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8:46, Hit : 549, Vote : 87
 2007-09-14 1920년대 영화음악에 대하여... 173호

영화<아리랑>의 주제가 ‘아리랑’이나 영화<낙화유수>의 주제가 ‘낙화유수’는 영화사에서나 대중음악사에서나 모두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작품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최근 영화계와 국악계에서 영화음악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 배경에 대한 논의들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에 초기 영화음악 상황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1920년대 중반의 관련 자료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시되는 자료는 조선일보 1926~28년 사이의 부정기적인 코너
<映畵印像>의 관련 기사이다.  

우리 영화사에서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영화<아리랑>이 개봉되기 전인 1926초로 본다. 물론 지식인 일부의 인식이지만 주목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는 단적인 예는 <映畵印像>난의 음악 기사의 다음과 같은 주장 때문이다. 현재 이 시기 신문 실물 보존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전체상을 복원 할 수는 없지만 구득 가능한 몇 회분만으로도 그 시기 상황을 살피기에는 충분하다. 각 회분의 관련 내용을 인용하여 살펴본다.


“각 극장에 요구한다. 좋은 사진도 좋지만 음악해설도 이에 상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음악해설이 좋지 못하면 보잘 것이 없게 되니까(壽松洞 B生)”


신문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 축약되었겠지만 그 요지는 훼손시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 기사에서 주목되는 것은 ‘음악해설’이라는 말에서 영화 음악이 변사에 의해 해설 일부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연출에 의해 지정된 상황이겠지만 상영 현장의 주도권은 해설자인 변사에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은 변사에게는 음악적 소양이 필수였던 것이다. 다음의 기사에서도 이를 유추케 한다.

“단성사에서 단테의 <지옥펴>이 나온다고 한다. 한 가지 주문은
이 좋은 작품을 살릴만한 악곡을 잘 선택하여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吳生)”


이와 같은 외국영화의 경우 상영과 관련된 구체적인 진행을 변사가 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의 기능을 변사가 맡았다.
그러니까  대본을 꾸미고 음악을 선곡하고 사용하는 것이 모두 소속 변사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단테의 <地獄篇>(神曲) 사용 음악에 대해 건의 한 것인데, 아마도 해외(일본)에서 이 영화를
본 독자이거나 아니면 영화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의 주문 인듯하다.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이해한 것이다. 다음의 경우에서 이를 분명히 알게 한다.

“단테 <地獄篇>은 언제나 공개 됩니까
음악 곡목 선택이 제일 중요 한 줄 안다. 나는 작년 정월에 일본에서 구경한 일이 있기로 한마디 말해둔다.(雲潭生)”

표기상으로는 동일인이 아니다. 이렇게 이미 일본에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나오는 음악에 대해 의견을 제시 할 수 있었고 더불어 사용 음악에 대해 미리 제안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이 영화의 음악은 크래식이었으니까 고전음악에 남다른  상식이 있는 인물 일 것이다. 이러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인식은 다음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영화와 음악을 이해한 결과이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관계는 변사 이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데 조선사람 극장 음악이란  추악망측해 못 듣겠다. 정신 차리자”(朴生)

전문가적인 의견이다. 당시 변사의 위치가 영화 전체를 좌우하던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음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을 강한 어조로 제시했다. 이는 다음 기사에서  처럼 좀더 구체적이고 비난조로 이어졌다.

영화<아리랑>이 개봉되기 전인 1926년 6월 ‘k生’의 명의로 “각 극장 음악부에 희망한다.

제발 좀 케케묵은 곡목은 집어치고 생기가 있는 새 곡목을 사다가 음악이 무었이고 하지
아느려거든 집어치우는 것이 어때! 사진까지 볼 재미가 없드라”라고 했다. 아마도
영화 내용을 불문하고 같은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 한듯하다. 구체적이고 전문가적인
지적이다. 이어 한 달 후의 기사에서는 다시 음악 내용 즉 질에 대해 지적했다.
‘극장 경영자’를 향해 “첫째 음악부터 다 썩고 썩어빠진 곡조 아무런 예술적 두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흉내만 내고 있는 모양은 참아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래 가지고는 구경 갈 사람들이 없어 질 줄 알어라” 나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것이 근본이니만큼 반주악은 관객의 귀에 거실리지 않고 영화장면과 전혀 조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힐난(詰難)했다.

이상과 같은 정황이고 보면 우리 영화사 초기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일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하게 인식되어 있었고 이를 실현하려는 비판의식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되어 이후의 주제가가 부각된 <아리랑>이나 <낙화유수>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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