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갑의 아리랑 - 국악신문



  기미양(2010-11-26 14:54:53, Hit : 480, Vote : 60
 2005-11-19 김산, 님 웨일즈, <아리랑>으로 돌아왔다 156호

지난 8월 15일 광복60주년 기념식에서 김산은 <애국장>을 서훈 받았다. 그리고 이번 10월, 김산의 생애를 소설화한 《Song of Arirang》의 저자 님 웨일즈 여사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로서 제국주의에 대한 처절한 투쟁으로 헌신한 김산의 생애와 저자 님웨일즈의 업적에 국가적 공인을 공표했다. 이로서 두 인물과 한 권의 책은 비로소 우리에게 돌아 온 것이다.  

1920년대의 암흑기 조국에 이바지하는 길, 그것은 자신의 명이 민족적이라면 거기에 몸을 던지는 일일 터, 김산은 그랬다. 판소리나 잡가 같은 전통음악과 찬송가나 창가가 서구음악으로 양분되어, 전자는 사계축이나 삼패 출신들이, 후자는 유학을 하고 온 계몽적 지식인들이 그 담당층 이었다. 그러니 전자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이고, 후자는 지적이고 예술적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김산이 아리랑을 인식한 1910년대에서 20년대는 서구식 유행가와 예술가곡이 분화되지 않고 모두 서구적인 장르에 해당했다. 이는 찬송가나 창가를 전파하던 개화파 지식인들이나 민족주의 계열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매일신보》 1908년 4, 10자의 <가곡개량이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산이나 나운규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은 매우 각별한 것이다.
나운규 영화 <아리랑>은 자유의 표상인 미친 주인공 영진을 통해 식민통치에 들이댄 조선낫이었다. 복수관념의 표현이 바로 낫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겹의 우의법(寓意法·알레고리)으로 식민통치를 낫으로 찍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의 경제적 착취는 천상민으로, 일제 주구(走狗)는 오기호(오가)로, 조국을 가여린 영희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조국을 사막을 헤매는 남녀와 식수로 여자를 요구하는 사막의 대상(隊商)을 일제로, 물값으로 넘어간 여인을 빼앗긴 조국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우의법을 당시 관중들은 이를 모두 알아차린 것이다. 바로 우의법에 기댄 영화적 수법의 승리인 것이다.

<아리랑>의 성공 요인의 수수께기가 바로 여기에 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나운규의 아리랑의 형상화는 김산에게는 개인적이나 더 절실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아리랑을 현실에서 부르는 노래로서의 아리랑, 또 하나는 ‘조선 민중이 어쩔 수 없이 부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적 노래’, 아리랑과 ‘아리랑고개’가 체화되고 주체화된 결과로 ‘가치 있는 실패와 죽음으로라도 극복해야 할 고개의 노래’로 인식한 것이다. 전자는 감옥에서 부른 <아리랑옥중가>와 해륙풍에서 탈출하고 굶주림에 헤메일 때 부른 <아리랑연가>이고, 후자는 네 번에 걸쳐 피력한 아리랑에 관한 지론이다. 이는 당시 지식인 누구도 갖지 못한 김 산만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불 화살 같이 산 삶’이 그만의 것이라면, 그 원동력은 바로 아리랑에서 얻은 민중들의 아리랑고개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결과한 것이다.  

  바로 이 신념에 동의한 님 웨일즈가 김 산의 혁명가적 활동을 기록하며 책의 표제 표제를
《song of ariran》으로 한 것은 김산의 의견은 아닌듯하다. 우리는 굳이 ‘아리랑의 노래’라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arirang’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0년대 말에 《song of arirang》이란 일본 제작 영문 표기 음반이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를 《Song of Arirang》으로 삼은 이유이다.  

아리랑은 ‘고개의 노래’이다. 그 고개는 희망의 고개일 수도 있고, 절망의 고개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또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이거나 국가적인 수난의 고개 일 수도 있다. 바로 김산의 시대는 거대한 민족적 수난인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에 신음하던 때였다. 이 때 김산은 한민족이 추적해 온 역사적 체험, 즉 고개를 에두르지 않고 넘고 넘어 열두 고개를 향해가 민중 저력을 철저히 주체화여 실천했다. 그 김산을 님 웨일즈는 중국의 거대한 혁명의 주인공들 보다 더 큰 인물로 보고 형상화 한 것이다. 그것이 노벨상 후보에 까지 추천되었던 작품이《song of arirang》이고, 1946년 미국대통령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유일한 역문 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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