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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수첩] 님 웨일즈와 민족의 빚

2005년 8월 19일 (금) 15:50  국민일보


[출판수첩] 님 웨일즈와 민족의 빚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본명 장지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10대 중반 독립운동에 투신해 목숨까지 바친 투사였지만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그가 이제야 제평가를 받은 것이다.

정부에 의한 복권은 뒤늦은 것이었지만,김산에 대한 복권은 오래 전부터 책을 통해 진행돼 왔다. 1984년 첫 출간된 ‘아리랑’이 그것으로 최근 세번째 개정판이 나왔다.



지난 20여년간 20만부 가량 팔려나가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로로 자리잡은 ‘아리랑’은 김산이라는 독립운동가를 발굴했을 뿐만 아니라,그가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힌 교조주의자가 아니라 열정적인 항일전사이자 휴머니즘 가득한 혁명가였음을 증언한다.

‘아리랑’이 만약 문학적으로 탁월한 작품이 아니었다면 김산은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리랑’ 초판 편집자였던 조두영 당시 동녘 출판사 편집장은 “독립투쟁사를 개인사적인 통로로,정서적으로 이해하게 하는데 ‘아리랑’만한 책은 없었다”며 “그것은 순전히 님 웨일즈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는 김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총소리 가득한 중국 혁명의 현장으로 갔고 거기서 자기보다 두 살 위인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 매혹돼 그의 일대기를 책으로 썼다. 오랜 세월에도 ‘아리랑’의 가치가 바래지 않는 것은 김산의 격정적 삶과 님 웨일즈의 순수한 영혼이 만나 일으키는 불꽃 때문이다.

조씨는 1990년대 리영희 백낙청 등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님 웨일즈에게 감사패를 전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부가 이를 막았다. 좌익 인물을 발굴한 사람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감사패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2005년 그녀가 기록했던 김산의 생애에는 훈장이 내려졌다.

님 웨일즈는 1997년 사망했다. 한 혁명가의 생애를 커다란 감동과 함께 한국인에게 전해준 이 벽안의 여인에게 이제라도 우리가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은 없는걸까. 외국인으로 한국의 독립을 도운 이는 그녀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 감사를 전하는 것은 민족의 빚을 갚는 일이다.

김남중기자






일제시대 혁명가였던 김산은 ‘아리랑’에서 자살을 생각했다.
아리랑의 최후를 아는가?-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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