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6:00, Hit : 429, Vote : 71
 2006-04-28 우리는 <愛國歌>를 얼마나 알고 있나? 160호

금년은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선생이 탄생한지 백년, 윤치호선생이 ‘애국가’를 작사한지 99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필자는 연구서「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연구」와 한 방송사의 특집방송 <애국가의 <재발견>을 집필하면서 다른 나라 국가(國歌)와는 전혀 다른 우리 국가만의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호·국기·국화와 함께 소리로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 상징물의 하나인 ‘애국가’에 대한 무관심과 최근의 록 버전 응원가에 대한 논란을 보며 ‘우리는 애국가를 얼마나 알고 있나?’를 스스로 묻게 되었다. 하나는 고종 시대 국가에서 처음으로 국기와 국호 같은 상징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당시부터 ‘국가’(國歌)가 아닌 ‘애국가’(愛國歌)였다는 사실이다. 고종 2년 제정 된 흠정 국가가 ‘대한제국애국가’(大韓帝國愛國歌)라는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는 국가(國歌) 없는 국가(國家)로 애국가만 있다”고 하는 일부 국가 개정론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 권위를 찬양하기 보다는 나라와 국토 사랑이 우선이며 더 중요함을 강조한데서 국가의 이를 자체를 ‘애국가’로 한 것이라는 의미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둘은 작사·작곡자가 국가(國歌)를 전제로 하거나, 국가에서 의뢰를 받아 우월감이나 특정 의식을 갖고 작사·작곡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윤치호는 1800대 말 <독립협회> 행사에서 부르기 위해 작사했다가 1907년 오늘의 가사로 다시 지어 <한영서원>에서 부르게 한 것이고, 안익태는 미국 유학 시 센프란시스코 한인 교회에서 외국곡 ‘올드랭 사인’ 곡에 의해 불리는 것을 알고 자신의 곡으로 바꾸겠다는 애국심에서 1935년 11월 완성하여 미주 한인단체에서 부르게 했고, 1950년 미국의 한 거리에서 한국전쟁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애국가를 듣고 조국의 국가가 된 것을 알았다는데서 알 수가 있다. 결국 국민 스스로의 애국심으로 작사·작곡해서 국민 스스로가 국가로 불러, 제도를 초월하여 부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은 적어도 해방 이전까지의 전 민족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부르는 국가였던 것이다.

셋은, ‘애국가’를 국가로 정함에 있어 전제국가나 근대국가에서처럼 나라에서 제도로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스스로가 애국심에서 관행적으로 부른 것을 임시정부와 해방정국과 정부 수립으로 국가로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4절의 가사는 고종의 명에 의해 독일 작곡가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애국가’를 당시 애써 보급했음에도 이를 제처 두고 ‘애국가’를 3, 1운동 같은 민족적 항일 구국 현장과 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에서 불렀고, 곡조는 미주 한인단체에서 ‘신애국가’ 악보를 중경 임시정부에 보냈고 이를 받아 1941년 광복군 성립식에서 공식적으로 연주해 임시정부 국가가 되게 했다. 그리고 해방 이튿날에는 당시 신문사 게시판에 게시된 가사를 보며 합창하는 것에서부터 해방정국의 각종 행사에서 불려 북한은 1947년 말 까지, 남한에 서는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호와 국기와는 다르게 국가에 대해서는 이의 없이 ‘애국가’를 채택한 것이다. 이는 근대국가 성립기에 탄생한 어느 나라 국가가 갖지 못한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를 갖게 되었다. 이는 바로 국가 ‘애국가’의 정통성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함에서 국가 ‘애국가’는 역사성에서나 정통성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노래임은 물론이고, 당시 윤치호나 안익태의 순수한 애국심도 그렇거니와 근대사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때 한 목소리로 불러온 ‘민족적 합의’를 어떤 이유에서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김구선생이 상해 임정시절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한 동지에게 “우리가 3, 1운동을 태국기와 애국가로 싸웠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라고 한 대답은 오늘에도 유효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민족적 대통합을 위해 ‘애국가’에 담긴 힘과 정신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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