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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기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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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음반]혁명가 김산, 아리랑을 노래하다
         혁명가 김산, 아리랑을 노래하다

                                                                                      
                                                      음반해설-  기미양/ <김산> 사이트 운영자

아리랑의 장구한 역사에서 엄동(嚴冬)의 시절이었던 1920~30년대를 뜨겁게 노래했던 영화인 나운규와 혁명가 김산(金山), 이들은 영화 <아리랑>과 자서전《Song of Ariran》을 통해 아리랑을 ‘역사의 노래’, ‘민족의 노래’가 되는데 기여했다.

김 산은 아리랑을 만난을 극복하게 하는 ‘힘의 노래’로 인식했으니 이는 지극히 낮은 위치에서 아리랑을 만났던 데서 진정한 아리랑의 정체성을 포착해 낸 결과이다. 이를 우리는《Song of Ariran》의 진술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김 산과 님웨일즈 공저로 항일운동사에서나 아리랑 역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저작물이다. 80년대 들어 우리는 혁명가, 항일운동가로서의 김산을 조명하는 데는 이 책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러나 정작 민요 아리랑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규명하는 데는 주목하지 못했다. 따진다면 표제가 ‘아리랑’이었는데도 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했던 것이다.

《Song of Ariran》은 뉴욕 <존 데이> 출판사에서 1941년 출간 되었다. 1953년7월 일본어판이, 1977년에 홍콩판이, 1973년에 미국에서 재판이 발간되고, 국내에서는 1984년에 조우화 번역,《아리랑》으로 출간 되었다. 김 산의 구술이 님 웨일즈에게 전해진 곳은 ‘아시아의 광풍 중국혁명’의 와중인 1930년대 중국에서이고, 이것이 정리되어 원고화된 곳은 필리핀의 바기오 섬이고, 다시《Song of Ariran》으로 출간되어 독자에게 전해진 곳은 미국에서다.

공동저자 님 웨일즈(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와 김 산의 만남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님 웨일즈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세계적인 중국 전문가인 에드거 스노(Edgar Snow)의 부인이다. 또한 그녀 역시 미국 <예일대학>을 졸업 한 실천지향적인 지식인으로서 동양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였다.

1937년 5월 초여름, 만리장성의 종착지인 옌안(延安)에서 중국공산당대회가 소집되었을 때 국민당의 감시를 뚫고 참석 한 몇 명의 외국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전선(戰線)의 사정으로 이 대회가 늦춰지자 님 웨일스는 <노신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영문 도서들이 한 조선인 청년에게 모조리 대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며칠 후 마침 초여름의 장대비가 오는 날, 도서관 직원의 전갈을 받은 김산이 빗 줄기를 배경으로 들어섰고, 이 광경에서 님 웨일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스페인 풍모의 김 산을 습기를 잔뜩 먹은 낡은 책 냄새가 진동하는 골방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으로 자칫 잃어버릴 뻔한 항일투쟁사의 중요한 기록문학인 민족서사시《Song of Ariran》을 잉태하게 되었다.
(중략)
님 웨일스는 조선인 혁명가의 길지 않은 인생 속에 20세기 혁명사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 숨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의 남편 에드거 스노는 마오 쩌뚱이라는 세기적 거물을 취재해 《중국의 붉은별》을 썼지만, 님 웨일스는 사소한 것에서 뿌리 깊은 모순을 찾아내는 섬세한 촉수를 가졌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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