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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기미양
제 목   徐應浩 신문조서 -장지락 관련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義烈鬪爭 3)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 義烈鬪爭 3 국한문

경찰신문조서(國漢文)


문서제목 徐應浩 신문조서  

徐應浩 신문조서  

피의자 徐應浩


위 치안유지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소화 四년 一○월 一三일 京城本町경찰서에서 사법경찰리 도순사 吳疇福을 입회시켜 피의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다.

문 성명, 나이, 신분, 직업, 주거 및 본적지는 어떠한가.

답 성명은 徐應洛, 徐義駿 즉 徐應浩.  
연령은 당년 三○세.  
직업은 없음.  
주거는 일정치 않음.  
본적지는 咸南德源郡赤田面新豊里 번지는 모름.

문 작위, 훈장, 기장을 가졌거나 연금, 은급을 받으며 공무원은 아닌가.

답 해당 없다.

문 종래 형사처분 또는 기소유예나 훈계방면을 받은 것은 없는가.

답 해당 없다.  
여기서 피의사건을 밝히고, 그 사건에 관하여 진술 사항 유무를 물은 바, 피의자는 아래와 같이 답하다.

답 나의 경력부터 말하면, 자연히 중국으로 가게 된 동기도 판명된다. 나는 대정 三년 봄에 元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元山에 있는 사립 保光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였고, 대정 六년 봄에, 졸업과 동시에 間島의 局子街商埠地에 거주하며 여인숙을 경영하는 한편, 일본영사관의 통역으로 근무한 일이 있다. 자형 朴昌成 댁에 갔다가, 그 해 六월에 본적지로 귀향하여 한 때 무위도식 중 그 해 九월 본적지에 있는 德成학교의 교원으로 봉직하다가, 이듬해 二월에 퇴직과 동시에 元山陽地洞의 조선 澱粉주식회사에 직공으로 취직, 동년 사직하고 咸南長津郡古土里에 있는 內鮮人협동경영의 「協同運送部」에 점원으로 취직하였다가, 그 해 一○월 그 동네 거주의 物産객주업 金胄乾 댁에 서기로 전직했다. 이듬해 즉 대정 八년 三월 咸興으로 나와서 丸三材木회사에 사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회사 실패로 폐점하게 되었다. 그 때 약제사 수습생 모집 중인 間島龍井村의 미국인 경영 濟昌병원을 방문하여 통역으로 채용되어 근무 중, 대정 九년 一一월경 일본 東京에 유학할 희망을 갖고, 학자금 보조를 받을 목표로 局子街에 거주 중이고 浦潮新韓村에서 浦潮파견 일본헌병대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는 자형 朴昌成 댁을 방문, 약 一개월 묵고 있다가 매월 四○원씩 보조받을 승낙을 얻고 間島에 돌아왔다. 이윽고, 朴昌成으로부터 불의의 실패로 학비 보조가 불가능하게 되어 당분간 유학을 보류하라는 통고를 접하고 나는 한동안 낙담해 있었다. 그러나 한사코 진학할 생각으로 일단, 중국 上海로 나아가서 장차 미국으로 도항할 결심으로 대정 一○년 二월 濟昌병원을 사직하고, 그간 저축했던 돈 八○원을 여비로 間島를 출발, 도중에 본적지에 들러 약 一주일간 머물다가 京城으로 나와, 당시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는 金宗鎭 댁에서 三박하고 釜山-門司를 거쳐, 三월 하순에 上海에 상륙하였으나 아는 곳도 없기에 일단 일본인 여관에 투숙하여, 불란서 조계의 조선인 부락을 배회하던 중, 平安道 출신으로 法租界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鮮于赫의 처를 만났다. 간청하여 上海法租界仁成학교 교사 합숙소로 안내를 받고, 그곳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답 그 후 어떻게 했는가.


-----중략----

문 義烈團 대표 대회의 정황을 상세히 이야기하여라.

답 대표 대회에 출석한 사람은 단장 金元鳳과 權晙, 李英駿, 崔圓(黃海道 태생, 당 三三세쯤), 柳友槿(慶尙道 태생, 당 三二세쯤), 陳公木 즉 金慶洙(慶尙道 태생, 당 三○세쯤), 吳成崙, 韓錦山 즉 韓鳳根(당 三五세쯤), 安維才(당 二六·七세), 李春岩(당 二六세쯤), 姜平國(당三○세쯤), 姜世宇(咸南甲山 태생, 당 三○세쯤), 金星淑(平安道 태생, 당 三四세, 在上海), 張志樂(平安道 태생, 당 三七세)과 내가 집합하였다. 義烈團의 진흥방법에 관하여 토의한 결과 단의 조직을 개편해 각부를 설치하고, 단무의 통일과 단원의 결속을 공고히 할 것과 중국국민당과 연락하여 물질적 원조를 얻는 동시에 단원을 중국군대에 입대시켜서 훈련받게 하고, 그래서 義烈團이 취지, 강령으로 삼는 조선독립을 기성(期成)함을 결의하고, 이 수단 방법은 위원을 선정하여 일임하기로 했으며, 호선한 결과 중앙집행위원으로 金元鳳, 吳成崙, 金星淑, 張志樂, 崔圓, 李英駿, 權晙, 姜世宇가 당선되고 安維才, 李春岩, 姜平國과 나는 후보에 선출되었다. 당시 대회에는 廣東거류자만 출석했던 바, 인원수는 약 三○명쯤이었다.

문 대회에서 단의 목적수행 방법에 대한 토의는 없었는가.

답 실제에서는 대관(大官) 암살 및 건조물 파괴 등을 실행하는 일이지만, 강령에 명기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吳成崙일파가 주장했지만 金元鳳파의 출석자가 많았기 때문에 유야무야로 끝난 일이 있었다. 실행자 밀파에 관해서는 일체 논의하지 않았다.

문 대회에서 선언하기로 결의한 사실은 무엇인가.

답 대회에서 선언의 결의를 한 일이 없다. 대회의 정황 및 결의 사항을 제一회 중앙집행위원회에 부의 결정을 보고, 인쇄하여 廣東 거주 단원에게 배포했다. 그것을 金元鳳과 李英駿 두 사람이 담당했다.

문 집행위원회에 회부 결정한 사항은 무엇인가.

답 제一회 중앙집행위원회는 대회 개최 당일 그 종료와 동시에 그곳에서 개최했다. 우선, 첫째 각부 조직을 토의한 결과 서무부, 선전부, 정치부, 재무부를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金元鳳, 金星淑 두 사람은 정치부위원으로 吳成崙, 張志樂이 선전부를 崔圓, 姜世宇 등이 서무부를 李英駿, 權晙 등이 재정부를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둘째는 중국국민당에 물질적 원조를 얻을 교섭방법에 관하여 토의한 결과, 日本기반(羈絆)에서 조선을 일탈시킬 이유와 義烈團 창립 이래 조선독립을 위해 단원들이 활동한 실적의 경과와 義烈團 단원이 중국혁명군에 입대하여 활동한 공적을 올리고 있는 상황을 열기하고, 중국혁명 완성이 조선혁명운동에 이익되는 이유 등을 열거한 서류를 작성하여 이것을 중국국민당 廣東省당부에 제출하고, 義烈團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 원조를 받을 교섭을 하기로 결정하고 교섭위원으로서 金元鳳, 金星淑, 張志樂, 柳友槿 四인을 호선하여 교섭위원은 一개월 이내에 문서를 작성하여 교섭하기로 결의했다. 이상으로써 제一회 집행위원회는 폐회했으나 대회 및 위원회 석상에서 단장 金元鳳으로부터 「종래 義烈團은 대관 암살과 건조물 파괴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방책이라고 일반의 비판을 듣는 바, 목적 관철을 위해서는 그 시대에 순응하는 수단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장래에는 되도록 다수 단원을 중국군대에 입대시켜 군사교육을 받게 하고, 이들을 남북만주에 산재해 있는 각 독립단체에 보내어 단원의 군사훈련을 지도 교양하고 조선 내에 밀파하여 직접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인 만큼, 그 방도를 취할 것」이란 취지를 선명(宣明)하여 나와 기타 당원들도 찬성을 했다.

문 중국혁명 완성이 왜 조선혁명에 이익을 가져오는가.

답 조선과 중국은 고래로 역사적 관계, 지리적 관계로 말하더라도 도저히 유리될 수 없으며, 조선인 혁명운동자의 활동은 거의 남북만주에서 이루어지는 정황이니, 역시 군사교육도 중국국민혁명군에게 받고 있는 실정이고, 더구나 장래 중국국민당의 원조를 받게 된다면 山東省 지방이 완전히 중국국민혁명군의 세력 하에 있다는 것은 조선독립 완성을 위해 굉장히 유리할 것이다.

문 중국국민당에 물질적 원조를 교섭한 결과는 어떤가.

답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교섭 방법은 결정했지만, 그 후 얼마 안 되어 단장 金元鳳 외 교섭위원 등은 군관학교로부터 종군을 위촉받아, 각기 전선(戰線)에 출동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혁명청년회는 다만 청년만의 단체였던 것을 널리 동지를 구하는 의미에서, 廣東재류(在留) 조선인은 노소를 불문하고 전부 조선독립운동자로서 회원이 될 것을 결의하고, 「혁명동지회」라고 개명한 결과, 義烈團의 이면(裏面) 단체인 만큼 표면으로 말하면 「동지회」 명의가 아니면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고 또 굳이 義烈團 명의를 갖고 교섭에 나선다 해도 단장 외에 고참간부가 출정하고 부재중이므로 문안 작성에도 지장이 있어서 유야무야로 끝났다.  
위를 통역에게 읽어주고 통역이 조서의 취지를 본인에게 고지하였더니 틀림없다고 진술하고 서명 무인하다.  

徐應浩



작성일 소화 四년 一○월 一三일  
京城本町경찰서  

신문자 사법경찰관 사무취급 조선총독부 도순사 細上玖市  

입회인 입회인 겸 조선총독부 도순사 吳疇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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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義烈鬪爭 3)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 義烈鬪爭 3 국한문

경찰신문조서(國漢文)


문서제목 金哲鎬 신문조서(제二회)  

金哲鎬 신문조서(제二회)  

피의자 金哲鎬


위 사람의 치안유지법 위반 피의사건에 대해 소화 四년 一○월 二七일 京城本町경찰서에서 사법경찰리 도순사 吳疇福을 입회시켜 전회에 이어서 피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문하다.

문 피의자의 진술은 사실과 상위점이 많아서 성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떠한가.

답 결코 그런 일은 없다.

문 피의자가 留粤한국혁명동지회에 가맹함에 즈음해서 그 취지 목적을 모르고 입회한 것이 틀림없는가.

답 황송하다. 실은 내가 廣東에 갔을 때, 중국인 여관에 투숙 중 어느날 留粤혁명동지회위원 金圭善과 張志樂 두 사람을 만나서 中山대학 입학 절차를 물은 바, 동지회의 증명을 얻지 않고는 입학 못함을 알고, 두 사람에 대해 가맹을 맹세했더니 즉시 동지회의 증명을 받아서 中山대학 농과에 입학 허가를 얻었다. 본과 교정에서 張志樂으로부터 혁명동지회는 중국혁명 완성의 원조를 하고, 그 대신 장래 중국인의 후원 하에 조선독립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된 결사라고 설명 들었으므로 나는 그 취지 목적에 찬동하고 즉시 입회했다.

문 피의자가 입회 후 회원으로서의 행동을 상세히 진술하라.

답 내가 입회한 것은 대정 一五년 一○월(날짜미상)경인데, 그 다음달에 임시 총회를 개최하니 출석하라는 통고가 왔었다.  
또 소화 원년 말경으로 생각한다. 정기 총회 개최 통지가 왔었으나, 두 번 모두 신병 핑계로 결석했기에, 그 후(날짜미상) 나에게 동지회 명의로 「집회에 결석할 것 같으면 廣東에 유학할 자격이 없으니 퇴거해라」는 요지의 명령서 같은 서면을 접했다. 한편 신병도 있고 해서 소화 二년 二월 一○일경 학업을 단념하고 귀선의 길에 오른 것이다.

문 피의자와 徐應浩의 친교 관계는 어떤가.

답 종래 하등 교제한 적은 없다. 廣東 재류 중 서로가 학교 내에서 안면만 낯익은 것으로 생각하며 성명도 몰랐다.

문 피의자와 徐가 文化여관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의 내용을 상술하여라.

답 徐를 만난 동기는 전회에 진술한 것과 같다.  
文化여관 一실에서 徐가 나에게 「언제 돌아왔는가」라고 하기에, 三년 전에 귀선, 목하 시대(時代)일보 기자로 취직운동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徐가 언제 돌아왔고, 무슨 목적으로 京城에 왔는지 물었기에, 작년 봄에 귀선한 이래 놀고 있다가 자기도 취직 운동하러 京城에 온 것이다. 목하 泰和여자관의 교사 내외분 친지가 있어서 그의 주선으로 서대문정(町)의 모 가구점 점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으나, 아직도 한 달 쯤 지나야 될지 모르겠기에, 이렇게 식대가 비싼 숙소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어디 좀 싼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더욱이, 내가 廣東에 있을 때 徐의 관여 단체를 방문했던 바, 자기는 義烈團에 일시 관계하고 있었으나 중국동란 때문에 작년 봄에 廣東에서 上海로 피난하기 위해 탈퇴했다.  
上海에서는 버스회사에서 월급 四○원가량을 받고 근무했으나, 친구로부터 용돈을 뜯겨 언제까지 근무해봤자 도저히 장래성도 없기에 귀선했는데, 귀국 도중 仁川경찰서에서 조금 취조 받았으나 요행히 무사통과했다고 흘렸다.  
그래서 그 때는 헤어지고 그 다음날 徐가 나의 주거로 내방하여 값싼 숙소의 소개를 부탁하므로 南山여관으로 동행했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그 집 사람에게 사정을 얘기하여 거실을 정해주고 돌아왔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문 피의자는 徐應浩의 귀선 및 금번 상경한 목적이 진술한 사실 이외에 또 있음을 모르는가.

답 진술한 이외의 사실은 모른다.

문 피의자는 義烈團의 누구와 교제하고 있는가.

답 아무도 없다.  
위를 통역에게 읽어주고 또 통역으로 하여금 조서의 취지를 본인에 고지시켰더니 아무런 상위 없다고 진술하고 서명 무인하다.  

진술인 金哲鎬



작성일 소화 四년 一○월 二七일  
京城本町경찰서  

신문자 사법경찰관 사무취급 도순사 細上玖市  

입회인 입회인 겸 통역 도순사 吳疇福  

원문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義烈鬪爭 3)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0 義烈鬪爭 3 일문

警察訊問調書(日文)


문서제목 金哲鎬 訊問調書(第二回)  

金哲鎬 訊問調書(第二回)  

被疑者 金哲鎬


右治安維持法違反被疑事件ニ付昭和四年十月二十七日京城本町警察署ニ於テ司法警察吏道巡査吳疇福ヲ立會セシメ前回ニ引續キ被疑者ニ對シ訊問ヲ爲スコト左ノ如シ.

問 被疑者ノ申立ハ事實ト相違ノ點多ク誠意ヲ認ムヘキモノデナイト考ヘルカ如何.

答 決シテ左樣ナコトハ御座イマセン.

問 被疑者ガ留粤韓國革命會ニ加盟スルニ際シ會ノ趣旨目的ヲ知ラスニ入會シタニ相違ナキヤ.

答 恐入リマシタ. 實ハ私カ廣東ニ參リマシテ支那人旅館ニ滯在中某日留粤韓國革沒志會委員金圭善及張志樂兩名ニ出會ヒ中山大學入學手續ヲ尋ネマシタ處同志會ノ證明ヲ得サレバ入學スルコト能ハサルコトヲ知リ, 兩名ニ對シ加盟ヲ誓ヒ直チニ同志會ノ證明書ヲ得テ中山大學農科入學ヲ許可セラレ, 本科校庭ニ於テ張志樂ヨリ革沒志會ハ支那革命完成ノ援助ヲ爲シ, 而シテ將來支那人ノ後援ノ下ニ朝鮮ノ獨立ヲ實現セシメムトスル目的ニテ組織シタル結社ナリトノ說明ヲ聞カサレマシタノデ, 私ハ其ノ趣旨目的ニ贊同シテ卽日入會致シマシタ.

問 被疑者ガ入會後會員トシテノ行動ノ詳細ヲ申立テヨ.

答 私ガ入會致シマシタノハ大正十五年十月日不詳デアリマシタガ, 其ノ翌月中臨時總會ヲ開催スルカラ出席セヨト云フ通知カ參リマシタ.  
又昭和元年末頃ト思ヒマス. 定期總會開催ノ通知カアリマシタケレドモ兩度共病氣ノ爲缺席致シマシタノデ, 其ノ後月日不詳自分ニ對シ同志會ノ名義ニテ集會ニ缺席スル樣テアレハ廣東ニ留學ノ資格カナイカラ立退ケト云フ意味ノ命令書ラシキ書面ニ接シマシタノデ一面病氣ニモ罹ッテ居リマシタノテ昭和二年二月十日頃勉强ヲ斷念シテ歸鮮ノ途ニ就イタノテアリマス.

問 被疑者ト徐應浩トノ親交關係如何.

答 何等是迄交際ヲシタ事ハアリマセン. 廣東在留中御互ニ學校內ニ於テ顔丈ケハ見覺ヘカアル樣ニ考ヘマスケレドモ氏名モ知リマセンデシタ.

問 被疑者ト徐トカ文化旅館ニ於テ交換シタル談話ノ內容ヲ詳シク申立テヨ.

答 徐ニ會ヒマシタ動機ハ前回申上ゲマシタ通リデアリマス.  
文化旅館一室ニ於テ徐カ私ニ何時歸ッタカト云ヒマシタノデ三年位前ニ歸鮮, 目下時代日報記者ニ就職運動中テアルト答ヘマシタ.  
ソシテ徐ガ何時歸ッテ何ノ目的デ京城ニ來タカヲ問ヒマシタ處, 昨年春歸鮮シテ以來遊ムデ居タガ自分モ就職運動ノ爲京城ニ來タノデアル. 目下泰和女子館ノ敎師夫妻ニ知人ガアリ, 其ノ周旋テ西大門町ノ某家具屋店員ニナルコトニナッテ居ルカ, 未タ一ケ月位モカ, ルカモ知レヌノテ, コンナ食代ノ高イ宿テハ困ルカラ何處カ安イ宿ニ世話シテ吳レヨト申シマシタ.  
尙私カ廣東ニ居ッタ際徐ノ關係團體ヲ尋ネマシタ處自分ハ義烈團ニ一時關係シテ居タガ支那動亂ノ爲昨年春廣東ヨリ上海ニ避難スル時脫退シタ.  
ソシテ上海テハパス會社ニ月給四十円位テ勤メテ居タケレドモ友達ヨリ小使錢ノ無心ニ逢ヒ何時迄勤メテ到底將來ノ見込モナイノデ歸鮮シタカ, 歸途仁川警察署テ一寸取調ヘラレタカ幸ニ無事釋放セラレタト洩シマシタ.  
ソレデ當時ハ別レ其ノ翌日徐カ私ヲ住居ニ訪レ安宿ノ周旋ヲ賴ミマシタノデ南山旅館ニ同伴シマシタ處主人カ不在中デアリマシタノデ留守居リノモノニ話シ, 居室ヲ定メテヤッテ歸ヘリマシタキリ其後ハ一度モ會フタコトハアリマセン.

問 被疑者ハ徐應浩ノ歸鮮並ニ此回京城ニ來リタル目的ガ申立ノ事實以外ニ存スルコトヲ知ラサルヤ.

答 申上ゲマシタ以外ノ事實ハ存ジマセン.

問 被疑者ハ義烈團ノ誰ト交際シ居レルヤ.

答 御座イマセン.  
右通事ニ讀聞カセ且ツ通事ヲシテ調書ノ趣旨ヲ本人ニ告知セシメタルニ何レモ相違ナキ旨申立テ署名拇印シタリ.  

陳述人 金哲鎬



작성일 昭和四年十月二十七日  
京城本町警察署  

신문자 司法警察官事務取扱
道巡査 細上玖市  

입회인 立會人兼通事
道巡査 吳疇福  






  기미양 출처-국사편찬위원회 200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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