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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2004-07-15 00:36:40, Hit : 1854, Vote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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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흥미로운 책, 아리랑.

自敍傳은 자서전인데 金山이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라, 그는 얘기했고, 또 자료들을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토대로 미국의 젊은 여성 저널리스트가 쓴 전기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마치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소설과 같이 허구가 아니라 한권의 역사책으로써의 가치를 부여해도 될 만큼 실증적인 르뽀문학의 책이다. 또 주인공 김산의 지식과 사상을 좇다보면 심도 깊은 철학서를 읽는 듯 느껴지는 종합적 知性의 冊이다.

"내 전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고백은 책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사건 속에서 증명되어지며 진행된다.
이 책을 읽으며 한장 티슈가 물에 젖어들어 사라지듯 젖어들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지고 있는 思想과 哲學을 이론 속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적용시켜 行動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 말이다.

'실패의 연속'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실패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이 되는가?
그 실패가 그쳐주지 않고 연속된다는 것!
김산은 그 계속되는 실패를 인생의 이정표로 보며 그 속에서 자기의 길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
그는 또 고백하기를 "나는 철저히 반성하고, 혁명의 일반적 원칙을 공부했으며 드디어는 이 모든 것들을 성공적으로 내면화 시켰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완전한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한다.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다"고 말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을 성공적으로 내면화 시켰다"고 큰 소리치는 이 사람의 주장은 결코 자기도취에 빠진 어리석은 虛張聲勢가 아니다.
김산의 자취를 좇다 보면... 어떻게 이러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사상의 싹을 티우고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한국엔 '영웅'이 없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 이유로 많은 것을 댈 수 있겠지만, 지금 그 거론되는 이유와 상관없이 가히 영웅이라할만한 한 인간이 내 마음 속에 자랑스럽게 승리의 모습으로 서 있다. 알렉산더처럼, 케사르처럼, 나폴레옹처럼, 징기스칸처럼, 도꾸가와 이에야스처럼 세계사에 기록되진 않았지만, 조국에서 조차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묻혀있는 그이지만, 내게 있어서 그는 분명 영웅이다.
자기에게 메이지 않고 자기를 극복하며 보다 나은 사회와 이상을 꿈꾸고 그리며 위하여 활동했던 행동적 영웅이다.

이 책, [아리랑]의 일본어판 부제는 '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로 되어있다. 김산(金山)이라는 이름은 그가 가진 대여섯가지 가명 중에 하나이며 신분 비밀 보장을 위하여 님 웨일즈가 권한 이름으로 본명은 '장지락'이라고 한다.

아리랑을 읽다보면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현대 공산주의 혁명운동 속으로 내가 뛰어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역사의 현장을 사실감있게 조명하고 있고, 또 그 상황 속에서 사고하는 주인공의 정신 묘사를 뛰어난 문장이 담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행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고통은 성격을 창조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만들어 낸다."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었던 人道主義적 따뜻한 人間愛와 동시에 그러한 인간애를 만들어 내는 원료로 '고통'을 끌어내고 있는 그는 놀랍도록 완전한 인간으로서 다가왔다. "나 자신의 문제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참으로 고통을 아는 자인 것이다. 그가 고통당하는 자들을 안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고통을 말할 자격이 있었다.

또 그의 지도자로서 완벽한 정신적 조건을 증명해 주는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일단 내 지도방식이 올바르다고 느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따르라고 명령을 내린다.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 마음 속에서 결정하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개인적 안락이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도하기 보다는 차라리 따를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라면 나는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좇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산을 만나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지도자가 됨보다도 이런 지도자 밑에 있어 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마음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바로 지도자의 자질 아니겠는가?

또 그의 승리를 증명해 주는 다른 표현들을 살펴보자.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절대로 배반하지 말자. 그것은 어리석은 태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진실이었고 또한 그것이야말로 내 도덕성을 편히 쉬게 해주는 반석이었던 것이다."
"설령 그 목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미심쩍은 수단에 호소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나는 결심하였다."
"나 자신의 방식대로 하다가 설령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게 그 실패는 명예이고 승리인 것이다."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거짓이 한마디도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사고들은 그가 감옥에 붙잡혀 고문당하면서 전향을 강요 당하던 시기에 정립되어 표현된 문구들이다.
이토록 강하고 올곧은 의지를 갖고 투쟁의 현장에서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물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행동은 언제나 사상과 이론을 전제하고 있었다. 무모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지극히 도덕적이고 이성적이다.

우리 사회는 그가 다른 정치이념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숨기고 묻어두려 했는데, 잠시 그의 사상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판 서문에 실린 님웨일즈의 말을 빌려보고자 한다.
"김 산은 단테적 심리를 졸업하고 톨스토이즘과 아나키즘(anarchism)으로 나아갔고 그의 곧 사회주의의 현대철학인 마르크시즘(marxism)에 이르게 된다... 중략 ... 혼합딘 마르크시즘(mixed marxism) 혹은 1920~1930년대의 동양이 겪은 상화아래서 시대가 낳은 하나의 순교자 였다.... 중략 ... 33세의 김산은 일본의 억압아래 있던 동시대 조선인들에게는 영명한 지도자요, 사상가였으며, 뜨거운 영혼과 가슴을 소유한 순수한 인도주의자요, 더 없이 고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알고, 이승만, 김구를 알고, 안중근, 윤봉길은 알아도, 이승복 어린이의 이름은 알아도 장지락, 내지는 김산의 이름은 모르고 있다.
왜 이처럼 아름다운 정신과 뛰어난 지도력과 행동력을 소유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인물의 이름이 묻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가 이념적으로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해서인가? 그가 공산주의 혁명운동가라서?
사상의 표출방식에 앞서 그 본질, 그가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향하여 수용과 학습의 자세를 갖고, 그 다음 내면화 과정에 들어가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결정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를 진보하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폐쇄적으로 만드는가?
무엇이 우리를 소극적 독단주의자, 내지는 쉬 쓰러지는 허약한 자로 내모는가?
자유민주주의 를 표방하면서 도리어 사상의 자유를 제도로써 억압해 온 현실이 뒤늦게 아리랑의 김산을 만난 내게 슬프게 다가왔다.
우리가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어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되고 역사를 바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보다 성숙한 인식과 정신적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에겐 김산이 필요하다.
그의 여자이고 싶다는 생각, 정말 나답지 않게 튀어나와 버렸다.
다분히 혁명가적, 운동가적 기질을 가진 나로선 그런 리더가 필요했고... 그의 인간미는 깊은 고통을 겪는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우리 사회의 이념과 제도가 숨겨두려 했던 김산은 내게 실패와 고난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로 대처하고 극복해야 할지를 그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는 내 곁에 없고 내 손으로 느낄 수 없지만,
나 그에게 자극 받았고, 그와 같이 승리하고픈(나에 대하여) 강한 욕구를 얻었다.

이 책 어느 곳에서도 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선전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김산의 삶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를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표지를 열어 몇장의 사진을 지난 뒤, 첫번째 나오는 글이 아리랑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김산은 님웨일즈에게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 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 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자, 이제 왜 이 책의 제목이 '아리랑'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記述된 그의 삶이 아리랑이다.
이 노래가 민족의 증언이라면 이 노래의 증인은 김산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노래이다.
그러면 김산은 바로 우리 민족의 산 역사이며 증인인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난 것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내 민족의 영웅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영웅의 의미에 대하여 오해 없기를 기대해 본다.



기록을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살피고 싶은 것은 공저자인 님웨일즈이다.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였던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으로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이다. 그녀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의 전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을 아시아에 체류하며 중국과 한국에 관한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1930년대, 중국 혁명의 현장 속에 젊은 여성 지식인이 단신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용기를 어떻게 보고 평가해 주어야 할까?
그녀의 그러한 용기가 그 시기 그 장소에 있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영웅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용기라는 단어 속에 그녀의 공로를 묶어두고 싶지 않다.
그녀의 행동 속에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전달을 목적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적 자세와 열정을 읽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감추인 한 인간의 삶과 사상을 이리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문학적 재능에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이 책을 소개해 주신 분의 말씀으로는 그녀가 김산을 사랑했단다.
지금 할머니가 된 그녀는 아직도 김산을 그리워 한다고 했다.
또 이상에서 보아 느낄 수 있듯이 지적, 행동적 능력의 소유자인 그녀에게 신은 빼어난 미모를 더하여 주셨다.
표지를 열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한 편의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으니까...

이미 팔십이 지난 팔순 할머니 님웨일즈의 소망이 김산의 이야기가 영화화 되는 것이란다. 저 푸른 하늘과 이 굳은 땅위에 분명 먼저 외서 싸우고 사랑하며 살다간 한 인물의 삶을 글로써 확인했고, 이젠 나 역시 그 것을 영화로라도 형상화하여 보고싶다는 간절함이 있다.
삶의 목표와 그 삶의 방식에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이 책을 사랑한다.
실패 속에서 승리를 찾아내는 그 능력을 내것으로 하며 책을 덮는다.

minority




※ '95년, 6월의 첫날 이른 아침...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누가 보면 비웃어주겠지만, "金山의 사고 속에서 내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金山은 '이론가'이기 보다 '행동가'이다.
그러나 그의 行動은 언제나 思想과 理論을 전제하고 있었다.
무모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지극히 도덕적이고 理性적이다.

나는 내가 행동하지 않는 정체된 이론가에 지나지 않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행동하지 않는 나의 사상을 불신과 열등적 의지로 비판하며 자학해 왔다.

그런데 내가 동경하는 행동적 의지가 충만한 金山의 사고체계 속에 나와 동일하며 내 의사를 존중, 아니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것에 크게 위로 받았다.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이 멋진 실체가 나와 같은 고집과 주관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단, 그는 행동이 따라주었기에 확신 할 수 있었고 자긍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행동이 없었기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적 이념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은 부차적 문제이다.
우린 본질적인 면에서 넉넉한 交感이 있었다.
생각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

단, 아쉽고 서글픈 건 그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은 종국엔 절대적 진리가 없는 虛無의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될 것...

minority




1.입구쪽에 쌓여 있는 필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산의 '지식인'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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