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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2004-07-13 02:50:24, Hit : 1136, Vote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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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사랑과 혁명의 노래 ‘아리랑’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사랑과 혁명의 노래 ‘아리랑’  
  
  [조선일보] 2003-09-06 (문화) 칼럼.논단
  
    
1946년 봄 어느 날 마오쩌둥의 오랜 친구이자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에드거 스노(Edgar Snow)가 여의도 공항에 내렸다.
그는 도쿄를 거쳐 중국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깃발이 올려진 베이징(北京)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가 왜 구태여 서울을 경유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단지 중국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과 단단히 묶였던 그의 부인 님 웨일스(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 사이에 끊임없이 개입하던 낯선 조선과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런데 에드거 스노가 목격한 것은 해방된 국가에서 흔히 그러하듯 좌우익 간의 사투와 찟긴 삐라조각뿐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9년 전인 1937년 초여름, 만리장정의 종착지인 옌안(延安)에서 중국공산당대회가 소집되었다.
국민당의 경계선을 뚫고 넘어온 몇 명의 외국인들이 그곳에 있었는데, 님 웨일스가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님 웨일스는 미국 예일대학을 나온 실천지향적 지식인으로서 일찍이 동양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였다.
전선(戰線)의 사정으로대회가 늦춰지자 님 웨일스는 노신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책이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모조리 대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누구일까.
며칠 후 도서관 직원의 전갈을 받은 김산이 들어선다.
마침 초여름의 장대비가 그의 배경으로 쏟아져 내린다.
“임시 문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솜이 든 푸른색 커튼을 학자의 손처럼 야윈 손이 옆으로 밀어 젖혔다. 그러자 실내의 조명을 받으며 크고 인상적인 사내의 모습이 조용히 나타났다. 그는 당당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인사를 하였으며, 우리가 악수할 때 주의깊게 나를 응시하였다. 밖에는 비가 퍼붓고 있었고, 창문이 종이로 되어 있어서 충분한 조명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얼굴은 윤곽이 뚜렷한 것이 묘하게도 중국인 같지는 않았고, 반(半)스페인풍의 사람처럼 아주 멋이 있었다.” 습기를 잔뜩 먹은 낡은 책 냄새가 진동하는 골방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자칫 유실될 뻔한 항일투쟁사의 중요한 기록문학인 ‘아리랑’을 잉태하고 있었다.
님 웨일스는 기골이 장대한 이 조선인 혁명가의 길지 않은 인생 속에 20세기 혁명사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 숨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의 남편인 에드거 스노는 마오라는 세기적 거물을 취해 ‘중국의 붉은 별’을 썼지만, 님 웨일스는 사소한 것에서 뿌리깊은 모순을 찾아내는 섬세한 촉수를 가졌다.
그것은 조선 말기의 역사를 느리고 비극적인 사랑 얘기로 각색한 펄 벅의 ‘생각하는 갈대’와도 사뭇 다른 감각이었는데, 혁명현장의 열기를 역사로 승화시키는 지성 그 자체였다.
님 웨일스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면서 역사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통과해야 하는 비극의 길목을 스스로 지키고자 했다.
그런 그가 역사의 거대한 모순과 맨몸으로 부딪칠 때 내는 온갖 소리를 다듬어 간직하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을 놓칠 리가 없었다.
김산은 마지막 유언처럼 구술을 시작했는데 여름이 끝나자 노트 7권으로 남았다.
젊은 혁명가의 비극적 삶이 미국 저널리스트의 프리즘을 거쳐 불멸의 생을 얻은 것이다.
구술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광둥, 1927, 패망, 조선인 300명 죽다, 물 속의 소금.” ‘물 속의 소금’은 톨스토이에서 크로포트킨과 마르크시즘으로 이동해 갔던 조선 혁명가가 중국 혁명 속에 헛되이 녹아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음을 알려주는 김산의 화두였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1987년 어느 날, 일본의 기자가 뉴헤이번에 혼자 살고 있는 님 웨일스를 찾았다.
검버섯이 번진 80세 노인의 얼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옌안(延安) 시절 빼어난 미모의 흔적은 더 철저하게 비틀어진 냉전을 버텨온 의지로 그 마지막 자락이 스러지고 있었다(‘아리랑 그 후’).
님 웨일스는 조심스럽게 그 시절을 회상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불멸을 주는 신의 역할을 했지요.” 항일투쟁으로 몸이 쇠약해진 김산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을 것이고, 님 웨일스의 지성에 자신을 실어 그 얘기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김산은 구술이 끝난 이듬해인 1938년 중국공산당에 체포되어 ‘트로츠키주의자’라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때 그녀는 필리핀 어느 섬에서 이 얘기를 집필하고 있었고, 몇 년 후 김산과 공저로된 책을 미국에서 출판했다.
그녀는 그 책을 저자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그의 아들로부터 도착한 1970년대 말에야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알았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을 자제한 이유, 그해 여름, 그리고 김산의 죽음과 관련된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출판하지 않은 육필원고 속에 간직해두고 있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그 수많은 저술들을 부엌 냉장고에 한가득 보관했는데, 틀림없이 고인이 되었을 이즈음 그 원고들이 어디에서 잠자고 있는지 궁금하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산의 '지식인'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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