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46:34, Hit : 525, Vote : 86
 2003-04-01 북한『 아리랑 축전 』함께 하자. 115호 14회

북한은 2002년 4월 29일부터 6월 29일 까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축전>을 개최한다. 이 행사의 주제와 목적은 다음과 같다.
“동방조선이 어떻게 파란 많은 수난의 역사를 거쳐 자기운명의 주인이 되었으며
오늘을 어떻게 존엄 있는 민족으로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아리랑> 노래에서 생활적이면서도
생동한 예술적 장면들로 서사적으로 펼쳐 보이려 한다.”
<아리랑축전>의 주제를 밝힌 것이다. 분명히 민요 아리랑과 그 역사성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일본의 <조선신보>가 보도한 <아리랑축전>의 목적을 밝힌 것이다.
<아리랑축전> 개최 의의를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라고 했다.
“아리랑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세계를 향한  메시지일 것”이라면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거듭되는 외세의 침략과 압력을 물리치고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는 나라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아리랑은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가 될 것”
그동안 각각의 내부적 요인으로  악순환 관계가 되어 남북관계가 교착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으로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현실적으로 남의 월드컵 경기와 북의<아리랑축전>을 계기로 교류를 터야하는것 보다 더 좋은 대안은 거의 없다. 당연히 일정한 거부가 있을 것이나
그럼에도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를 축척해가는 것으로서 이를 극복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리랑을 주제화, 소재화 하고 있어 속된 말로 “깔아 놓은 멍석”에서 잔치판을 벌이는 것이니 오고가는데 명분에서 이의가 있을 수 없고, 월드컵과 대공연<아리랑>이 상호보완 되어 평화행사가 된다면 세계적인 이목을 받을 수 있어 관광 수익도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잔치문화 본래의 뜻이 하잘것 없는 계기를 빌미로 해서 그동안 격조하고 소원했던 이들과 해후하여 벌이는 판으로서의 미풍양속이 아닌가. 감상적인 해석일런지는 모르지만 이번의
두 잔치판은 아리랑의 “보이지 않는 손”(unviserble hand)이 남북 간에 무언의 교감을 이루게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북한이 “아리랑”을  행사명과 주제로 했다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북한은 변화된 인식으로 이번 행사에 민족 ‘동질성’ 공유를 주제화 한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미 1989년 남북단일 팀 단가(團歌)를 <아리랑>으로 합의, 아리랑이  민족동질성의 구체적인 인자(因子)임을 공인했다. 비록 체육 분야만의 정치적인 합의였지만  동일안(同一案), 동시제의(同時提議), 합의(合意)라는 남북 회담 사상 유일의 예(例)를 거둔 것이다. 음악(민요)으로서의 아리랑뿐만 아니라
<민족의노래>로서의 정신(불복종저항정신·연대와 대동정신·해원상생정신)과 상징가치 까지도 공인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아리랑파도’와 수종의 아리랑응원가와 전야제에서의 2002명 합창 ‘월드컵아리랑’(아리랑환타지) 그리고 개막식 공연에서 세계적인 북(鼓) 연주자들에 의한 아리랑 연주로 아리랑을 소재화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6. 15 정상회담의 “민족단합과 평화의 염원” 아리랑를 주제 해명 수단으로 하여 형상화 한다고 했다. 이처럼 아리랑은 우리를 연대와 대동정신으로 묶어 주고 있는 것이고 교류가 없으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고, 교류가 있으면 그 끝에는 쾌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아리랑은 민족의 화해를 위해 남겨진 거의 마지막의 실마리라는 것이다.  “아리랑으로 마음 통일, 사람통일” 이란 한 단체가 주관한 통일아리랑축전의 캐치 프레이즈가 결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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