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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김산의 독자 고영광 아버지 김산 서훈 소식에...
2005.8.5 (금) 03:47    동아일보    동아일보 기사보기  

"건국훈장 추서 김산 유일한 혈육 고영광씨"  
  
[동아일보]
“조국의 독립과 중국 혁명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의 명예가 이제야 회복된 것 같습니다.”

미국 여류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 金山· 본 명 장 지락 · 張志樂·1905∼1938)의 유일한 혈육인 고영광(高永光·69·사진·중국 베이징 거주) 씨. 그는 4일 부친이 8·15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아 독립운동가로 재평가된다는 소식에 감격해 했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김산은 1922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5년 뒤 광저우(廣州)에서 공산봉기에 참가했으며 1930년까지 조선혁명청년동맹 기관지 ‘혁명동맹’을 간행했다. 1937년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를 만나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구술했고, 이는 1941년 소설 아리랑으로 발표돼 한국의 뼈아픈 현대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김산은 1938년 중국인 부인 자오야핑(趙亞平·1989년 사망)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뒀으며 그해 공산당 간부였던 캉성(康生)에 의해 일본 첩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고 씨는 “너무 어렸을 때 부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전혀 기억이 없다”며 “지금의 성(姓)은 어머니가 나에게 불리한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해 고씨 성의 중국인에게 재가하면서 성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김산이 생부이며 중국 공산당에서 반동으로 몰려 억울하게 숨졌다는 사실을 안 것은 대학에 입학한 1957년. 고 씨는 이때부터 부친에 대한 자료를 모았고 1979년 당시 당 조직부에 두 차례나 부친의 복권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 1983년 결국 뜻을 이뤘다.

고 씨는 권병현(權丙鉉) 전 주중 대사의 권유로 2년 전 한국 정부에 부친에 대한 보훈 신청을 냈고 마침내 항일 독립투쟁의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는 “그동안 부친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6·25전쟁으로 남북이 대립했기 때문이었다”며 “이제 부친의 한이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과기국 부국장으로 재직하다 은퇴한 고 씨는 중국인 부인 왕위룽(王玉榮·62) 씨와의 사이에 중국과학연구소 연구원인 큰아들(34)과 은행원인 작은아들(32)을 두고 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2005.8.5 (금) 09:17    서울신문    서울신문 기사보기  

아버지 김산 독립유공자 추대 꿈 이룬 고영광씨  



[서울신문]|베이징 연합|“자식된 도리로 아버님의 양대 염원을 이뤄 이제 한이 없습니다.”

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본명 張志樂ㆍ1905∼1938)의 유일한 혈육 고영광(69)씨는 3일 한국 정부로부터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했다.

고영광씨는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중국인 어머니 자오야핑(趙亞平)이 고씨 성을 가진 중국인에게 개가하면서 성이 고씨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신분을 되찾았다.

베이징(北京)의 아파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고씨는 파란만장했던 부친과 자신의 생애를 털어 놓았다.

중국 상무부의 전신인 대외무역경제합작부 과기국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한 고씨는 2003년 한국 정부에 아버지 김산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한 지 2년 만에 소원을 이루자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중국인 편모 슬하에서 중국인인 줄 알고 자라난 고씨가 아버지 김산의 이야기와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안 것은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0년대 말로 서른이 넘어서였다. 태어난 지 일년 만에 아버지가 숨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대한 독립운동가’ 김산의 핏줄임을 확인한 고씨는 아버지의 항일 및 독립투쟁에 긍지를 느끼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김산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항일투쟁에 한창이던 1938년 당시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延安)에서 공산당 간부로 활동하던 캉성(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와 일본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고씨는 1978년 공산당 중앙 조직부에 김산의 명예회복 조사를 요청했고, 당 조직부는 1984년 공식적으로 김산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중국 국가항천국(航天局) 위생처 관리 출신인 한족 부인 왕위룽(王玉榮ㆍ62)과의 사이에 34살과 32살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매매가 가능한 자신 소유의 중산층 아파트에 살며 매일 수영과 조깅으로 건강을 다진다는 고씨는 15일 거행되는 독립유공자 표창식에 참석한다.

2005.8.5 (금) 00:41    세계일보    세계일보 기사보기  

"아버지 항일운동 공식인정 뿌듯"  
  
“자식된 도리로 아버님의 양대 염원을 이뤄 이제 한이 없습니다.”

미국 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張志樂·1905∼1938)의 유일한 혈육 고영광(高永光·69·사진)씨는 3일 한국 정부로부터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정식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감격에 겨워 했다.

고씨는 아버지 사망 후 중국인 어머니 자오야핑(趙亞平)이 고씨 성을 가진 중국인에게 개가하면서 성이 고씨로 바뀌었다.

베이징시 충원(崇文)구 광안먼(光安門) 난셴거(南線閣)아파트에 거주하는 고씨는 파란만장했던 부친과 자신의 생애를 털어놓으며 한국 정부에 연방 고마움을 표시했다.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과기국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고씨는 2003년 한국 정부에 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한 지 2년 만에 소원을 이루자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중국인 편모 슬하에서 중국인인 줄 알고 자라난 고씨가 아버지 이야기와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안 것은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0년대 말 30세가 넘어서였다.

1989년 사망한 어머니는 김산이 누명을 쓰고 사망하자 행여 아들에게 불리한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 김산의 아들임을 숨기고 새 남편 고씨의 성을 따르도록 했다.

태어난 지 일년 만에 숨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대한 독립운동가’ 김산의 핏줄임을 확인한 고씨는 아버지의 항일독립 투쟁에 긍지를 느끼면서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김산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항일투쟁에 한창이던 1938년 당시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延安)에서 공산당 간부로 활동하던 캉성(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와 일본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고씨는 1978년 공산당 중앙 조직부에 김산의 명예회복 조사를 요청했고, 당 조직부는 1984년 공식적으로 김산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에 고무된 고씨는 두 아들과 함께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민족을 회복했다.

고씨는 한국 정부로부터도 항일·독립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비로소 아버지의 한이 풀릴 것이라고 믿고 지난 2년간 아버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위해 애써 이번에 바람을 이룬 것이다.

중국 국가항천국(航天局) 위생처 관리 출신인 한족 부인 왕위룽(王玉榮ㆍ62)씨 사이에 34살, 32살의 두 아들을 둔 고씨는 15일 한국에서 거행되는 독립유공자 표창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자신청 등으로 바쁘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조정진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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