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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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기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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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음반해설]정은하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기미양
  
정은하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음반해설]   기미양(벤처아리랑 대표)

이 음반은 우리나라 아리랑권역 중에서 여기에 수록된 영남의 아리랑은 토속 정선아라리가 전파되어 1926년 일제강점기 잡가적 성격의 신민요로 형성된 밀양아리랑과 1980년 초 부터 불리워진 문경아리랑과 근래 들어서 창작된 대구아리랑 등 11종과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아리랑 7종을 수록 했다. 특히 밀양아리랑·경상도아리랑·광복군아리랑·독립군아리랑·울릉도아리랑·독도아리랑 등을 수록한 것은 감상용으로 형상화 한 뜻 깊은 작업이다.

이들 영남아리랑의 음반화는 우선 아리랑이 영남인 공동체의 의사소통어로 존재해 왔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아리랑의 현재상을 조망케 하여 영남인의 역동성을 담은 심상(心象)의 전승이자 잃어버린 대동의 자족을 복원하는 행위전승으로 예능화 하여 현대적 콘텐츠 요소로 활용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이번 음반은 의미 있는 ‘영남 아리랑의 재발견’인 것이다.

소리를 한 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서울 이창배 문하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한 명창 정은하이다. 정은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구에서 <영남민요보존회>를 결성, 운영해오다 후원회와 지인들에 의해 2006년에 <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를 구축해 놓았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념 <대구아리랑제>를 기획하여 개최한 후 지금까지 주관해 오고 있다. 전통과 퓨젼이 어우러지는 우리나라 ‘도시형 아리랑축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2011년 세계육상경기대회 등을 통해 아리랑의 세계화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대구아리랑 얼쑤,

  영남아리랑, 얼쑤

[음반해설]정은하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음반해설:기미양

CD1-영남아리랑 -----------------------------




대구아리랑 Ⅰ

사설에서 ‘어데에’·‘이 문둥아’ 등의 사투리와 금호강·비슬산·경상감영 등 향토 지명이나 명승지를 시어로 하여 향토성을 담았다.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고개로 나는 넘어간다”로 정체성을 인식하고 동일체의 원칙을 따랐다. 가락은 경쾌한 경상도 메나리조에 세마치장단이다.


이 대구아리랑은 모범적인 창작 아리랑 사례로 평가 받는다. 여기서 모범적이라 함은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작사, 작곡자에 의해 이뤄져 지역정서가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1936년,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가사 일부는 “낙동강 기나긴 줄 모르는 임아 / 정나미를 거두려고 가실 나요/ 아롱 아롱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이다. 전 4절에 후렴이 동시대의 다른 아리랑과는 다른 ‘아롱형’이다. 곡은 강원도 잦은아라리의 변이형으로 엇모리 장단의 메나리조로, 듣기에 따라서는 애수적인 느낌의 노래다. 아마도 이 음반이 두 번이나 발매되었어도 유행(전승력)하지 못했고, 더욱이 대구지역에서 토착화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이미 강원도아리랑 등이 널리 불리는 상황에서 같은 메나리조라는 문제점과 곡조와 가사에서 영남적인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오늘날 창작 아리랑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문경아리랑

영남에서 한양에 이르는 관문인 경북 문경 조령지역과 그 일대에서 ‘문경아리랑’ 또는 ‘문경의 노래’ 또는 ‘홍두깨 소리’로 불리는 노래다. 첫 사설에서 ‘박달재’로도 불리는 ‘문경새재’와 지역 특산품인 박달나무가 나와 향토적이고 곡조는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의 음악제인 메나리조의 긴아라리 형이다. 정선아라리가 영월을 넘어와서 단양을 통해 예천을 건너 문경으로 전해진 것으로서 선율과 사설의 대표곡을 살펴보면  정선아라리를 온전하게 계승한것 이다. 이덕원옹(92세)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를 첫수로 부르기도 한다.이 사설은 정선아라리 4천여수중 첫수이기 때문이다.





울릉도아리랑

울릉도아리랑은 1980년대 중반 울릉도에서 소문난 소리꾼 중 한사람인 당시 60대 초반의 김재조(2001년 작고)에 의해 방송과 90년대 mbc라디오 <민요대전>을 통해 알려진 소리다. 당시로서는 주변의 몇몇 정도를 제외하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울릉군 내(內) 행사 등을 통해 ‘울릉도아리랑’으로 꽤 알려진 소리이다. 정선아라리 3대 명가의 김병화선생이 소개한 것인데, 선율은  강원도의 아리랑조인데다 엮음형이 있어 주목하게 되었다. 정선아라리 선율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 울릉도로 넘어가면서 외부인들에 의해 붙여진 곡명으로 여겨진다. 기존의 조사보고서나 울릉군지 등에 수록되어있지 않아 사설이 독자적인 것인지의 여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울릉도아리랑은 이후 서울 등지의 공연에 초청되어 토착화를 시도했으나 그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은 사설의 투박성과 경쾌한 곡조로 가장 널리 불리는 아리랑의 하나이며, 일제강점기 만주일대의 동포들과 임시정부 국군의 군가(광복군아리랑)로 변용되어 시대적 기능을 한 ‘역사의 노래’이다.


기록상 밀양아리랑의 첫 출현은 음반 발매 광고인 <매일신보>의 1926년 9월 26일자 일축소리반 음반 광고(박춘재 장고, 대구 김금화 창)에 ‘密陽卵卵打令’으로 되어있다. 이 ‘아리랑’의 한자 표기임은 ‘서울아리랑’을 ‘京卵卵打令’으로 표기한 예와 같다. 세마치장단의 경토리에 의한 밝은 소리로 빠르며 씩씩하고 경쾌하다. 음계는 ‘라· 도· 레· 미· 솔’의 5음계로 되어 있고, ‘라’로 시작하여 ‘라’로 끝나고 있어 일반적인 경기민요의 선율형태와 같다. 어떤 자료에도 작사·작곡자가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20년대 중반에 음반을 통해 출현한 것을 감안하면 유희성이 강한 잡가적 성격으로 형성된 신민요로 보아야 한다. 이는 밀양지역 음악인에 의해 작창된 신민요라 할지라도 음반과 방송을 통해 형성되고 유행한 곳은 서울이 되기 때문이다.




광복군아리랑 / 영천아리랑 /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은 사기를 북돋우고 사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밀양아리랑 곡조에 군가로

개사한 가사를 붙여 노래로 보급시킨 것이다. 그리고 70년 대들어 중국동포사회의 아리랑 상황이 알려지면서 밀양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광복군아리랑과 영천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독립군아리랑이 확인되었다.

영천아리랑 곡조에 의해 불려지는 독립군아리랑은 사설의 내용과 구성면에서 광복군아리랑과 유사하다. 만일 이 아리랑이 일제시대 중국동포사회에서 불려진 것이라면. 이를 통해 영천아리랑의 존재도 입증된다 하겠다.





경상도아리랑


중국동포사회에서 불리던 것이 분단 이후에 북한지역에서도 불리게 된 것이다. 북한 발행『조선민요선곡집』에서는 이 아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음조적 및 정서적 특질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나 이 노래는 경상도 지방의 토속적인 민요들과는 일정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중략) 밀양아리랑이나 옹헤야와는 달리 은근하면서도 처량하며 음조직으로 볼 때 강원도 지방의 민요들과 더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엇모리장단에 기초하고 있는 선율 형상은 처량하면서도 건드러진 정서로 일관되어있다.”




독도아리랑


노래의 사회성과 민족성을 지닌 시대의 노래이다. 여러 음악장르의 <독도아리랑>들은 그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곡이다. 대중적으로 독도문제를 국내, 외에서 환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5년에 작창한 독도아리랑은 영남인의 독도사랑운동의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대구아리랑 Ⅱ


대구아리랑Ⅱ는 정은하가 우리의 삶을 말한 것이다. 앞으로 매년, <대구아리랑제>에서 많은 시민들이 계속참여하여 새로운 가사의 대구아리랑을 지어, 노래 불러져야 할 것이다. 대구아리랑은 향토, 토박이들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CD2-팔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엇모리에 의한 5음계 계면조의 곡으로, 순진한 시골 처녀가 사랑을 하소연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원래는 엇모리와 비슷한 장단에 메나리토리로 된 강원도 자진아리랑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일제시대 음반화하면서 경토리로 되어 토속성을 상실, 통속민요가 되었다.




서도아리랑


북한에서 많이 부르고 있는 아리랑으로서 강원도아리랑에서 파생한 것으로 서울 구아리랑과 비슷한 곡조인데 이곡은 조금 더 빠르고, 흐름은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양산도 장단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흥겹고 낙천적이다.《조선민족음악전집3》에서 1989년 2월에 악보로 출판되었으며 당시 서도지방과 경기도 지방까지 보급되었다고 한다. 1896년 헐버트가 채록한 3/4박자의 <아르렁>의 선율이  이 서도아리랑과 비슷하다. 북한에서는 이미 서도아리랑과 헐버트아리랑을 비교하여 소개를 하고 있다.






단천아리랑

함경남도 동해안 북부 단천 지방에서 생겨나 함경도 전역에 전파된 것으로 전렴(前斂)은 서도아리랑의 선율에 가깝고 후렴(後斂)은 남도아리랑과 가깝다. 양산도 장단으로 부르는데 선율은 밝고 명랑하다.





해주아리랑

황해도 해주아리랑인데, 강원도민요와 가락이 비슷하나 강원도민요가 느리고 애절한 데 비하여, 비교적 빠르고 애절하면서도 거세게 들린다.





뗏목아리랑

<강원자진아리>라고 하던 것으로 <정선아리랑>에 비해 장단이 훨씬 빠르고 영서(嶺西)·인제(麟蹄)지방 일대에서는 <뗏목아리랑>으로도 알려져 있다. 분포지역은 영동·영서지방으로 이 선율은 영남의 <선산아리랑>과 1936년 최계란의 <대구아리랑>의 곡조와 엇모리 장단이 흡사하다.





본조아리랑

1926년대 나운규 감독의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로 탄생하여(작사는 나운규, 작곡은 김영환) 서울·경기 지역에서부터 불려지기 시작하여 ‘신아리랑’으로 불리다가 ‘아리랑’ 또는 ‘본조아리랑’으로 대표성을 부여 받았다. 서울아리랑, 경기아리랑, 이라고도 한다. 1990년 남북단일팀 단가로 합의하기도 했다.





정선아리랑

김옥심의 대표곡으로 부르는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말한다. 정선아라리를 서울소리에 맞게 편곡한 것으로 발표 당시 큰 반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정선아리랑이다. 해방 후 이창배와 김옥심에 의해 불려졌다.

이 아리랑은 긴아리랑과 함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경기소리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일반화 되지 못해 전승이 단절 위기에 있다.




-독도아리랑
그동안 가수 신형원과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에서부터 그동안 많은 <독도아리랑>이 젊은층에서 렙에서 재즈로 창작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가사가 새로이 지어져 불려지고 있는 가운데에서, 아리랑의 여러 음악장르를 넘나들며 확산현상이 보이기도 한다. 노래가 갖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노래의 사회성과 민족성을 지닌 시대의 노래이기도 하다. 여러 음악장르의 <독도아리랑>들은 그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곡일 것이다. 대중적으로 독도문제를 국내외에서 환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독도와 울릉도는 경북의 관할 행정지역이다. 이번 정은하의 <독도아리랑>의 창작은 영남인의 우리땅지키기 독도사랑운동의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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