기생 설명 등을
배치한 것들이다. 30년대 중반 일본 관광객의 급증으로 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기생이어서 등장시켰을 것이다.
표기언어는 일본 내 또는 조선에서 판매 할 목적으로 한글과 일본어를 병용한 것,
그리고 각각 한글이나 일본어로 한 것이 있다.
朝鮮民謠 아리랑>, <아리랑打令>, <最新朝鮮風俗 아리랑打令>, <朝鮮民謠 아리랑唄>,
<**情緖 아리랑唄>, <妓生의 舞> 등 각 8매 내외를 한 세트로 한 것이 10여종에 이른다.
모두 일본 인쇄업체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가격은 35~ 40엔 전후다.
후렴의 형태나 당시 유행 시기로 보아 곡조는 주제가<아리랑>이고,
사설은 중복을 피하여 정리하면 총 13절이다.


<아리랑타령>
1.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아리랑고개는 왜생겼나
   졍든님 날버리고 혼자가네

3.아리랑고개는 열두고개
   님가신 고개는 어느고개

4.쳥천하날에 별도만고
   이네가삼에 수심도만타

5.산천초목은 젊어가고
    인간의 쳥춘은 늙어간다

6.문경 새재 박달나무
   다다미 방망이로 다나간다(이하 생략)

<조선민요 아리랑>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쓸쓸한 이세상 외로운 이내몸
   누구를 믿고서 한백년살까

2 나를 바리고 가는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3 청텬하늘에는 별도만코
    우리네살림살이는 말도만타

4 식젼의 우난새는 배가곱퍼울고
    저녁의 우는새는 님그려운다

5 아리랑 고개는 왜생겼나
    정든님 날버리고 혼자가네

6 기차는떠나자고 쌍고동치는대
    정든님 날붓잡고 놀줄모르네

7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달 꽃본듯이 날좀보소(이하 생략)

<아리랑의 情緖>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 그리운님고 이별한 이밤
    달도 발고 눈도 부시네

3 석양에 비치는 아리랑고개
    치마에 스치는 바람 차기도하네

4 다듬이질로 지세는 이마음
    내님은 내마음 알아 주리라

5 어느날 만나면 심심한 나
    당신의 무심함 밉기만 하네(이하 생략)


이들 엽서는 제작사가 주로 요코하마 다이쇼(大正)사진공예소와 히노데상행(日之出商行)이다. 이들 엽서 내용을 통해 당시 유행한 가사가 어떤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1930년대 말 발행된 것 정도이지
절대 연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여튼 이렇게 아리랑이 소재가 된 것은 당시 ‘조선’에서 기생과 아리랑이 부랜드 인지도가
월등했기 때문인데, 이는 곧 상업성과 직결되었다. 실제 이 엽서들은 만주에 갔다 들어오는 일본 관광객이 집결하는 부산항 같은 곳에서 “하루 판매량이 1만매를 웃돌고 원판의
가지 수가 명소 600종, 풍속 400종에 달하며, 인쇄공장은 직영과 전속을 합해 4개소를
보유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제품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 기록에서도 ‘소화 초기 히트 상품’이라고 했는데, 이는 “가사와 곡조에서 느껴지는 비애는 마치 한국인만의 본질적인 민족성”으로 일본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기생을 주로 등장시킨 것은 일제의 저의가 담겨 있었던 것인데,
이는 당시 조선의  남성들에게 장죽을 물고있게 하여 무기력함과 비능률성을 드러낸 것과 같은 의도이다. 일본 아사쿠사의 마루패르당(堂)사가 브로마이드 사진 기생을 등장시켜
호색성과 퇴폐성을 강조하여 서구에서 형성된 ‘야만’(野蠻) 담론의 주 요소로 인식하게
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더해졌을 것인데, ‘망국적인 노래’, ‘기생들의 노래’라는 것과 아리랑은 요리집이나 주막에서만 불려지는 하류문화 쯤으로 본 것이다. 결국 이는 ‘제국주의의 일방적인 시각과 관광산업의 전략’에 의해
‘인류학에 대한 축소된 경험’을 한 것이다.
결국 1930년대 유행한 조선풍속인형이 하카다의 인형공방인 <나카노인형연구소>가 제작,
판매한 것처럼 이 아리랑엽서도 ‘조선인에 대한 스트레오 타입화된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이라는 타자에 의해 조선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물질문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 초 일본 화기 榮二郞이 <朝鮮點描-半島回想>이란 화첩에서 소재로 한 아리랑을
부르는 기생·엿장수·우편배달부 등을 내세운 것도 이와 같은 상황이다.  
후자의 경우 다음의 엽서 <기생의 舞>에서 알 수 있다.


<기생의 舞>
하얀 얼굴엔 연지를 바르고
기생들은 부르네 아리랑연가를
나비처럼 춤추는 아가씨들
고요히 간직한 그이와의 사랑도

문경봉의 떡갈나무 굵은 것 벌채하여
다듬이를 만드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
새ㄲ ㅣ 개구리 한 마리가
긴팔로 감아서
영차 이영차 짐을 옮기네

머나먼 귀가길 저녁 해님이 뉘엿뉘엿
말고삐 잡는 우리님
애달프다 애달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해님이여 고개까지 가지말아요

일본인들에게 아리랑과 조선 춤과 기생을 동일체로 얏잡아보게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데, 특히 아리랑의 주제이기도 한 ‘문경의 저항사’를 가련함으로 환치
시킨 것은 ‘의도적인 비아냥’이기도 하다.
퇴폐와 유흥의 상징으로 그 이미지를 상품화 한 것과 함께 상징적인 노래를 희화화  한 것이다.
한편 다시 주목해 보면 <문경아리랑>의 사설 ‘문경새재···’를 풀이하여 쓴 사실인데,
이는 1930년대 이전 <문경아리랑>이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아리랑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에서 가능 한 것으로 보아
영화<아리랑>의 결과이고, 본조아리랑의 여세(餘勢)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리랑엽서>류는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있었는데, 잉하 유사한 엽서류는
<京城小唄>·<妓生小唄>·<金剛山小唄>·<國境警備隊의 唄>·<白頭山節> 등이
동명의 음반과 함께 상품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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