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페이지 1
 


  아리랑(2005-03-25 16:05:27, Hit : 930, Vote : 70
 http://arirangnara.com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3/005000000200503231831111.html
 <한겨레>퍼옴-김산의 미공개 ‘자술서’ 사본.

‘김산 자술서’ 베이징서 발굴


△ 김산의 미공개 ‘자술서’ 사본. 좌우의 대립을 넘어 민족의 단결된 대일투쟁을 호소하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관련기사

  • 자술서 공개한 최용수 교수



  • “조선 민족의 출로는 오직 일제 타도”

    최용수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공개

    “사회주의·민족주의 좌우분열 큰손실” 개탄
    ‘미완의 혁명가’ 사상적 깊이 절절이 녹아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이 1930년 중국 베이징에서 국민당 경찰에게 체포됐을 당시 쓴 자술서(사진)가 23일 발굴·공개됐다.

    이 문서는 최용수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철학)가 베이징에서 김산 관련 자료를 찾다 발굴한 것으로, 1930년 12월5일 유청화라는 가명을 사용한 김산이 A3 크기의 종이에 6장 분량으로 작성했다.

    김산은 1930년 11월20일 광저우 봉기 3주년 기념행사 준비회의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베이징에서 국민당 경찰에 검거된 뒤, 일본 경찰에 넘겨져 40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이듬해 4월 무죄 석방됐다. <아리랑>을 보면, 김산이 이때 간수들이 가져다 주는 식사를 거부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그러나 무죄로 석방됐다는 이유로, 김산은 ‘변절자’라는 오해를 받았고, 이는 8년 뒤 숙청과 죽음으로 이어졌다.

    1927년 4월 장제스 당시 국민혁명군 총사령의 상하이 쿠테타 이후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돼, 공산당 가입은 사형으로 다스려졌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는 “문서에 나타난 김산의 필체는 1993년 동녘에서 펴낸 <아리랑 그후…김산과 님웨일즈>에 담긴 김산 친필과 똑같다”며 “김산이 국민당 경찰의 심문을 받고 일본 경찰에 넘겨지는 당시 정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김산은 자술서에서 “지금 우리 조선은 일본의 극단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조선 민족의 출로는 오직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민족의 완전 독립을 이룩하는 것 뿐이다. 현재 조선혁명운동에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즉 민족주의적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적 노농 해방운동이다. 1928년 이후 상술한 두 가지 경향이 서로 합작하지 못하고 있으니 실로 혁명의 커다란 손실이다. 나의 의견은 사회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이 연합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것”이라며 좌우합작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또 “나는 조선 신문기자로 중국 국적을 가지지 않았다”며 “공산당을 동정하기는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공산주의 조직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며 공산당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최 교수는 “김산이 중국 쪽에는 항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본에서는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했을 뿐’이라고 대답하며 공산당과의 관계를 밝히려는 양국 경찰의 추궁을 피했다”며 “문서에서 김산의 그런 내적 갈등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김산은 무죄 석방됐지만 이 사건은 그의 평생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중국공산당은 “변절하지 않고 일제와 국민당의 고문을 이겨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의 당적을 박탈했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결국 이때 씌워진 ‘일제 특무’ 혐의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김산은 1938년 10월 중국 옌안에서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셍에게 비밀 숙청당했다.

    한홍구 교수는 “1930년은 장제스의 쿠데타(1927년) 이후 공산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 사이의 대립이 격렬했던 시기”라며 “민족 독립을 위해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김산의 논리는 시대를 앞서간 미완의 혁명가의 사상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님 웨일즈 소설 ‘아리랑’ 주인공…중국혁명 가담 조선독립 도모

    중 국민당 잡혀 일 경찰 이송
    혹독한 고문 당한뒤 무죄 석방
    중 공산당서 ‘간첩’ 누명 숙청


    △ 1937년 님 웨일즈가 찍은 김산.

    김산=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5살 때 3·1운동의 실패를 목도하고 집을 떠나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이회영 등 민족주의자들이 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7년 중국 혁명의 성지 옌안에서 미국 기자 님 웨일즈와의 우연한 만남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어판 번역서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1984년 동녘출판사에서 한글판 번역서 <아리랑>이 출간됐다. 책에서 김산은 “내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지만, 단 하나, 나 자신에게 만큼은 승리했다”고 말했다. 미완의 혁명가가 글 속에 남긴 조국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독립에 대한 불굴의 의지는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신음하던 70~80년대 지식인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1930년과 1933년 중국·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무혐의로 풀려나온 사실이 문제가 돼 ‘일제 특무’라는 누명을 쓰고 1938년 숙청됐다. 45년이 지난 1983년 1월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누명을 벗어주었다. 지난 10일은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길윤형 기자





    보훈처,독도의용대원 생계지원책 강구…안익태,‘아리랑’주인공 김산 서훈도 검토
    렉쳐 김순녀 정선아리랑 발표회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아리랑나라
    서울시 종로구 권농동 127-4 유성빌딩 4f

    tell:02-763(762)-5014 010-4764-8844

    Email : kibad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