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페이지 1
 


  아리랑(2005-05-25 15:35:42, Hit : 841, Vote : 80
 http://arirangnara.com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처형실행자 생존…죽음 진실 밝혀야”

2005.5.23 (월) 18:42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사보기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처형실행자 생존…죽음 진실 밝혀야”  
  
“김산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밝힐 것은 김산이 처형된 장소와 무덤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김산의 처형을 실행한 당 보안처 사람 중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통해 김산의 마지막 진실을 찾으려고 합니다.”

중국에서 김산의 행적을 연구하고 있는 중공중앙당교 최용수 교수는 김산과 관련해 대부분 전모가 밝혀졌다고 말했다. 조선족인 최교수는 원래 철학(유교)을 전공했다. 그가 조선족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것은 조남기 장군(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유일하게 군사위원이 된 조선족)이 1982년 중앙당학교에 공부하러 왔을 때 “노혁명가가 살아 있을 때 역사를 정리해야 하지 않겠소”라는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중앙당학교에 근무해 중국공산당 문서를 직접 열람할 수 있었고 이것이 진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캉성이 서명한 김산의 처형 문건을 처음 발견한 것도 그였다.

“최근 김산과 관련해 발굴한 새로운 사실은 그가 1920년 박용만 암살사건에 증인으로 참석한 기록입니다. 당시 국민당 화북성 법원 기록을 보면 김산은 박용만 암살범 이해명의 증인으로 참석해 ‘(박용만이) 원래는 독립당이었는데 후에 독립당을 팔아먹었다’는 요지의 증언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최교수는 당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가 가명이나 필명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기고문이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일부 김산 연구가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김산이 연안에 간 이유와 김산이 마지막에 중국공산당 당적을 가졌는가 여부에 대해 “마지막에 김산은 중국공산당에 복당돼 당 중앙선전부에서 근무했고 그가 연안에 간 이유는 바로 복당을 위해서였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김산이 과장해 말했는지 님 웨일스의 기술에 오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리랑에 몇 가지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김산이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했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김산을 죽음으로 내 몬 사람이 같은 한국인 한위건이라는 견해에 대해 “두 사람은 악감정을 가졌지만 서로 죽이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김산은 총을 들고 싸운 혁명가가 아니라 선전과 인재양성을 맡은 학자였습니다. 한국의 보훈처 사람에게도 말했지만 김산과 같이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담했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서훈을 해줘야 합니다.”

최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좌파독립운동가에게 서훈한다는 말에 대해 “좌파라는 말을 쓰지 말고 그냥 독립운동가라고 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베이징|원희복기자 wonhb@kyunghyang.com〉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Ⅱ 중국편-1. ‘항일지식인의 상징’ 김산
[다시쓰는 독립운동 列傳]“한국정부서 명예회복 해줘야”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아리랑나라
서울시 종로구 권농동 127-4 유성빌딩 4f

tell:02-763(762)-5014 010-4764-8844

Email : kibad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