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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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기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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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음반해설]김산의 아리랑-기미양, 김연갑
<김산의 아리랑>

1.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1-1. 김영임 아리랑고개) 6:28

2.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 3:33

3.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0:49

4. 아리랑, 위험한 노래 1:49

5. 나는 아리랑 고개를 보았다 4:20

6. 조선의 혁명은 11월에... 2:45

7.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모두 울었다 0:49

8. 죽음과 패배의 노래 4:18

9. 동포의 피눈물로 아로 새긴... 3:11

10.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1:55

11. 활동사진 영화 아리랑 3:33

12. 김영임의 아리랑연가 12-1. 아리랑 연가 4:31

13. 김영임 아리랑 옥중가 13-1. 아리랑 옥중가 8:52 총 46:53

* 노래:김영임(1. 12. 13트랙 일부). 영어 낭송:김수희. 우리말 낭송:김연갑.

음악 CD가 아니다. 음악은 1, 12, 13 트랙에 일부 들어 있고, 나머지는 영어와 우리 말로 낭송하는 대목이다. 내용은 아래 홍보 글을 참조하세요. 해설서 자세하고 영어가 잘 되어 있다. 음반 크기는 DVD크기이다.(2007.7.14)  

                음반해설:
                                                   기미양(김산사이트 운영자).
                                                    김연갑

아리랑의 장구한 역사에서 엄동(嚴冬)의 시절이었던 1920~30년대를 뜨겁게 노래했던 영화인 나운규와 혁명가 김산(金山), 이들은 영화 <아리랑>과 자서전《Song of Ariran》을 통해 아리랑을 ‘역사의 노래’, ‘민족의 노래’가 되는데 기여했다. 특히 김산은 아리랑의 세계화에도 기여하여 오늘의 ‘세계의 노래’가 되게 했다.

김 산은 아리랑을 만난을 극복하게 하는 ‘힘의 노래’로 인식했으니 이는 지극히 낮은 위치에서 아리랑을 만났던 데서 진정한 아리랑의 정체성을 포착해 낸 결과이다. 이를 우리는《Song of Ariran》의 진술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김 산과 님웨일즈 공저로 항일운동사에서나 아리랑 역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저작물이다. 80년대 들어 우리는 혁명가, 항일운동가로서의 김산을 조명하는 데는 이 책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러나 정작 민요 아리랑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규명하는 데는 주목하지 못했다. 따진다면 표제가 ‘아리랑’이었는데도 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했던 것이다.

《Song of Ariran》은 뉴욕 <존 데이> 출판사에서 1941년 출간 되었다. 1953년7월 일본어판이, 1977년에 홍콩판이, 1973년에 미국에서 재판이 발간되고, 국내에서는 1984년에 조우화 번역,《아리랑》으로 출간 되었다. 김 산의 구술이 님 웨일즈에게 전해진 곳은 ‘아시아의 광풍 중국혁명’의 와중인 1930년대 중국에서이고, 이것이 정리되어 원고화된 곳은 필리핀의 바기오 섬이고, 다시《Song of Ariran》으로 출간되어 독자에게 전해진 곳은 미국에서다.

공동저자 님 웨일즈(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와 김 산의 만남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님 웨일즈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세계적인 중국 전문가인 에드거 스노(Edgar Snow)의 부인이다. 또한 그녀 역시 미국 <예일대학>을 졸업 한 실천지향적인 지식인으로서 동양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였다.

1937년 5월 초여름, 만리장성의 종착지인 옌안(延安)에서 중국공산당대회가 소집되었을 때 국민당의 감시를 뚫고 참석 한 몇 명의 외국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전선(戰線)의 사정으로 이 대회가 늦춰지자 님 웨일스는 <노신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영문 도서들이 한 조선인 청년에게 모조리 대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며칠 후 마침 초여름의 장대비가 오는 날, 도서관 직원의 전갈을 받은 김산이 빗 줄기를 배경으로 들어섰고, 이 광경에서 님 웨일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스페인 풍모의 김 산을 습기를 잔뜩 먹은 낡은 책 냄새가 진동하는 골방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으로 자칫 잃어버릴 뻔한 항일투쟁사의 중요한 기록문학인 민족서사시《Song of Ariran》을 잉태하게 되었다.

님 웨일스는 조선인 혁명가의 길지 않은 인생 속에 20세기 혁명사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 숨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의 남편 에드거 스노는 마오 쩌뚱이라는 세기적 거물을 취재해 《중국의 붉은별》을 썼지만, 님 웨일스는 사소한 것에서 뿌리 깊은 모순을 찾아내는 섬세한 촉수를 가졌다.

님 웨일스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體化)하면서 역사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통과해야 하는 비극의 길목을 스스로 지키고자 했다. 그런 그녀가 역사의 거대한 모순과 맨몸으로 부딪칠 때 내는 온갖 소리를 다듬어 간직하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을 놓칠 리가 없었다.

김산은 마지막 유언처럼 자신의 혁명 역정을 2개월 동안 22회에 걸쳐 구술해 주었는데 여름이 끝나자 노트 7권으로 남았다. 이렇게 하여 젊은 혁명가의 비극적 삶이 미국 저널리스트의 프리즘을 거쳐 불멸의 생을 얻은 것이다. 바로 《Song of Ariran》이다. 이 책은 펄벅이 조선 말기의 역사를 느리고 비극적인 사랑 얘기로 각색한 소설 《갈대는 바람에 흔들려도》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는데, 조선 청년을 혁명 현장의 열기를 역사로 승화시키는 지성 그 자체로 그렸다.

국내에서는 1984년 《아리랑》으로 번역 출판되어 오늘에 까지 판을 거듭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조선과 수만리 밖의 광동(廣東)에서 조선혁명운동을 하다 청년 수백 명이 아리랑을 부르며 산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려준 이가 바로 김산으로 열다섯 나이에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만주로, 상해로, 북경으로, 광동으로, 연안으로 중국대륙을 헤매며 “혁명투쟁의 현장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분단국가의 남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의 동아시아는 ‘한 세대 동안에 역사가 천년이나 흘러가는 곳’이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33살 청년은 “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며 중국혁명가 25명의 삶을 인터뷰한 님 웨일즈를 매료시켰다. 그것은 김산의 폭넓은 체험, 특히 중국혁명에 투신하였으면서도 중국공산당에 의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국외자로서의 위치에서 얻은 성찰과 고통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산, 그는 누구인가?

김산은 1930년대에 중국혁명의 성공만이 약소국 조선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서 ‘불화살처럼 삶을 산’ 인물로 아리랑의 저항정신과 상징성을 깊이 인식한 인물이다.

1930년 11월, 김산은 장개석의 국민당 경찰에 체포되어 전향 거부자로 일본 영사관을 거쳐 일본 경찰에 넘겨지게 되었다. 이로써 김산은 이듬해 4월까지 투옥, 6개월간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바로 이때 생애 최고의 공포와 회한의 시간을 보내며 감방의 벽에 유언처럼 이렇게 썼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이렇게 아리랑고개를 죽음의 고개로 인식하고 자신과 같은 형명가의 죽음이 없고서는 결코 조국이 해방될 수 없음을 알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주저하지 않음’은 바로 변절이나 도피나 자살과 같은 방법의 목숨 구걸은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모진 엄동의 시간이었을 수형 생활을 견딘 김산의 다음과 같은 토로에서 분명해진다.

“나는 일본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과 심리상태에 대한 압력을 최악의 방법으로 실험 받았다.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시련이 또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아리랑을 불렀다고 했다. 이는 마치 “사자밥을 이마에 달고 떼를 탄다”는 강원도 남한강 뗏꾼들이 뗏목 위에서 공포를 잊으려고 아리랑을 불렀듯이 김산 역시도 그런 심정으로 아리랑을 불렀던 것이다.

님 웨일즈가 1980년대 중반, 그를 회상하여 쓴 시 <나의 김산>에서 “김산은 인간을 신뢰했으며, 1938년 중국 공산당에 처형당해 장엄한 오페라와도 같은 삶을 산 이”라고 했듯이,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굵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에서의 활동을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금(like salt in water)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그리고 중국 혁명의 성공이 곧 약소국 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믿고 활동한 삶이었다.

정리한다면 1920~1930년대 “중국·시베리아·만주·한국·일본에 도래한 폭풍의 시대를, 천년의 역사가 한 세대로 압축되는 역사의 역동 속에서, 객관적 철학이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 같이 살아간 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의 고뇌·좌절·사랑·열정·사상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이러한, 누가 보아도 특별한 삶을 산 김산이 아리랑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했음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민중적 저항성과 대동성이 곧 아리랑의 정체성임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산과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은 논고가 있었으나 책의 표제로 될 만큼 핵심어인 민요 아리랑에 대한 논급은 없었다. 아리랑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유효하고도 유력한 공시(公示)매체이고 특히 혼란한 중국의 항일전선에서 목숨을 내 놓고 투쟁하는 김산 같은 이에게는 불멸의 존재증명임에도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Song of Ariran》속의 아리랑

당시 중국의 최고 혁명가들을 취재하러 온 님 웨일즈와 김산의 연안에서의 만남은 “시대를 철저하게 호흡해 간 한 지식인의 전기를 넘어 동아시아의 숨가뿐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을 남기게 했다. 바로 《Song of Ariran》으로, 이 책에서는 10여 차례에 걸쳐 아리랑을 언급하였다. 곧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다.

이제 먼저 그가 인식한 아리랑 상황을 가능한 한 원문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구체적으로 아리랑이 불려진 대목부터 살펴본다. 이 책에서는 각종 정치집회와 전투상황과 특수한 상황 하에서 노래가 불려지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 불려진 노래들은 ‘인터네셔널가’와 같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공산주의 노래와 조선의 민요 아리랑과 노동요, 그리고 두만강노래와 ‘대동강타령’ 같은 지방민요가 불려졌다. 그런데 아리랑은 구체적으로 불려지는 대목이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먼저 두 번에 걸쳐 실제 불린 부분을 살펴보는데, 김산이 해륙풍의 매롱(梅?)전투에서 패하고 오성륜 등 두 명의 조선인과 8명의 중국인과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헤매던 중 김산이 아리랑을 부른 장면이다
님 웨일즈가 1980년대 중반, 그를 회상하여 쓴 시 <나의 김산>에서 “김산은 인간을 신뢰했으며, 1938년 중국 공산당에 처형당해 장엄한 오페라와도 같은 삶을 산 이”라고 했듯이,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굵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에서의 활동을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금(like salt in water)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그리고 중국 혁명의 성공이 곧 약소국 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믿고 활동한 삶이었다.

정리한다면 1920~1930년대 “중국·시베리아·만주·한국·일본에 도래한 폭풍의 시대를, 천년의 역사가 한 세대로 압축되는 역사의 역동 속에서, 객관적 철학이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 같이 살아간 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의 고뇌·좌절·사랑·열정·사상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이러한, 누가 보아도 특별한 삶을 산 김산이 아리랑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했음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민중적 저항성과 대동성이 곧 아리랑의 정체성임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산과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은 논고가 있었으나 책의 표제로 될 만큼 핵심어인 민요 아리랑에 대한 논급은 없었다. 아리랑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유효하고도 유력한 공시(公示)매체이고 특히 혼란한 중국의 항일전선에서 목숨을 내 놓고 투쟁하는 김산 같은 이에게는 불멸의 존재증명임에도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Song of Ariran》속의 아리랑


당시 중국의 최고 혁명가들을 취재하러 온 님 웨일즈와 김산의 연안에서의 만남은 “시대를 철저하게 호흡해 간 한 지식인의 전기를 넘어 동아시아의 숨가뿐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을 남기게 했다. 바로 《Song of Ariran》으로, 이 책에서는 10여 차례에 걸쳐 아리랑을 언급하였다. 곧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다.

이제 먼저 그가 인식한 아리랑 상황을 가능한 한 원문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구체적으로 아리랑이 불려진 대목부터 살펴본다. 이 책에서는 각종 정치집회와 전투상황과 특수한 상황 하에서 노래가 불려지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 불려진 노래들은 ‘인터네셔널가’와 같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공산주의 노래와 조선의 민요 아리랑과 노동요, 그리고 두만강노래와 ‘대동강타령’ 같은 지방민요가 불려졌다. 그런데 아리랑은 구체적으로 불려지는 대목이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먼저 두 번에 걸쳐 실제 불린 부분을 살펴보는데, 김산이 해륙풍의 매롱(梅?)전투에서 패하고 오성륜 등 두 명의 조선인과 8명의 중국인과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헤매던 중 김산이 아리랑을 부른 장면이다


“우리는 불 옆에 둘러 앉아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 하였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모두에게 가르쳐 주었다.

한국민요 아리랑,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고 모두 울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곡조 자체가 슬프게 부르면 슬픈 노래이기에 울었을 수도 있고,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 혁명전쟁에서 겪는 처지를 슬퍼해 조국의 민요 하나를 부르며 울었을 수도 있다. 아마 두 가지 모두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굳이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인데, 이는 김산이 어느 다른 노래 이상으로 아리랑을 특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 상황은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일본인 간수와의 대화와 아리랑 사설을 말하는 대목이다. 간수가 김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데, 자기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인지 한국어로 시 한편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하자 이를 거절한 뒤 다시 이어진 대화이다.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인터내셔널가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노래를 좀 불러주시지 않겠어요? 대단히 좋은 노래임에 틀림없겠지요.

-오늘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없군요. 그것은 승리의 노래이지 패배의 노래가 아닙니다. 하지만 조선말로 가사를 써드리지요. 그러면 당신 부인이 번역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가사를 적어 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차곡차곡 접어놓고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늘 같은 날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뭔데요?

-조선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이지요.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황량한 갈색 벌판을 바라보고 광동 코뮨과 해륙풍을 생각하면서 낮은 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그는 대단히 감동하여서 이제까지 들은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칭송을 했다.

-당신 부인도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대로 이 노래를 알고 있지요. 만일 당신이, 부인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면 당신은 부인에게 새 옷을 사주고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매우 인상적인 옥중 대화록이다. 조선 여인을 부인으로 둔 일본인 간수와의 아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대화를 통해 김 산이 인식하고 있는 아리랑을 짐작할 수가 있다. 특히 ‘패배와 죽음의 노래’라고 하면서도 사랑의 노래라고 한 것은 인상적이다.

한편 대화의 내용상 이 때 김산이 거론했던 아리랑은 아마도 <아리랑 연가> 였을 것이다. 이 아리랑은 님 웨일즈가 1960년대 《Song of Ariran》에서 제외했던 내용을 정리한 《연안노트》에 정리 해 놓은 것으로 이 《연안노트》의 일부 내용은 김산의 생애와 조선에 관한 내용을 추려 1986년 국내 학민사 에서《아리랑 2》로 출간되기도 했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 연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고개는 열두고개
마지막고개를 넘어간다

떠나는 님일랑 잡지를 마오
못보다 다시보면 더 반갑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는 물새도 못살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은데
구름뒤에서 웃는이 그누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제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을 그의 진술을 통해 정리해보기로 한다. 먼저 아리랑의 역사를 언급 한 부분부터 살펴본다.

“민요 아리랑이 불린 것은 300년이나 되었다. 조선조 때 씌어 졌으나 아직도 불려진다. 그동안 2천만 명이 망명했다. 처형될 사람들은 죽으러 갈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불렀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이 부른다. 중국사람 역시 만주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1910년 이후 가사 5절이 더해졌다.”

193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300년 전부터 불려온 노래라고 했다. 정치적 탄압을 받은 이들이 조정에 저항하여 부르는 노래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이 형성된 것이 300여 년 전 조선시대 말이라고 했다. 이는 오늘의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아리랑의 역사는 고려말 조선초 강원도 정선지역에 은거한 이색(李穡)과 전오륜(全五倫) 등의 세상에 대한 애소(哀訴) 시(詩)가 지역민의 인식과 사설에 개입하면서 역사성을 확보, 인접 지역에 확산되었다. 특히 문경(聞慶) 새재의 민중성과 ‘고개’의 의미가 아리랑과 합성하여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기간 서울에서 불려지게 된 것을 계기로 전국에 확산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국적인 확산 시기는 ‘300여년 전 조선시대말’ 일 수는 있어도 발생 자체의 시기는 500여년 전이 되는 것이다.

어떻든 김산은 다음의 아리랑 사설이 한일 병탄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며 제시했다. 'Song of Ariran'첫 면에 수록된 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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