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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2005-05-26 21:38:38, Hit : 1093, Vote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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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무관학교에 관하여


-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혁신유림들이 서간도에 온 목적은 독립운동과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휴(용맹한 군대)라 칭한 무관을 양성하기 위하여 신흥강습소를 세웠다. 비용은 우당 6형제가 준비한 막대한 자금에서 충당했다.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은 이미 오래전 서울의 상동교회에서 양기탁, 이동녕, 이회영등 선각자들이 모여 해외 무장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안동의 유림들도 그 뜻을 같이하여 만주로 망명길에 올랐던 것이다.  

- 설립 초기 안동 유림들의 역할
초대 교장에 석주 이상룡, 교관엔 협동학교 교사였던 이관직, 동산 유인식의 '대동사', 이원태의 '지리서'와 석주의 '대동역사'가 교재로 쓰였다. 교가는 석주의 아들 이준형이 작사하는 등 안동출신 인사들이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주체로 활약하였음을  보여준다

- 신흥무관학교의 교과과정과 학습내용은?
교과과정은 초급군사과정에서부터 고급 장교과정까지 나누어져 있고 학비는 무료였다. '아리랑'의 작가 김산도 신흥 무관학교 출신이다. 그의 회고록과 졸업생들의 회고를 통해 교과과정을 엿 볼 수 있다. 또한 연변대학과 독립기념관에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서도 교육내용과 생도들의 생활을 알 수 있다.

- 신흥무관학교의 변천과 안동 출신 유림들의 역할

추가가에서 마지막 백서농장까지  처음 문을 연 이래 10년 동안 이곳 저곳 옮겨다니며 갖은 고초 속에서도 독립군 양성의 맥을 이어갔던 현장들. 특히 우당이 귀국해 일경에 체포된 후에도 끝까지 백서농장을 꾸렸던 일송 김동삼을 비롯한 안동출신 인사들의 신흥무관 학교에 대한 애착들을 엿볼 수 있다.

- 만주에서의 삶

그 과정에서 안동에서 도만한 노학자들과 가솔들의 삶을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생전 육성과 우당 선생의 부인 김은숙 여사의 회고록을 통해 알아본다.
일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간난 신고의 세월을 살아온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활약

신흥무관학교의 개교는 항일무장투쟁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다. 1911년 5월 개교부터 1920년 7월 안도현 산림지역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만주라는 척박한 땅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3,500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신흥무관학교의 교육 이념에 따라 숭고한 정신으로 무장하여 중국전역, 러시아령, 국내까지 잠입하여 해방 전까지 항일독립전사가 되었다.
1920년의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의 주역도 이들이요,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의열단까지 이들이 모두 주역이었다. 또한 이들은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 독립군 사관생도 모집 활동도 전개하는 등 구국 대열에 주저없이 몸을 던졌다.

이러한 사실은 연변대학과 독립기념관에 남아있는 신흥무관 학교 졸업생 명단, 만주에서 항일무장 투쟁 사료, 그리고 일본 정부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된 청산리 봉오동전투 보고서 등에 나타나 있다.

- 신흥무관학교 폐교 후 안동 유림들의 행로

192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은 여러 단체간 노선의 차이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무렵 신흥무관학교도 문을 닫게 된다. 이때 사분 오열되던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석주는 동분서주하고 마침내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초대 국무령에 취임한다. 동산 유인식, 일송 김동삼 등도 초대 임정에 핵심적 인사로 참여 한다.

- 만주로 건너 갔던 혁신유림들의 못다 이룬 꿈

그러나 생전에 보지 못한 조국 광복의 꿈. 백하, 석주와 함께 만주로 건너갔던 유림들은 모두 서러운 이국 땅에서 한 맺힌 생을 마감해야 했다. 가난과 싸우면서도 조국 광복의 꿈을 놓지 않고 선비적 자존심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마지막 여정들을 돌아본다




'아리랑'(Song of Arriran)을 읽고
중국에 남은 좌파계열 독립운동가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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