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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붉은승려 김성숙과 김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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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4일 (월) 03:20   동아일보

"선열 독립魂 찾아… 세대 넘은 ‘조국 사랑’"


[동아일보]

■ 대학생 항일유적지 탐방

“운암 김성숙과 김산이 처음 만난 지점에서 우리의 탐방은 끝납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본격적 탐구는 이제 시작입니다.”

8·15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중국 베이징(北京) 시 둥청(東城) 구 치웨이(棲尉) 로 11호에 있는 베이징시기독교무위원회의 3층 건물 앞. 갑자기 쏟아진 거센 빗줄기 속에서 항일운동가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1898∼1969)의 행로를 좇던 ‘제1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탐방단’ 대학생 51명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7일부터 8박 9일 일정으로 상하이(上海)∼난징(南京)∼우한(武漢)∼광저우(廣州)∼충칭(重慶)∼베이징으로 이어진 강행군 속에서 그들이 만난 운암은 어떤 이였을까.

○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과의 우정

베이징시기독교무위원회 건물은 1923년 고려기독교청년회(YMCA)가 위치했던 곳. 독립을 꿈꾸는 조선 청년들의 토론 장소였던 이 건물에서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으로 유명한 장지락과 운암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이 책에서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 김충창으로 소개된 운암은 아나키스트였던 장지락을 사회주의 혁명가로 바꿔 놓는다. 두 사람은 또 당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 단원으로 조선 청년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우정을 쌓는다.

장지락이 다니던 협화의학원은 이 건물 한 블록 건너편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운암이 잡지 ‘혁명’을 발행하느라 나빠진 시력을 치료했던 부속병원도 그대로였다.

○ 혁명 속에 꽃핀 중국 여성과의 사랑

1925년 의열단 단원들은 대거 광저우로 간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 같은 이들은 황포군관학교에서 독립을 위한 군사력을, 운암과 같은 이들은 중산(中山)대에서 정치조직력을 키운다.

운암은 여기서 중산대 최초의 여대생 두쥔후이(杜君慧)를 만난다. 두 사람이 국경과 종교를 뛰어넘은 사랑을 키웠던 이 대학은 1952년 자리를 옮겼는데 새 캠퍼스에는 찜통더위 속에서 유칼립투스 가로수만이 울창했다. 집안의 반대에 부닥쳐 일본 유학을 떠나야 했던 두쥔후이는 3개월 만에 운암의 곁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중국공산당 세력이 봉기를 일으킨 광둥(廣東)코뮌에 동참한다. 3일 천하로 끝난 이 봉기 후 두쥔후이의 집에 은거하던 둘은 결혼을 한다.

○ 김구와 김원봉의 가교가 되어

운암은 중-일전쟁 후 한국 독립운동의 우파인 김구계와 좌파인 김원봉계를 통합시킨다.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통합을 이끌어 낸 것도, 임시정부를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도록 한 것도 그였다.

전날 충칭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의 기념사진 곳곳에서 운암의 엄숙한 얼굴을 발견하며 그의 열정을 확인했던 탐방단은 베이징의 시원한 소나기 속에서 다시 8월의 태양처럼 뜨거웠던 그 열정의 뒷자락을 더듬었다.

그에겐 동지들과의 우정보다도, 한 여인과의 사랑보다도 뜨거웠던 열정이 있었다.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했던 운암이 동지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좌우 합작에 나선 것도, 그토록 사랑했던 두쥔후이와 세 아들을 두고 환국을 단행한 것도 바로 그 열정적인 민족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상하이·충칭·베이징=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한-중 청소년 옌볜 방문

한국 학생들과 중국 국적의 조선족 학생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9일과 10일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일대의 항일유적을 함께 찾았다.

이들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와 연변대 등이 4∼11일 7박 8일 일정으로 공동 주최한 ‘한중 청소년 친선 문화제’에 참가한 양국의 중고교생과 대학생.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이 행사에는 57명의 학생(한국 39명, 조선족 18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上海)와 더불어 중국 내 항일운동의 주요 거점인 룽징(龍井) 시의 룽징중학교를 가장 먼저 찾았다. 이 학교는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광명중, 이준 열사가 다녔던 은진중, 대성중 등 6개 학교가 1946년에 합쳐지면서 옛 대성중 터에 지어진 조선족 학교. 교내에는 윤동주기념관이 있다.

이어 학생들은 허룽(和龍) 시에 있는 청산리전투 터와 투먼(圖們) 시의 봉오동전투 전적비를 차례로 방문했다.

양국의 학생들이 항일 현장에서 보인 반응은 사뭇 달랐다.

양준열(17·대전고 2년) 군은 청산리전투 터에서 “사방이 산과 벌판이라서 처음에는 이곳이 전투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며 “치열했던 당시 전투 상황을 듣고 나니 감동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족 학생들은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듣지 못한 내용을 처음 접해서인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춘미(22·여·선양사범대 4년) 씨는 윤동주기념관에서 윤동주 시인의 삶과 룽징지역의 항일운동사에 대한 안내원의 설명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옌지(延吉) 제10중학교 김예란(41·여) 교사는 “조선족 학교에서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따로 가르치지는 않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조선족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원철 흥민통 상임대표는 “이번 답사가 양국 학생들에게 한핏줄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옌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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