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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이원규의 <김산평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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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일 (목) 20:56   한겨레

“아리랑의 지평 5배까지 넓혔습니다”



[한겨레] 인터뷰/<김삼 평전> 쓴 이원규

님 웨일즈와 김산 공동저작으로 돼 있는 <아리랑> 2005년 개정 3판에는 1991년에 쓴 리영희 선생 추천사가 그대로 실려 있다. “이 나라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지난 30년의 지적·사상적 암흑 속에서 가끔 <아리랑>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모색하다 지치고 좌절 때문에 실의했을 때는 ‘김산’을 찾았다. 그는 내가 감히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나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곤 했다.” 추천사는 이렇게 끝난다. “그 두 사람(김산과 웨일즈)의 만남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것은 이 민족(또는 동양)의 혁명운동사에 큰 사건으로 남아야 할 우연인 셈이다.”

1938년 중국공산당 극좌노선을 대표하는 캉성(강생)의 과오로 33살 한창 나이에 희생당한 조선인 항일혁명운동 지도자 장지락(1930년에 붙잡혀 톈진의 일본영사관에서 찍은 사진에는 ‘장지학’으로 돼 있다). <아리랑>을 통해 김산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조선 독립운동사에 명멸한 수많은 인물들 중 아마 지금의 한국인들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일 것이다.

스테디셀러 <아리랑>은 1941년 미국에서 발행된 뒤 43년만인 84년에야 한국에서 처음 번역출간됐다. 그리고 다시 22년이 지난 이제 김산에 관한 본격적인 평전이 처음 나왔다. 실천문학사가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20번째로 내놓은 <김산 평전>. 저자 이원규(59)씨는 “<아리랑> 등 김산에 관한 기존 책들이 쌓아올리고 펼쳐놓은 지평을 적어도 3배 이상 넓혀 놓을 자신, 말하자면 명백한 차별성을 드러낼 자신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각오로 도전했고, “최대 5배까지 넓혔다”고 장담했다. 웨일즈만 하더라도 당시 조선과 조선인 독립운동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었고 20여 차례에 걸친 김산과의 인터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에, 비록 그의 기록이 중국혁명운동 역사기록과 맞춰보더라도 놀랄만큼 정확하다는 건 확인됐으나, 당시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내용들을 두루 풍부하게 담긴 어려웠을 것이다. 평전은 웨일즈로선 손댈 수 없었던 김산의 최후까지를, “아직 아쉬운 수준이지만” 나름대로 복원했고, 그가 사랑한 여성들과 아들들 얘기, 캉성의 최후 등 현지답사와 새 자료발굴로 얻은 성과들을 충실히 담아냈다.

<월간문학> 등의 등단작가인 저자는 지난해엔 <약산 김원봉>을 출간했다. 이들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되살려 놓는 작업에 그가 특별히 힘을 쏟는 데는 사연이 있다. “냉전과 분단구도에 길들여져 있던 60년대 말 학번인 우리 세대에게 <아리랑> 출간은 충격이었다. 김학철의 <격정시대>와 <아리랑> 등은 우리 항일운동사의 절반이 저쪽에 있다는 생각을 되새기게 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90년대 초부터 아마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연안과 태항산 등 중국내의 조선인 항일무장세력 활동지들을 부지런히 찾았다. 때로 억류까지 당하면서 스무번 가까이 중국을 찾았고 시베리아도 훑었다. 그걸 토대로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등을 썼고 ‘항일운동사 전문가’, ‘현장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됐다.

“<아리랑> 등은 (우리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는) 정신적 열패감을 씻어주었습니다. 저 너머에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들이 었었던거죠.” 그렇게 다니면서 3·1만세운동의 풍운아 한위건, 오성륜, 양세봉, 김원봉, 그리고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작은 영웅’들을 새로 만났다. 그가 보기에 비록 비운의 희생자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리랑>으로 남은 “김산은 행운아”다. 김산이 사랑받게 된 것은, 그가 보기엔 제대로 된 독립운동가들 전기나 평전이 따로 거의 없는 데다 웨일즈라는 외국 여성작가가 개입된 극적인 요소, 그리고 김산 개인의 역사적 체험과 인물됨 등이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다.

“북한조차 항일무장운동사는 제대로 정리가 돼 있지 않는 것 같다. 남과 북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빼내 이용해먹었다. 항일독립운동사마저 분단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후학들이여, 나를 밟고 나아가라.”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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