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7:44, Hit : 488, Vote : 66
 2007-09-14 아리랑, 백두산을 노래하다 170호

우리 국가<애국가>에 백두산이 나온다. 백두산이 민족영산(民族靈山)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이 백두산을 ‘長白山’(창바이산)으로 부르며, 이번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개최한 제6회 동계 아시안게임 주제가인 ‘야저우즈싱(亞洲之星)’의 테마로 하고, 나아가 개막 공연에서도 백두산을 소재로 인간과 자연·체육·문화를 융합해 표현하여 백두산을 자신들의 민족과 관련된 산으로 형상화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일회적인 소재 차원의 활용이 아니라 바로 2002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온 동북공정 일환인 소위 ‘장백산공정’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아세안 게임 성화 채화를 백두산에서 했고, 자체 기술로 처음 개발한 고속열차 이름을 ‘창바이산호’로 지었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백두산을 등재하려 했고, 주변의 학교 이름에 ‘장백산’을 붙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임으로 우리는 관념 속에 두었던 백두산을 현실로 꺼내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러함에서 우선 조상들이 백두산을 어떻게 노래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백두산 용왕담 맑은물은/ 압록강 2천리 굽이치네

경기아리랑에서 불려지는 사설이다. 이는 <까투리타령>의 함경도 대목에서 섬겨지는 “함경도라 백두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백두산에 올라 용왕담을 보고 보래산성에 당도하니”와 넘나드는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동안 불려온 사설임을 알 수 있다. 백두산의 천지 용왕담(龍王潭)의 신비로움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형성된 아리랑에서는 백두산이 좀더 구체적으로 노래되고 있다. 1930년대 불려짐 ‘아리랑망향가’의 일절을 보자.

만주벌 묵밭에 무엇보고 우리옥토를 떠낫거나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압록강건널 때 지은눈물 아직도 그칠줄 모르노라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밤마다 그리운 코고무신은 백두산 마루를 넘나드네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1931년 일본의 만주 점령으로 총독부 정책에 의해 만주지역으로의 집단 이주(移住)가 이뤄졌다. 3년을 경작하면 그 땅을 불하해 준다고 속여 각지의 농민들을 유도했다. 이로부터 불렸을 것이다. 조국을 떠나 엄동을 이겨가는 화자 동포들이 꿈속에서만 넘나들고 있으니 여기에서의 백두산은 곧 조국과 이국의 경계이다. 그러니 구체적인 삶 속의 지리적 경계였던 것이다. 이를 좀더 가깝게 노래한 것이 ‘신조아리랑’의 유사함과 같은 일절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쓰라린 가삼을 부여잡고
백두산 고개로 님 찾어간다


물론 백두산에 있는 ‘님’은 곧, 백두산의 ‘영험’함이며 그리운 조국이며 고향이다.
꿈속에서 아껴 두었던 고무신을 신고 수 없이 가고 또 가는 곳이었으니. 그러니 꿈이 아닌
현실에서는 쓰라린 가슴으로 향하기만 하는 곳이었다.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백두산이 갈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산임을 받아들임으로서 차라리 비현실의 꿈의 산으로 환치시켰다. 그것은 일정거리에다 대상화 시켜 두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절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룡촌아리랑’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백두산 골짝에 단풍이 들고
김만경 벌판에 금파가 일제

우리나 농부들 무엇을 할고
지게를 지고서 낫가리 들러
아리랑 일터로 모여들 와서

아리랑 열매를 거두어 보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쓸만한 농토는 동양척식회사의
농간으로 일제에 넘어가거나 신작로 나는데 빼앗기고, 그나마 남은 농토의 소출은 갖은
명목으로 떼어야 했다. 이런 현실에서 백두산은 차라리 꿈과 낭만의 대상화 하는 것이 마음에
편했던 것이다. 전혀 비현실적으로 표함으로서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 저의를 간파했던 것이다. 영화<아리랑>에서 담보짐을 싸서 만주로 떠나는 상황에서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와요/ 이강산 삼천리 풍년이와요”라고 노래한 것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백두산은 이렇게 노래되었다.
그리고 길고 지리했지만 가열찬 항일투쟁의 끝자락에서
백두산은 해방의 날, 그 날의 일출을 맞는 곳으로 등장한다. ‘아리랑 열두’ 구비에서 맞는 백두산인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고개는 열두 고개

구름도 사람도 쉬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해뜨고 달뜨고 별도 뜨네

해방 후 이 사설은 북한
지역에서만 불리게 되었지만 만주 지역 항일 투쟁의 극단적 절망감에서 아니면 그 최정점의 자신감에서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백두산은 그렇게 민족 해방의 날을 맞이하는 영상이었다.

이렇게 아리랑에서는 백두산이 노래되어 왔다. 이는 민중들의 일상에서 함께 한 산이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있어 민요는, 아리랑은 현실의 노래였다. 그런 만큼 백두산은 관념이 아닌 현실에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것이다. 백두산을
중국으로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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