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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2004-07-10 14:01:02, Hit : 2102, Vote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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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김산의 아리랑을 읽고

[독후감]김산의 아리랑을 읽고


한 인간이 빛나는 생의 정점에서 동시대 또는 후대인들에게  천부적 업적이나 추종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남기고 사라졌다면 그는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일 역사인물 중에 오늘의 우리 앞에 다시 서주기를 바라는 인물들을 들게 된다면 그런 인물을 꼽게 될 것이고, 그 중에 반드시 김 산(金山)이란 인물이 포함 될 것이다.
그는 33세의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아 항일전선에서 사라져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산, 그는 『SONG OF ARIRAN』의 주인공(주:194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벅 여사의 남편이 운영하는 뉴욕의 죤 데이 출판사)이다. 이름 김 산은 위의 책을 펴내기 위해 님 웨일즈와 함께 지은 가명으로 “金剛山”에서 딴 것이다. 본명 張志樂 외에 장지락·유정화·장북성·유 명 등 10여 개의 가명으로 중국공산당 건립과 항일전선에서 활약한 인물로 짧은 생애를 중국·시베리아·만주·일본으로부터 불어 닥친 침략과 혁명의 폭풍을 맞으면서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같이 산 조선인 혁명가”이다.
그는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고뇌와 좌절, 사랑과 사상의 피어린 발자취”인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자 조선인의 참된 자존심의 보루”이기도 했다. 10대 후반, 3.1운동의 좌절을 체험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톨스토이적 인도주의에 매료, 심취하기도 했고, 다시 마르크스의 나라 러시아로 가려다 기착한 만주 유하현 삼원포(柳河縣 三源浦)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함으로서 민족주의자로, 그리고 의열단에 가담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젖게 되나 192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베이징 시(市) 당 조직책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회영·이동휘·김약산(김원봉)·오성륜·김충창·이광수 같은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을 접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7살에 당 일각에서 영어·일어·중국어·에스페란토어 등의 외국어에 능통함이나 강직한 성격을 시기․모함당하여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1930년 11월 베이징에서 장개석 국민당의 비밀경찰에 체포, 일본영사관에 넘겨져 1931년 4월까지 감방생활을 했다.
김 산은 바로 이 때 절망의 수형생활에서 아리랑을 인식하게 되고 감방의 벽과 기둥에 손톱으로 옥중가(아리랑)를 새겼고 민족 수난사의 마지막 고개를 ‘열두고개’로 설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각오를 피력하기도 했다.
출옥한 뒤의 김 산은 더욱 금강석 같이 강해졌다. 그 강건함은 님 웨일즈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졌다.

“내가 거둔 오직 한 가지 승리는 나 자신을 이겼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와 같이 나의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단 한 가지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사람들의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나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에 대한 인내의 한계와 심리상태에 대한 압력의 한계 모두를 최악의 방법으로 실험 받았다.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시련이 닥치겠는가?”

다음의 시는 위의 내용을 재확인시켜 준다. 역시 그의 각오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살아있는 한은
혁명의 길을 걸으며
이 세상 적을 무찌르기 위해
총 칼을 손에 들고
빛나는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자!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미친 듯이 춤을 추자!
강철과 같은 튼튼함은 우리의 진영
아교와도 같은 단결은 우리의 대오(隊伍)
쓰러지고 쓰러져도 끊임없는 돌격은 우리의 전술
십이억 오천만의 억압당한 이들은 우리의 벗
결단코 잘라 없앨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목이다!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피다!
싸우자! 싸우자!
내일이야말로 인터내셔널을!

그러나 김 산은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운명의 날을 맞게 된다.
석방된 지 7년 후인 1938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일본 스파이(일본 특무)로 또한 트로츠키파로 오인을 받아 같은 해 10월 연안의 항일군관학교에서 강의 도중 중국 공산당에 체포된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총살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중국 공산당 내부의 모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는 체포 당시의 중국 공산당 기록에 “아무런 자백도 받아 낼 수 없는 배짱 좋은 놈”이라고 기록해 놓은 것과 일본 측 조서에 “변절 가능성이 없는 자”라고 기록해놓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 한 가지는 1983년에 중국정부의 심의에서 중국 공산당의 어떤 기록에서도 간첩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의해 복권시킨 사실에서다.
이로서 김 산의 사후 45년 만에 복권이 되어 그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김 산(金山), 그의 33년 짧은 생애는 당시 중국 혁명과정을 취재하러 북경에 온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Nym Wales)가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소금처럼(like salt in water) 되어서는 안 된다"며 칼날 같은 각오로 항일투쟁을 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구술에 따른 일대기를 쓰게 된다.(그래서 공동 저자로 표기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김 산이 처형된 사실을 모른 채 1941년 미국에서 출판하였다.
님 웨일즈는 그 존재 자체도 묻혀 있을 한 조선인 투사를 “영원한 생명”으로 탄생시켜 놓았다. 그것은 김 산의 생애를 『Song of ariran』으로 담아 출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기구한 생애만큼이나 출간된 책도 그에 못지않은 수난을 겪어 왔다. 출판 당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계열 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아 유통이 금지되었고, 1954년에는 먼저 적국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1972년에는 미국에서 다시 재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의 생애를 다룬 책이라고 하여 출간할 수 없었고, 북한에서는 연안파 인물이라는 이유로 기피되었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의 민주화 열기로 미국에서 출간된 지 43년만인 1984년에야 완역, 출간하게 되었다.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로 귀향을 한 것이다.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그리고 이후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했던 이들(원서)과 70년대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밤을 밝혀 읽은 책(일어판)이 되었고, 80년대 민주화 과정의 사회 과학도들의 필독서로 읽혔다.
또 이 책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한국의 항일투쟁 모습과 조국에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한 청년의 장렬한 모습을 전했다.
이같은 김 산의 생애와 진술은 번역판 출간만으로 진정한 귀향으로 볼 수는 없다. 아직 그가 꿈꾸었던 혁명된 세상을 맞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 자신은 혁명노선의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모순은 강대국 중국혁명의 성공을 통해서만 조선혁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소수 민족인 우리의 주체적인 힘보다는 다수 민족인 중국인의 힘을 더 믿고, 더 의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김 산의 고결한 영혼을 더없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던 님 웨일즈 조차도 “He believed Chinese. He was stupid.”란 코멘트를 몇 번씩이나 한바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김 산의 한계였고 역시 오늘의 우리에게도 남겨진 문제이다.
김 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민족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김 산의 아리랑은 ‘미완의 노래’, ‘다 부르지 못한 노래‘인 것이다.




‘아리랑’(Song of Arriran)을 읽고






한홍구-아리랑의 최후를 아는가-2
김산의 일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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