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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Ⅱ 중국편-1. ‘항일지식인의 상징’ 김산


2005.5.23 (월) 18:42    경향신문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Ⅱ 중국편-1. ‘항일지식인의 상징’ 김산  
  
일제 강점하에서 태어나 그 넓은 중국 대륙을 누비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라진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 그가 젊음을 불살랐던 중국에는 지금 김산의 흔적이 거의 없다. 단지 베이징 근교에 살고 있는 유일한 혈육 고영광씨(70)만 한국 정부에 부친의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단 한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중국인 어머니와 살아 한국말을 전혀 못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김산은 1930년대 일제하 조선의 항일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그의 불꽃같은 삶은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을 통해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 루즈벨트 대통령은 바로 ‘아리랑’을 보고 한국의 실상을 파악했다고 전해진다.

김산은 1905년 3월10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11세 때인 1916년 가출, 한때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했다. 1921년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최고 의대로 통하는 협화의학원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마르크스 이론을 접하고 특히 중산대학(中山大學) 정치학과에 다니던 김성숙(임정 의정원 의원 역임)의 영향을 받아 중산대로 옮겨 정치학을 배웠다.

그는 1922년 공산당에 입당하고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해 잡지 ‘혁명’을 간행했다. 1927년 중국 광주에서 공산주의자가 봉기한 소위 ‘광주폭동(코뮨)’에 참가했다. 무려 7,000명이 희생된 이 광주봉기에서 한국인은 200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김산은 1930년까지 조선혁명청년동맹 조직위원회의 기관지 ‘혁명동맹’ 부주필을 맡는 등 중국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활동했다.

김산은 30년 베이징에서 체포됐다가 6개월여 만에 풀려났고 33년 4월 다시 체포됐으나 탈출했다. 중국공산당은 그가 쉽게 풀려나는 것을 의심, 출당조치했다. 중국공산당을 떠난 기간인 1936년 김성숙 등과 함께 조선민족연합전선을 창설하는 등 조선독립을 도모했다.

1937년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신문기자 에드가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를 만난 김산은 3개월 동안 자신의 삶을 구술했다. 그가 고백한 자신의 처지는 곧 우리의 아픈 현대사 바로 그 자체였다.

“내 전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이후 교편을 잡으면서 어렵사리 중국공산당에 복당했지만 38년 일제특무(첩자)라는 죄목으로 캉성(康生)의 지시로 연안에서 비밀리에 처형됐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미국으로 돌아간 님 웨일스가 1941년 뉴욕에서 ‘아리랑’(Song of Ariran)을 출판하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해방후인 1946년 잡지 ‘신천지’에 아리랑 일부가 번역돼 연재된 적이 있고 곧 잊혀졌다.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된 아리랑은 1984년에야 완역본이 나오면서 그의 삶이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김산은 1938년 중국인 부인 자오야핑(趙亞平)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남겼다. 김산은 죽는 그해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자라면 백의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꼭 알려주오. 백의동포는 불쌍한 민족이오. 나라는 왜놈에게 빼앗기고 인민은 도탄속에 허덕이고 있소. 우리들은 남의 구원을 바랄 것이 아니라 총칼을 들고 왜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오.”

부인(1989년 사망) 역시 중산대학을 나온 공산주의자로 후에 중국 전국 여성간부학교 교장까지 지냈다. 아들 고영광은 커서 1983년 어렵사리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이뤄냈다.

〈베이징|원희복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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