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2:01, Hit : 518, Vote : 73
 2003-04-01 한 일본인의 『아리랑』觀 127호 26회

  한 일본인의 『아리랑』觀  
                         민요 아리랑을 영화화하여 민족의 노래가 되게 한 춘사 나운규 탄생 1백주년

아리랑이 오래 전부터 외국인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은 개항기 한국에 온 서양선교사들과 일본인들의 기록 속에 많이 언급되어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대분분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과 음악을 먼저 접하게 되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의 눈과 귀에는 아리랑이 특별하게 인식되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이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을 외국인이 기록한 것이어서 의외로 오늘에 와서는 아리랑의 역사와 세계화 과정을 짚어 보는데 유용한 자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같은 시기 같은 아리랑을 들었는데도 선교사들과 일본인들이 듣고 기록한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기야 입국한 목적이 한쪽은 구원을 위한 선교목적이고, 또 한쪽은 요리를 위한 밀탐이 목적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어떻든 너무나 다르다.
단적인 예로 1883년 인천의 <인천이사청>에 발령을 받고 내한 한 아리랑을 기록한 일본인 외교관 노부오 준뻬이(信夫淳平)의 기록과 1896년 선교사로 내한 한 H.B.헐버트가 기록한 것이다.
먼저 전자를 살펴보기로 하는데, 노부오 준뻬이는 《仁川港25年史》에 의하면 수호조약 이후, 제일먼저 들어 온 경제 관료로서 조선 침략의 첨병이었다. 그런 탓에선지 노부오는 1901년 제법 두툼한 《韓半島》(東京堂書店 刊)란 정보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에서 아리랑에 대해 기록을 한 것이다. 이 책은 그 내용이나 시기상으로 보아 조선 정략 수립에 일정부분 기여했으리라고 보는데, 아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술을 하였다.

“중류 이하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불리워지는 俗謠 중에는 흥미로운 것은 ‘아리랑’이라는 노래다. 나는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그러나 이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音韻뿐이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2, 3명의 한인에게 이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도 해보았지만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였다. ( 중략)
독자들이여 이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 노래의 音調가 얼마나 亡國적이며 동시에 불가사의할 만큼 뛰어난 노래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달빛이 비치는 남산기슭, 왜성대(倭城臺) 주변을 산보할 때 듣는 천진난만한 소년들의 ‘아라랑’의 哀歌는 마치 역사의 흥폐(興廢)와 인간사의 비애를 묘사하는 것과 같아 감개가 무량함을 느낄 것이다.
시에 재능이 없는 나까지도 이를 듣고 있노라면 시 한 수가 솟아 나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소회에 의한 아리랑 해석이다. 그럼으로 “망국적···”이라거나 “애가···”라는 것은 지나친 왜곡임을 알게 한다. 사실 아리랑이 정한(情恨)의 노래요 시대(時代)의 노래임에 특히 당시 개항기 이 땅을 밟은 외국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망국” 운운은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일본인들, 특히 당시 조선을 오가던 일본인 관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바로 이 아리랑에 대한 부정적인 아리랑관 역시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의 일본인의 아리랑관이 매양 이러했기 때문이다. 뒤에 가서 여기에 더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리랑을 “기녀의 노래”라고 보는 또 한번의 굴절된 시각일 것이다.
이 사람의 시각이 지나치다는 것은 거의 동시대에 이 땅에 와 생활한 헐버트의 아리랑관과 비교해보면 알 수가 있다. 헐버트는 노부오 보다 3년 후인 1886년 내한, 육영공원 교사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선교에 전력을 기울이던 1896년 아리랑을 채보함과 동시에 아리랑에 대해 언급했다. 이 책 역시 방한하는 구미인(歐美人)들에게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읽혀졌다. 이 악보와 아리랑에 대한 해석이 1897년 영국의 유명한 여류여행가 L·B Bishop의 《Korea and Her Neighbors》와 1908년 알렌의 《THINGS KOREA》에 재 수록되어 전해졌음에서 알 수가 있다. 헐버트의 기록, 요지는 다음과 같다.

“조선인들은 서정적이며 교훈적이고 서사적이며 이런 것들로 한데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 있다. 즉흥곡의 명수인 조선인에 의해 수많은 즉흥곡으로 대치되는 노래이다. 그러나 그 후렴은 변치 않고 불려진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아리랑은 매우 오랜 노래이나 지금의 노래말은 몇 백일 전후에 지어진 것 같다.
한국인들은 이 노래를 자신들의 주 곡식인 쌀과 같이 중요하게 여긴다.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런 노래이다.”  
이러니 앞의 일본인 노부오의 아리랑관은 분명 일그러진 시각에 의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당시 구미인과 일본인들의 대 조선관이 어떠했는지를 여기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리랑은 이 땅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들을 수가 있다. 또한 아리랑이 한국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어 외국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있기도 하다. 그러니 한국에 오는 이들에게 아리랑을 어떻게 심어주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며, 만일 그들이 아리랑에 대해 어떤 기록을 남긴다면, 언제가 그 기록 속에서 아리랑관을 축출하여 대 한국관을 알아보는데 중요한 바로메타로 활용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아리랑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04-01-14 -창작 아리랑의 가능성-
2003-04-01 126호 - 124호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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