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5:34, Hit : 496, Vote : 79
 2006-03-17 '정선아라리'에 담긴 역사적 층위 159호

‘정선아라리’에 담긴 역사적 층위‘정선아리랑’, 여기에는 ‘정선의 아라리’라는 말보다 더 정선에 긴밀하게 귀속 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배경은 무었일까? 여기에는 네 가지 정도의 역사적 배경이 담겨있다. 이는 정선아리랑이 갖고 있는 역사적 층위로서 정선아리랑을 이해하는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남에 일처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역사적 층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려말선초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의한 무단청치 상황과 정선과 정선인에 가해진 탄압의 반영이다. 여기에는 공양왕 때 윤이(尹彛)와 정선 출신 중랑장 이초(李初)가 명나라에 가서 이성계 세력을 도모하기를 청했다가 발각되어 전오륜 등과 함께 주모자로 연루되어 청주옥에 갇힌 사건, 그리고 이에 이어서 두문동으로 갔던 72현 중 전오륜을 비롯한 6명이 정선에 은거하며 여주에 은거하던 이색과의 접촉 등으로 암울한 시국상이 정선인들에게 반영된 것이다. 이때의 상황이 아라리에 반영되여 형성된 사설이 정선아라리의 제1절격인 다음의 사설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올라나 억수장마질라나
만수산 검은구름이 막모여든다

이 사설에는 ‘거칠현 설화’와 ‘한오백년 설화’가 함께 해오고 있다. 이로서 ‘태백산맥 이동의 아라리’는 ‘정선’(旌善)이라는 지역에서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로 성격을 전환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이로부터 아라리는 정선과의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어 그 역사성을 확보 한 것이다.  
아라리가 맞은 두 번째 역사는 경복궁 중수 공사 7년간에 아라리가 공사장에서 불린 것인데, 당시 목재와 목재를 다루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필요하고 중요했기에 강원도와 문경 지역사람들이 가장 많이 또 빈번하게 동원되었다. 이 때 이들에 의해 아라리가 불려 전국의 부역군들과 소리패들에게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아라리는 전국에 퍼져나가 새로운 아리랑들을 형성케 했다. 이의 실증이 1912년 총독부 조사에서 나타난 전국 각지의 아리랑들일 것이다. 그리고 경기지역에서 불려진 긴아리랑이나 잦은아리랑(헐버트 채보)일 것이다. 다음 사설은 정선아라리가 원기층(原基層)이 되어 확산된 ‘경북아리랑’인 ‘문경아리랑’으로의 형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배띠어라

그리고 이는 다시 선기층(先基層)이 되어 1896년 H`B, 헐버트가 기록한 ‘아르렁’으로 형성, 자즌아리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사설은 경복궁 중수시에 문경지역의 특산물 박달나무가 일시에 벌목되어가는 상실감을 반영한 것으로, 이후로부터 1900년대 초까지 널리 불려지다 새로운 시대의 다양한 아리랑과 1926년 형성된 나운규의 <아리랑> 주제가<아리랑>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기층이 ‘문경아리랑’은 경북북부 지역에서 기층을 이루고 전승되고 있다.

세 번째는 구한말의 의병전과 동학혁명기의 확산이다. 의병전은 춘천 벌업산에서 패퇴하기 전 정선이 은거지 였다. 그리고 동학군들도 최시형을 비롯한 인물들이 마지막에는 정선에 은거했다. 이 상황에서도 당연히 아라리는 확산되었다. 춘천의병아리랑은 이 때 불려진 것이다.
  
우리나 부모가 날기를재
성대장 주자고 날길렀나
귀약통 납날개 양총을메고
벌업산 대전에 승전을했네

네 번째는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가 ‘정선(旌善)아리랑을 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해방직후 경기명창 김옥심에 의해 <정선아리랑>이 널리 불리게 되고 전국적인 경창대회 등에서 수상하며 대외에 알려지는 등 그 토속적인 정취가 진가를 발휘하자 세평에 따라 ’정선아리랑‘으로 지정해 향토 가명(歌名) ‘아라리’를 이른바 세칭(世稱)으로 대체케 한 것이다. 물론 이는 ‘강원도의 아라리’를 ‘정선의 아라리’로 집약시키고 특화시켜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체성에 혼란이 야기되고 ‘아라리’와 ‘아리랑’의 관계와 의미를 설명해야 할 거증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모든 아리랑의 아리랑’으로의 빛나는 위상은 이를 무색케 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층위가 정선아리랑의 역사성이고, 모천성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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