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3:16, Hit : 512, Vote : 72
 2004-10-14 아리랑 그 모정의 세월

아리랑 그 모정의 세월

엄동의 1930년대, 중국 혁명의 와중에서 체감론적으로 아리랑을 인식한 혁명가 김 산은 절명의 순간에 아리랑에 대한 진술을 했다. 11살 때 3.1운동을 겪고 일본을 거처 중국에서 러시아 혁명 속으로 가려다 일제의 불허로 중국에서 조국해방 운동의 방책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1938년 까지 일제에 두 번의 투옥을 당하면서도 끝내 굴 하지 않고 투쟁하다 33세의 짧은 나이로 을 남기고 비운을 맞았다.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이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중략) 아리랑은 죽음 그 넘어의 노래이다. 나는 아직도 최후의 희생이 마지막 승리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은 아직도 마지막 아리랑고개를 올라가서 그 오래된 교수대를 때려 부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슬픈 노래이지만, 죽음을 넘고 건너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비운의 조국을 구하기 위한 혁명의 행진 중에 아리랑을 부르는 현재적인 아리랑론이다. ‘아리랑은 고난의 RHt’이라고 한 최근 한 시인의 성격 규정이 있긴 하지만, 1930년대의 이 지론은 오늘에서도 유효하다. 원래 아리랑은 저항성과 대동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갖고 있다고 볼 때, ’정선의 아라리‘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고려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한 고려 충의열사 일부가 정선에 들어 살며 옛왕조에 대한 회고와 결코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겠다는 저항을 담아 창화한 시를 정선인들이 ’뜻말‘로 수용하여 노래로 부르게 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확산 - 아리랑의 역사는 어떤 민요에 비교해도 이색적이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메나리토리 선법으로 ‘뫼아리’(산소리) 또는 ‘아라리’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이후, 명칭 ·후렴 ·가락 ·사설이 시기와 지역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변이형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변이형은 명칭이나 후렴으로 스스로 동일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크게는 남한강계(정선아라리)와 북한강계(강릉아라리)로 확산되어 경복궁 중수기에 경기도 일대에서 ‘긴아리랑’(‘아로롱’-이상준記)과 ‘잦은아리랑’(‘아르렁’-헐버트記)으로 변이되고, 후자에 의해 밀양·주제가<아리랑>·진도아리랑 등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고, 주제가<아리랑>은 대중문화인 신민요·유행가·대중가요 아리랑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게 했다. 이로서 아리랑은 우리 노래 문화의 기층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아리랑은 민요 50여종 4천여수, 신민요 20여편, 유행가 20여편, 대중가요 10여편, 창극 17편, 영화 9편, 연극 8편, 그리고 수많은 문학작품으로 확대되었다.
하여, 우리에게 아리랑 ‘나라’ 이다.

‘민족의 노래’ - 3.1운동 이후 일제의 조직적인 민족말살 정책으로 지사들은 변절하거나 지하화하거나 해외로 망명해야만 했다. 이 정점에서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민족영화로 부각되어 전국을 휩쓸었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도 건너갔다. 이 과정에서 주제가는 영화보다 더 유명하여 주제가가 본 영화를 끌고 다녔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후1820년대 초, 주제가<아리랑>은 그 유명세로 해서 여타의 아리랑의 본(本)이라는 영예를 부여받아 아리랑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항일의 노래로, 해외에서는 조국의 노래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남북은 물론 해외교포, 특히 중국 조선족, 중앙아시아 고려족을 아우르는 한민족 구성원 모두로부터 ‘민족의 노래’로 공인 받고, 음악은 물론 무대예술을 넘어 전 장르로 확산, 생활화 되었다. 그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상징화 되고,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로 특화되어 독립된 문화어로 개념화되었다.

대동성 담보, ‘미래의 노래’ - 그렇다면 이러한 아리랑의 현재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두 말할 나위 없이 연대와 대동, 해원상생이란 2대 아리랑 정신에 있다.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하고, 맺힌 것을 풀어 드디어, 큰 걸음으로 나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땅의 수난사로 점령된, 그러나 당당히 넘고 넘어서 이뤄 온 오늘의 역사는 민중의 아리랑 정신, 그 산물이다. ‘아리랑의 힘’, 이는 비록 여러 결코 흩어져 있는 오늘의 우리이지만 아리랑으로만은 분명 하나이다. 이 연대성의 담보는 아리랑을 ‘미래의 노래’이게 한다. 바로 오늘 우리가 아리랑을 말하고 노래하는 이유는 우리를 크게 하나 되게 하여 내일로 내 달릴 수 있게 하는 아리랑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연어가 새 역사를 위해 모천으로 향하듯, 오늘 우리도 아리랑으로 향한다. 내일로 가기 위해 ….


「글을 쓴 김연갑님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로 평생을 아리랑과 함께 살아왔다. 아리랑하면 김연갑을 떠올리듯 그의 삶은 아리랑과 살아왔다.」




2004-12-07 목은 이색, 아라리를 만나다. (1)
2004-05-21 경복궁 중수 공사와 강원도아라리의 확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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