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4:32, Hit : 493, Vote : 71
 2005-09-29 DMZ(비무장지대) 와 아리랑 154호

DMZ(De-militarized zone), 1953년 7월 27일 서명된 휴전협정 전문 제 1조 1항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한 개의 군사 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서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한 개의 비무장 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저지한다.”
서해에서 동해에 이르는 장장 155마일(248km), 면적 약 1,000 평방킬로미터. 그렇다면 DMZ는 한반도 내에 있는 특수 영토인가? 아니면 남북한을 구분 짓는 국경선인가? 둘 다 아니다. 분명히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한시적 통치권의 유보지역으로 국제법상으로는 엄연히 한국의 영토에 속하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한 측의 점유지역이 된다. 지금까지 이 지역을 남?북한 어느 측도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두었다. 현실적으로 군사분계선 남쪽은 남한이, 북쪽은 북한이 관장하고 있으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방치된 땅에서 이미 통일의 씨앗이 움터오고 있다. 바로 아리랑에 의한 통일! 그에 의한 사람통일! 그에 의한 땅 통일이!

- DMZ 아리랑?
1951년 1월, 중부전선 7169부대가 854고지에서 운영하는 대적방송(對敵放送) 음탄(音彈)은 ‘아리랑’이었다.

우리나 님은요 날 그려 울고
전쟁판 요내들 임 그려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울며 넘네

이 대적방송 음탄에 의해 “7169부대에 귀순병들만 하루 평균 40명이나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중공군은 밀양아리랑을 <빨지산행진곡>으로 변이시켜 역시 음탄으로 공방했다.
이렇게 한국전쟁 초기, 강원도 철원의 한 전투에서는 아리랑이 무기가 되어있었다. 이것이 확인되는 오늘의 DMZ에서 불렸던 아리랑에 대한 첫 기록이다. 이후 1953년 6월 8일, 자유의 다리를 통한 포로 교환 때 아리랑이 불려졌고, 1957년 7월 27일 휴전회담 조인 후 미국과 북한 측에서 동시에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이로써 휴전조인식에는 남한이 당사국이 아니었지만 아리랑이 연주됨으로써 남?북한이 휴전에서 종전으로, 그리고 평화체제로 가는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공교롭게도 중부전선 남북병사간의 대면방송(對面放送)에서 아리랑은 유일한 합창이 이루어지는 노래로 DMZ를 아리랑으로 흐르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1990년 판문점에서 남북단일팀 단가를 <아리랑>으로 합의, 제도적이나마 ‘아리랑통일’을 이뤄냈다. “민족 정서와 민족의 핏줄이 이어진” 것이다. 전쟁 중 음탄이던 아리랑이 평화와 통일의 전주곡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바로 이런 아리랑의 기능과 성격과 위상의 변화가 이 DMZ에서 이뤄졌으니 DMZ는 아리랑 통일을 이뤄낸 변화의 땅이고, 아리랑은 DMZ를 통일의 땅으로 만든 노래이니, 이 곳은 분명히 ‘앞당긴 역사’의 현장이고 주역인 것이다.      

-한국전쟁과 아리랑-
사발 그릇이 깨어지면 두세 조각이 나는
38선이 깨어지면 한 덩어리 된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정선아리랑 일절)

강원도 산골 정선의 할머니들이 부른, 소위 ‘38선 아리랑’의 가사다. 아마도 해방 후 좌우 대립이 시작된 시기부터 불려온 사설일 것인데, 어떤 시인이 있어 이토록 소박한 논리로, 나직한 목소리로 통일의 당위성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아리랑’은 이렇게 외세가 그어 놓은 38선을 일찍부터 깨뜨려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렇지 못할 때 더 큰 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한 것이 아리랑의 숙명이었다. 아리랑의 그 숙명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된 6. 25 전쟁 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전장에서는 군가나 의식음악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휴식을 돕고 향수를 달래기 위해 진중가요와 함께 원초적 정서를 자극하는 민요도 긴요하게 쓰인다. 이들 노래는 때로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투 의욕을 상실케 하는 심리전의 도구로 돌변하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7천만 민족이 즐겨 부르는 민요 아리랑이 그랬다. 국군에게는 향수를 달래는 노래로, 인민군에게는 심리전 선무용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중부전선 854고지 대적방송(對敵放送)의 음탄(音彈)으로 기능한 것이 그것이다.




2005-11-19 김산, 님 웨일즈, <아리랑>으로 돌아왔다 156호
2005-08-26 중국 이주민의 자화상, 아리랑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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