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8:05, Hit : 468, Vote : 66
 2007-09-14 아리랑, 세계 뮤지션들과의 조우(上) 171호

최근 정책방송 <아리랑TV>가 문광부 제정 ‘한국100대 상징’ 보급 활동의 하나로 아리랑 주제  프로그램은 연이어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은 무었인가?’, ‘무었이 아리랑인가?’를
화두로 20부작을 제작 중이다. 이 작업에 자문하면서 아리랑이 세계 속에 어떻게 전파 됐는가를 되집어 보게 되었다. 이에 아리랑이 세계 음악인들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2회에 걸처 정리하기로 한다.  이글은 곧 출간될 『아리랑의 세계』에서 일부를 축약한 것이다.

재즈 댄스곡 <신아리랑>
1920년대 말 일본 시에론(CHIERON) 레코드사에서 아리랑을 재즈곡으로 편곡해 음반으로 발매했다. 프랑스〈물랭루즈〉악단(지휘 제럿)이 도쿄 공연을 하는 동안에 재즈로  취입한 것이다. 이 글은 음반의 선전지 내용을 옮긴 것이다.
“파리는 세계의 환락장입니다. 온갖 노름 놀이, 온갖〈아라모-드〉는 다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구의 양면을 완전히 정복한〈쨔즈〉의 열도도 역시 파리가 그 본 바닥입니다.
쨔즈의 멋스러운 흥취는 우리의 대전 이후의 흐려져 가는 심경의 그릇을 얼마나 시원히 씻어주었겠습니까? 이제 파리에서도 유명한 〈무란루즈〉의 전속 악단원 제-럿씨 일행을 동경서 맞이한 기회에 <시에론>에서는 특히 조선의 민요 아리랑을 그네들의 재조를 빌어 쨔즈 화하여 특별 취입한 것이올시다.”

이 자료로 보아 물론 단순한 재즈 악기에 의한 연주이지만 재즈 버전 아리랑으로서는 이것이 첫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편곡과 지휘를 한 제럿 씨는 간접적으로 일본에서 아리랑을 접하고 아리랑을 편곡한 것이다.

<Ah Dee Dong>
19개국의 유엔군 참전으로 세계대전 못지않은 한국전쟁은 세계인과 아리랑이 만나는 계기였다. 특히 참전 병사들을 위문하기 위해 왔던 세계적인 뮤지션들과의 조우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예가 재즈 뮤지션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가 1952년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아리랑을 듣고 재즈로 편곡한 <Ah Dee Dong>을 음반화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유명한 재즈 전문 레이블 <ROYAL ROOTS>사에서 앨범 <MUSIC OF THE FUTURE>(SP)로 발매한 것이다.

재즈 베이스와 피아노 연주로 이름 높은 오스카 페티포드는 1951년 10월초 베이스 주자로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에서 위문공연을 마치고 한국 위문공연에 와 있던 다른 연예인들과 합류, 귀국을 위해 인천에 기착해 잠시 머물게 되었을 때 아리랑을 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귀국하여 그 기억을되살려 편곡하여 앨범으로 발표했다.
이후 이 작품은 1981년 그의 베스트 선집 <Discovery>로 미국과 독일에서 다시 발매 되었고, 이어 동료 피아니스트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가 그의 앨범 <The Young Revel>에 재수록 해 이 작품의 진가를 입증해 주었다. 지금까지 확인 된 바로, 아리랑으로서는 이것이 최초의 재즈 버전 작품 1호이다. 그리고 외국 유명 뮤지션에 의해,  완성도 높게 편곡된 작품으로도 첫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아리랑의 세계화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피터 시거의 <아리랑>
한편 1953년 세계적인 포크 가수 피터 시거(Peter Seeger)의 아리랑도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다. 당시 ‘미국 포크계의 어머니’로 인정받던 피터 시거가 자신의 250여 장의 음반 중에서는 두 번째, 라이브 음반으로는 첫 번째 앨범 <PETER SEEGER>에서 직접 밴조 연주와 함께 아리랑을 부른 것이다. 1960년대 밥 딜런· 존 바이즈·브라더스 훠·피터 폴 앤 메리 같은 반전·평화 음악인들에 앞서 선도적으로 활동한 인물로, 아리랑을 음반화 해 반전음악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그러니까 피터는 <꽃들은 바람 속에 어디로 갔는가?>와 같은 세계적인 반전음악을 편곡, 많은 가수들에게 부르게 하는 등 포크 송 싱어송 라이터, 반전음악의 거장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바로 한국전쟁 중에 아리랑을 듣고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된다.

재평가해야 하는 점은 ‘아리랑’을 그답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는 밴조(Banjo) 반주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아리랑에 관한 자기 나름대로의 코멘트를 하였다. 그 코멘트에는 그다운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내용이다.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에 ‘아리랑’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러왔다고 하는데,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시기에는 부르지 못하게 탄압받은 사실도 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어 전쟁을 하고 있지만, 두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전쟁을 치렀고, 그래서 분단국으로 서로 등지고 살지만 아리랑을 함께 부르니 남북은
하나의 나라라는 주장이다. 동질감이 없다면 결코 하나의 노래를 같은 정서로 부를 수 없다는
음악사회학적인 분석이다. 당시로선 의외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능이 있었기에 아리랑은 참전 용사들에게 그렇게 강렬하게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자료는 아리랑이 그저 어쩌다  외국인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역사적 계기에 한 외국인 가수에 의해 재해석된 경우임을 알려 준 것이다. 이는 가수라는 직업의식에서 감지된 것이겠지만 아리랑의 음악성이나 전쟁 중에도 불리는 아리랑의 연대정신과 공시(公示)성을 파악한 결과다. 그야말로 아리랑의 남북  '통일노래’ 가능성을 들어 세계적 반전음악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1964년 라이브 음반 외 몇 개의 앨범에 수록함으로써, 이 역시 세계적으로 보급됐다.
아리랑은 비록 한때 동족상잔의 치욕과 함께했지만 위에서 살폈듯이 그 역사성과 세계성으로 하여 통일의 노래로, 평화의 노래로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2003년 10월 독일에 모였던 유럽의 여러 작곡가들은 투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아리랑을 선정했다. 그래서 아리랑은 ‘과거의 노래’이고 ‘현재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노래’로서 ‘미래의 노래’로도 불릴 것이다.

둘째는 한국을 막연히 미지의 나라, ‘전쟁 중인 나라’ 또는 ‘극동의 은둔국’ 정도의 상징으로
알고 그 배경음악 정도로 이해한 경우이다. 이는 대개 기획음반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
세계 특수지역 음악을 수록한 전집 또는 시리즈 음반과 항공사 등의 여행 관련 기관에서 홍보용으로 낸 음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나 홍콩 <디스커버리>
항공사가 발매한 앨범 등이다. 이런 상황은 악보집과 출판물에서 확인된다. 예를 들면 1962년
런던에서 출판된 《FOLK SONG HAWAII SINGS》, 1964년 뉴욕에서 출판된 《FOLK SONGS OF CHINA JAPAN KOREA》, 1968년 독일 본에서 발매된 《MUSIK LIED TANZ IN KOREA》등이다.
셋째는 우리 스스로가 해외에 전파·확산시킨 예이다.
물론 의도적이진 않지만, 이는 해방 직후부터 우리에 의해 직접 해외에 나가 전파시킨 경우로
가수들의 해외 공연이나 영구이주(永久移住)에 의해서이다.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까지
<부채춤>을 한국의 상징으로 각인시킨 <리틀 엔젤스>의 해외공연과 음반 발매, 미국에 거주
성공적인 활동을 한 김 씨스터즈, 일본에 이주하여 엔카 가수로 성공한  이성애(李成愛)의
활동과 음반 발매가 그것이다.
넷째는 음악 그 자체, 즉 음악성을 인정하여 수용한 경우이다.
이는 대개 한국 공연을 계기로 내한 공연하여 앙코르 송으로 접했거나 귀국하여 레퍼토리화한 경우이다.

냇킹 콜(Nat King Call)이나 폴모리아(Paul Mauriat)악단의 연주와 음반, 그리고 하와이에서 발매된 소프라노 엠마(Emma)와 중국계 가수 프랜시스 립(Frances Yip)의 앨범 등이 여기에 속한다.문이다.       김연갑/ 국가상징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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