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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미양(2006-11-08 20:57:02, Hit : 1830, Vote : 258
 보도자료-이원규의 <김산평전>

보도자료
보도협조요청
도서명: <김산 평전>/값 15,000원/양장본/632쪽//지은이 이원규
홍보담당: 박문수 정은영 김혜선 박유진 (주)실천문학사 서울시 마포구 망원1동 377-1번지 전화번호 322-2161~5  

   1. 김산
  김산(金山, 본명 張志樂, 1905~1938)은 민족사의 비운을 온몸으로 이끌고 투쟁한 순결하고 열정적인 항일투사였다. 공산주의를 조국 독립의 방편으로 여기고 치열하게 투쟁한 그는 비범한 이론가, 조직가, 선동가로서 눈부신 자취를 남겼고 시인, 소설가, 번역가의 면모도 보여 주었다. 그는 한 순간도 조국 독립의 비원을 잊지 않았으며 중국공산당의 판단 착오로 억울하게 처형당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잊혔으나 미국의 여성작가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그의 존재가 알려졌고 비운의 찬 생애는 민족사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축축하게 적셔 준다.  

   2. <아리랑>의 한계를 넘어 김산의 생애를 풍부하게 복원  
  [닥터 노만 베쑨」 <체 게바라 평전> <스콧 니어링 자서전> 등의 품격있는 평전으로 널라 알려진 실천문학의 ‘역사인물찾기’시리즈 20번째 책으로 <김산 평전>이 출간되었다. 김산은 민족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거쳐 중국공산당 초기 멤버가 되었으며 약산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의 단원이기도 했다.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의지를 품고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했으나 공산주의 기치 아래 싸웠다는 이유로 그의 생애와 주변 이야기는 긴 세월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왔다.
  1980년대에 이르러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출간되어 ‘아, 우리에게도 이런 혁명가가 있었고 항일투쟁사가 여기 절반쯤 더 있었구나’하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뒤 연구가들의 발굴과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리랑>은 스무 번 남짓 인터뷰한 노트를 갖고 집필한 터라 시야가 좁다는 아쉬움을 주게 되었다.
  저자인 중견소설가 이원규 씨는 항일투쟁사 전체를 통찰하는 맥락 속에서 김산의 존재의미를 부여하고 주변인물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덧붙여 풍부하게 그의 생애를 복원하였다. 항일투쟁사 전체를 통찰하는 맥락 속에서 김산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을 덧붙여 그의 생애를 풍부하게 복원해낸 것이다.

  3.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로서 민족사의 풍운을 온몸으로 겪어  
  김산은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평양의 숭실중학을 다니다가 3․1 만세 시위로 퇴학당하자 15세의 나이에 혹독한 만주 벌판 700리를 걸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졸업했다. 상해로 가서 안창호와 이광수 밑에서 <독립신문> 식자공으로 일했으며, 민활한 테러리스트 오성륜과 약산 김원봉, 유자명의 영향으로 아나키스트가 되고, 북경의 협화의학원에 입학해 의학도가 된 뒤에 김성숙의 영향으로 철학 공부가 깊어지고 초기 중국공산당 주요 멤버가 되었다.
  손문의 호법정부가 있는 광동성의 광주로 간 그는 국립 중산대학에 편입하고 중국 인민들의 광주 봉기에 참가했다가 해륙풍 소비에트까지 갔다. 구사일생으로 그곳을 탈출한 그는 북경으로 복귀했다. 당 중앙의 명령으로 만주에 밀파되어 조선인 공산주의 조직을 중국공산당에 연합시키고 일단 유사시에 일제 봉기하도록 무장 조직을 견고하게 지도했으며 그 결과는 뒷날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으로 혁혁하게 드러났다.
  그 뒤 북경에서 대학생들의 비밀조직을 지도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당하고 일본 측에 넘겨져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출감한 뒤 고향집으로 돌아가 감옥에서 쇠약해진 몸을 회복한 그는 다시 망명길에 올라 북경에 복귀했으나 변절자로 낙인 찍혀 외로운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다시 체포당하고, 또다시 망명했으나 중국공산당은 그의 지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동지 김성숙, 박건웅 등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다.
  김산은 조직의 인준과 자신의 복권을 위해 중국공산당의 근거지 연안으로 갔고, 거기 있는 항일군정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다. 이 무렵 연안에 온 님 웨일즈를 만나 자신의 투쟁과 조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증언을 한 그는 일제 첩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 45년이 지난 1983년 중국공산당은 과오를 인정하고 그를 복권시켰고 한국정부는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2005년 훈장을 추서했다.
  <아리랑>출간 이후 국내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연구가들은 김산의 생애를 추적하고 그의 투쟁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특히 금기시되어 온 사회주의 항일투쟁 그룹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다. 이 책의 저자 이원규 씨는 그 성과물들을 섭렵하고 미공개 자료들을 찾아냈으며 김산의 숨결이 서린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고 마침내 그의 생애를 생생한 필치로 그려 냈다.
            
  4. 수많은 또다른 김산들을 위하여  
  저자 이원규 씨는 권두 저자의 말에서 ‘김산의 등 뒤에 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이 어른거린다’고 썼다. 이 책의 내용은 김산의 생애에 국한되지 않았다.
  김구, 안창호, 이회영, 이동휘, 손정도, 이청천, 이범석, 김원봉 등 이미 알려진 항일투사들 외에 의열단원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김지섭, 나석주 등과 김성숙, 장건상, 박건웅, 이영, 양림, 박진, 장일진, 한위건, 서휘, 정률성, 김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 냈다. 이것은 항일투쟁사의 뒤안길에 묻힌 소영웅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기도 하다. 그들이 바라본 김산의 행동을 그림으로써 주인공 김산의 모습이 확장된 성과가 크다. 아울러 그들이 김산과 함께 어두운 역사의 벼랑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간 모습은 곧 항일투쟁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그리고 이대소, 모택동, 구추백 등 중국인 혁명가들, 보이틴스키, 토마스 만 등 코민테른 특사들의 활동도 김산과 더불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각주가 160개나 달려 있는 평전이지만 행문이 딱딱하지 않다. 저자가 소설가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산과 동지들의 삶을 숨소리까지 들려줌으로써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의 울림을 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김산을 사랑한 다섯 명의 여성도 등장한다. 15세에 서간도 삼원보에서 만난 소녀 안미삼, 광주 봉기 때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었으며 그의 아들을 낳은 18세의 여자 병사, 북경에서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 만나 사랑했던 미모의 학생회장 제숙영,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은 조아평, 그리고 그가 처형되기 한 해 전 연안에서 만나 뒷날 전기소설 <아리랑>을 쓴 헬렌 포스터 스노(님 웨일즈의 본명) 등이다. 저자는 이들 여성들의 존재를 통해 당대의 혁명가들의 사랑의 흥미롭게 그려 내고 있다. 특히 그가 수줍은 첫사랑으로 회상하며 일본군에게 가족과 함께 학살당한 것으로 짐작해 슬퍼한 안미삼 소녀가 광복 후 서울로 와서 살았다는 사실, 1970년대에, 잃어버린 핏줄, 즉 광주코뮌 당시의 여자 병사의 아들로 짐작되는 장고려(張高麗)라는 이름을 가진 중로의 중국인 공산당 간부가 김산에 대해 추적하다가 그가 처형된 사실을 알고 잠적한 것 등 흥미로운 사실도 많다.    

   본문 요약
  <제1부 출생과 청년시절>
  1905년 러일전쟁의 포성이 울리는 평안도의 변방지역 용천의 한 농가에서 김산이 출생, 경술국치를 당하고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만주의 항일투사들의 소문을 들으며 성장, 평양의 숭실중학 재학 중에 3․1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퇴학당한 뒤 동경 유학길에 올랐다가 단념하고 겨울의 혹한을 무릅쓰고 망명길에 올라 신흥무관학교를 나오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혹한의 도보여행 중 그를 도와준 안동식 장로의 딸 미삼을 만나는 수줍은 장면도 나온다.
  신흥무관학교를 나온 김산은 서간도에서 16세 나이에 교사 노릇을 하다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서 <독립신문>에서 일하고 도산 안창호와 이동휘 장군의 주목을 받는다. 도산은 그에게 미국 민요를 가르쳐 주고 이동휘는 구한말 군대시절 이아기를 들려주며 애국심을 강조한다.  
  그 뒤 김산은 테러리스트 오성륜을 만나 아나키즘으로 기울고 의열단원으로서 동지들이 폭탄을 던지고 초개같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북경의 협화의학원에 입학해 의학도가 된 그는 한인학생동맹가입, 풍부한 독서량과 명석한 두뇌 때문에 탁월한 논객으로 활동한다. 그 뒤 걸출한 이론가인 김성숙을 만나 공산주의로 기울고 <혁명>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특사 보이틴스키와 중국공산당 창당의 산파역을 한 이대소를 만나면서 스무 살을 맞는다.        

  <제2부 광활한 대지>
  21세 청년이 된 김산은 손문과 혁명가들이 몰려 있는 광동성의 광주로 가서 중산대학에 다니면서 수많은 혁명가들과 교유한다. 전공을 의학에서 법학으로 바꾸고 황포군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그의 앞에 격변의 소용돌이가 펄쳐진다. 장개석이 국공합작을 깨고 쿠데타를 감행하자 수많은 혁명가들은 남창봉기와 광주봉기에 참가한다. 중국 혁명의 성공이 궁극적으로 조국독립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던 조선인 청년투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봉기에 나서 피 흘리며 쓰러진다.
  광주 봉기에서 김산은 통역관 겸 군의관으로 활동하고 광주에 소비에트가 성립되는 광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장개석의 지휘를 받는 국민당 군대와 미, 일 연합군의공격으로 봉기군은 해륙풍 지구로 패퇴, 김산은 무수히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18세의 어린 여자 병사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구사일생으로 탈출, 홍콩에 도착한 그는 동포 인삼장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어서고 상해로 가서 다시 김성숙 오성륜 등 동지들과 재회한다.
  김산은 공산주의 혁명가 한위건을 악연으로 만난다. 한위건은 경성의전 대표로 3․1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인물. 그 뒤 상해로 망명, 약관의 나이에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그 후 동경으로 가서 와세다 대학을 나오고 동아일보 기자로서 날카로운 기사와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여 주목받는 오피니언 리더로 떠올랐으며 동경여의전 출신 이덕요와 연애하여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던 인물이었다. 한위건은 비밀공산당원이었는데 3차 조선공산당 대량검거를 피해 상해로 망명,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려는 것을 김산이 거부했다. 명성 높은 거물이 일경의 단속을 피했다는 것을 믿지 못해서였다.
  김산은 북경으로 갔고 그 간의 탁월한 투쟁을 인정받아 중국공산당 상해지부 조직부장이 되었다. 당시의 많은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중국공산당 편에서는 것이 조국독립을 앞당기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상해 조직을 이끌면서 북경대학과 북경여자사범대학의 비밀서클을 지도한다. 여자 사범대학의 학생회장인 미모의 제자 제숙영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는 자신에게는 조국독립과 혁명밖에 없다고 선언하고 중공당의 명을 받아 만주로 밀파, 조선인 공산당 조직을 중국공산당 조직에 연합시키고 장차 무장봉기가 가능하도록 결속시키는 공작을 감행, 뒷날 항일파르티잔 투쟁이 일어나게 하는 씨앗을 뿌린다.          

  <제3부 죽음만이 나를 좌절시킬 수 있다>
  만주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김산은 다시 북경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면서 제숙영과 동거에 들어간다. 그리고 <기묘한 무기>라는 제목의 단편소설과 시들을 쓴다. 그러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당하고 일본 측 관헌에게 인도되어 참혹한 물고문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조직의 기밀을 말하지 않았고 폐기종과 폐결핵에 걸리는 등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신의주 감옥에서 출옥하여 고향집으로 간 그는 몸을 추스르고 감시망을 피해 다시 망명, 그러나 그가 변절했다고 믿는 동지들에 의해 제명당하고 외면당한다. 그의 복권을 막은 사람들 중에는 악연으로 얽힌 한위건도 있었다. 폐결핵이 악화되어 인사불성이 된 그에게 한위건이 조용히 찾아가 약과 돈을 놓고 간다. 김산은 여제자인 조아평의 보살핌으로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어선다.
  김산은 당원 자격도 없으면서 스스로 투쟁을 하며 원고료를 벌기 위해 저술활동을 한다. 그러나 다시 체포당하고 역시 고국 땅으로 압송된다. 출옥하자마자 다시 탈출한 그를 공산당조직은 더욱 믿지 않는다. 그는 조아평과 결혼한 뒤 가정교사, 대리집필, 번역 따위로 생계를 꾸리면서 살다가 석가장으로 가서 공산당 비밀조직을 꾸려 복권의 기본조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상해와 남경으로 가서 김성숙 등 동지들과 상의하고 정면돌파를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 이 있는 연안으로 간다. 거기서 틈틈이 영문소설들을 읽으면서 항일군정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아내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편지도 받는다. 공산당 하북성위원회 서기가 된 한위건이 연안으로 오고 두 사람은 어색한 해후를 한다. 그러나 한위건이 장티푸스에 걸리고, 한위건이 죽기 전 두 사람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한다.  
  그 즈음 미국의 여성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가 취재를 위해 연안에 왔다가 김산의 존재를 주목해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공동저술로 전기소설을 쓰기로 합의하고 김산의 구술을 스노가 여성작가가 받아 적는다. 연안을 떠나고 얼마 안 되어 조직에는 숙청 바람이 불고 강생이라는 비정하고 단순한 책임자에 의해 김산은 처형이 결정된다. 김산은 전선으로 차출되어 가는 도중 총살형을 당한다.


  <에필로그>
  에필로그에서는 저자가 모은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독자 서비스를 한다. 김산이 처형된 뒤 아내와 아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아들이 장년에 이르러 아버지를 복권시키기 위해 재심사를 청원한 일, 청원서를 보고 지난날 광주코뮌에서 동지로서 같이 투쟁했던 엽검영과, 항일군정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 호요방이 중국 당정의 고위층 신분으로 복권을 앞장서 도운 사실, 중공당 중앙의 복권 판결 문건 등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김산 출생 100년이 되던 지난해 대한민국정부가 훈장을 추서하며 기록한 국가보훈처 공훈록도 보여준다.
  그를 사랑했던 네 여성들의 그 후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내용도 들어 있고, 그를 아끼고 좋아했던 동지들, 김성숙, 김약산, 박건웅, 정률성, 서휘 등의 생애를 간명하게 기술했다. 특히 제자이자 동지로서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중국인 나청이 96세로 죽을 때까지 책상에 그의 사진을 놓고 살았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김산의 처형결정을 내린 강생이 승승장구하고 죽었으나 문화혁명 기간 중 무고한 지도자들을 숙청한 죄로 사후 명예가 마치 부관참시처럼 박탈된 것을 밝히며 원고지 2,000매에 달하는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저자 이원규  
  1947년 인천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 1986년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공모에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창작집 '침묵의 섬', '깊고 긴 골짜기', '천사의 날개', '펠리컨의 날개, 장편소설 '훈장과 굴레', '황해,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1~9를 상재했으며 해외독립전쟁 현장 르포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1, 2', '저기 용감한 조선 군인들이 있었소(공저), <약산 김원봉> 등도 출간했다.
  그는 고향 인천과 황해를 배경으로 하는 분단소설들을 많이 썼다. 그의 소설들은 생동감 있는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으며 분단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을 온건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는 항일 독립전쟁 전체를 관통하는 대하소설을 쓰면서 거의 모든 독립투쟁 현장을 답사한 바 있다. 특히 역사에서 묻혀진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사들의 투쟁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긴 시간의 연구 조사를 통해 그것들을 정리하였다. 그리하여 지난해 <약산 김원봉>를 출간한 데 이어 이 책을 내게 되었다.
  대한민국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동국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금은 모교인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연락처: 032-814-8787, 011-479-0778)    





[보도자료]: 김산 선생 서거 70주년 기념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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