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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2005-03-10 23:26:53, Hit : 886, Vote :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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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쳐 김순녀 정선아리랑 발표회

<렉쳐 김순녀 정선아리랑 전 바탕> 발표회... 3, 16, (수)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 최초 개인발표회


일시: 2005, 3, 16, (수), 오후 7시
장소: 국립국악원 우면당
발표내용:
정선 긴아리랑, 잦은아리랑, 엮음아리랑, 강원도아리랑, 김옥심제정선아리랑, 한오백년

주최:(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세계화추진위>
주관: 국악신문사
후원: 강원도·정선군·신나라·벤처아리랑


음악감독: 한상일
연출: 이호규
해설 글: 김연갑/유진영(sbs 아나운서)
낭송: 유강진
총무간사:기미양



문의: 02-3673-4667, 010-6258-0251, 010-4764-8844
첨부: 이력, 해설 등





렉쳐 김순녀 정선아리랑 전바탕 발표회


정선아리랑, 그 모천(母川)의 노래




김연갑/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일반적으로 아리랑을 말 할 때는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서울·경기의 본조아리랑(경 토리), 전라도의 진도아리랑(육자백이 토리), 경상도의 밀양아리랑(경상도메나리 토리)을 일러 우리나라 <4大아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리 마뜩한 규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타의 아리랑과 정선아리랑과는 동류의 하나로 병렬시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 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위 인지도(認知度) 또는 통속성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정선아리랑이 절대적인 비교 우위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선 형성 시기를 들어 보면, 밀양아리랑이 1920년대 초에, 본조아리랑이 1920년대 중반에, 진도아리랑이 1930년대 초에서나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나아가 전승체계의 견고성과 사설(4천여수)의 적층현상과 전승지의 광역성, 특히 아직도 구비문학적 현장성과 전승력이 유지되어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노래로 하여 일체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세 가지 아리랑 모두는 정선아리랑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주종 또는 선후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딱히 음악학적인 결론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무리가 없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선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의 아리랑’인 셈이다. 다음은 이를 계보화 한 것이다.






                   <아리랑의 계보>


뫼‘아리’(?)
   ?
  아라리
     ?
    1.강원(강릉)자진아라리(북한강계)
                   ?강원도(인제)아리랑
    2.강원(정선)긴아라리(남한강계)
                   ?중원아라성
                   ?한오백년
                   ?강원(정선)엮음아라리
            ?
           3. 경기긴아리랑
           4. 경기자진아리랑(H·B. 헐버트·이상준 채보)
                       ?
                      주제가‘아리랑’→본조아리랑(신·서울·경기아리랑)







정선군이 17판을 거듭 펴낸《정선아리랑》과 최근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소> 김시업교수가
펴낸 조사보고서 《정선의 아라리》에 수록된 사설 3천여수에는 여타 아리랑 사설의 많은 부분이 동일형 또는 변이형으로 나타나고 있어 사설면에서도 정선아리랑은 ‘모천(母川)의 노래’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모든 대상을 수용하는 ‘열린 소리’로 시공의 제한 없이 뻗어가고 올 수 있게 한 것도 여기에 기인 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때문에 가장 민중적이고 생활적인 소리인 정선아리랑에 수심(愁心)과 산수(山水)편으로 분류 할 만큼 유형화 되었다거나 다른 어떤 서정민요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한문투 사설이 하나의 유형으로 존재한다든가, 고려말의 역성혁명 같은 역사적 사실과 그에 의해 출현한 <두문동72현>의 충절혼이 사설화 되어있는 연유도 이에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歷史) 우리는 아리랑을 말 하면서 은연중에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해 오고 있다. 그 하나는 되도록 오랜 유래를 지닌 노래라고 말하려는 성향이고, 또 하나는 비장감을 부각시켜 민족사의 아픔과 함께 하여온 노래임을 말하려는 성향 이 그것이다. 전자는 기원설의 역사주의(歷史主義)라고 말 할 수 있고, 후자는 비장지향성(悲壯指向性) 또는 역사의 원상의식(原傷意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정서는 곧 정선민들이 아리랑(아라리)의 연원을 고려유신 <한시율창(漢詩律唱)설>에 기대어 오고, 그 어원(語源)을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나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疼痛說)라고 인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선군에서 공시(公示)하고 있는 역사는 역시 려말선초의 고려유신들, 특히 정선 서운산(瑞雲山)에 은거했던 이들과의 관련 전설에 근거한다. 즉, “처음 불리어지기 시작된 것은-(중략)- 불사이군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에서 은신하다가 정선으로 옮기어 일생동안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님을 사모하고 충절을 맹세하며 입지시절의 회상과 가족과 고향의 그리움에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 때의 선비들은 이러한 비통한 심정을 한시로 지어 율창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 지고 있는 아리랑의 가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선인들이 자부심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눈이 올라나···”와 같은 연관되는 사설을 첫 소리로 앞세워 부르고, 한문투 사설들을 수용하는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 굳이 말 한다면 이는 전설(傳說)이다. 그래서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는 시원(始原)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이미 있어온 소리에 그들의 회한(悔恨)이 사설로 수용되어 공동체에 연대감을 촉발시켜 전승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원(語源) 강원도 음악 문법의 기층성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메나리’나 ‘아라리’의 존재와 ‘메나리토리’란 말에서 <메아리설>이 대두되었다. 이 설은 산(山)의 우리말 ‘뫼’와 ‘소리’ 또는 ‘노래’의 의미인 ‘아리’가 결합한 것으로 산악인의 원초성을 지닌 신호 또는 언어이면서 또한 음악인 산소리 ‘메+아리’가 ‘아리’만 확대되어 3음절의 ‘아라리’로 되고, 이에서 다시 ‘ㅇ’음이 첨가되어 ‘아리랑’으로 확대·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정선 지역민들이 외견상으로는 표출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수용하고 있다고 본다. <알리오설>은 앞에서 살핀 기원설의 하나인 <한시율창설>과 상통되는 설이다. 이는 정선 지역에서 유일하게 공시(公示)된 설인데, 1977년 정선읍 비봉산에 세워진 <정선아리랑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구체화 되어 있다. 즉 “본래는 아라리라고 일컫던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어느새 보편적인「아리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으니, 아리랑이란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알리」에서 연유된 듯 하더라”라고 되어 있고, 교육자료 “원로들은 아리랑이 아니라 아라리라고 강조! 한다. ‘누가 나의 이 억울한 심정을 알리오, 알아주소서.’라는 뜻”이라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알리→아라리→아리랑>으로 변해왔음을 말 한 것이다. 이는 여말선초의 변혁기 역성혁명에 항거했던 절의파 구성원을 총칭하는 <두문동72현>의 처지를 염두에 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라며 비통하게 애소 할 그릅은 우리 역사에서 이들을 제외 하고는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고려말 상황이 지역 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들이 남긴 시문, 특히 누구보다도 정선에 연고가 깊은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시에서 ‘누가 알리오’라는 뜻의 ‘수지’(誰知)를 쓰는 시가 유독 많다는 사실에서 주목할 만한 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다면 이 두 가지 어원설은 어문학적인 논의를 떠나 정서적으로는 매우 공감하는 바이고, 결과적으로는 정선아리랑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고 보게 된다.




10대 특징

① 창곡 중심이 아니라 사설 중심이다. 창곡은 원초성을 유지, 변화가 거의 없고 사설은 시대마다 확대되어 뚜렷한 적층현상을 보인다. 창에 대한 부담이 적어 자신의 심사를 표출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에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② 단일 민요로는 물론, 전 구비문학 자료 중에 사설이 가장 방대하다.

③ 초(超)기능적이다. 기본적으로 내면을 다스리고 표출하려는, 그래서 노래 자체를 즐기려는 ‘놀이적 성격’이 내재해 있음은 물론 지극히 생활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④ 음악적 형태나 사설의 구조상 원초성과 토착성이 유지되어 있다.

⑤ 한문투(漢詩形) 사설이 유형형화 되어 있다. 이는 <한시율창설>과 <알리오설>의 한 배경으로 볼 수 있고, 이로서 ‘정선’아라리로 특화 된다.

⑥ 구비문학적 현장성과 전승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거의 유일한 민속음악이다. 또한 음악 공동체가 아직 존속되어있어 정체성과 통합성이 유지 되고 있다. 그래서 지역민들이 정선아라리로 일체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⑦ 전체적인 정조는 애잔함과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다. 진도아리랑이 흥청거림과 신명성이, 밀양아리랑이 투박함과 남성적임이 특징인 것과 비교 되는 점이다.

⑧ 토속민요로 전승지가 가장 넓다. 강원도 전역과 경상·충청일부 그리고 경기 한강수계가 그 전승지이다.

⑨ 군(郡) 차원에서 전수·전승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군의 상징으로 까지 삼아 보존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통한 대중음악과의 접촉으로 토속민요의 전승체계가 급격히 위축되어 가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방안일 수 있다.

⑩ 40여년 간 군 차원의 보존·발굴 상황이 축척된 가집(歌集)을 갖고 있다. 바로 1968년 이후 17판을 거듭해 온《정선아리랑》인데, 공식적으로 증보·축차 되고 있는 것으로는 독보적인 가집이다.




가창 양식

정선아리랑이 본질적으로는 사설 중심이라는 것은 가창양식에서도 확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느리게 부르는 ‘긴소리’, 빠르게 부르는 ‘잦은소리’, 그리고 ‘엮음소리’는 성음의 세련미나 예능의 유무에 의해 변조(變調) 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사설 표출 능력과 그 효율성을 위해 확대된 것이라고 본다. 이는 1960년대 강릉·삼척·정선 등지에서 녹음된 자료를 통해 볼 때 ‘레·도·라·미·솔’의 메나리토리 5음계와 3소박 6박자라는 구성상의 변화는 거의 없고, 사설의 확대 폭이 훨씬 크고, 사설의 적층현상으로 지역적 차이가 변별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이 된다. 딱히 이러한 정선아리랑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선아리랑은 다른 민요처럼 서양 기보(記譜)로 규정화 하기는 쉽지가 않다.


*아라리

긴소리-이는 일반적으로 불려지는 것으로 창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세마치장단으로 악절과 마디와 같은 기본 틀에서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를 오선보화 하면 9/8박자이다. 잦은소리-긴소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긴소리’에 비해 빠르고 물박장단이나 젓가락장단에 어울리고, 드물게는 후렴을 절마다 넣어 선후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독립적으로 불려지기 보다는 ‘엮음소리’와 같이 ‘긴소리’에 이어 불려진다. 엮음소리-긴소리가 불려지는 중간에 또는 끝에 한 두 편이 불려진다. 2박·3박·4박의 불규칙한 박자로 역어나가다가 뒷부분을 늘어트려 맺는다. 그러나 “시간적인 질서와 음악적인 질서에 규제를 받지 않고 거의 동일한 음으로 단조롭게 이어”가다 ‘긴소리’로 되돌아오는 형식이다. 이는 사설측면에서는 확장현상이고, 음악측면에서는 변조형태 이다. 창민요에서 ‘복는형’ 또는 ‘사설형’이라고도 하는데. 3·4조 내지 4·4조의 율조에 맞춰 빠르게 부르는데 맞게 되었다. 그래서 엮음형으로의 변화는 해학성과 율조성이 표현기법상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사설의 확장 부분과 악곡의 엮음 부분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연행? 鑽꼭?주로 호기 있고 개방적인 남자들이 부르는 예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일부 창민요에서 볼 수 있는 ‘잦은’과는 다르게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외지의 전문 소리꾼에 의해 변조된 것으로 주장하나 사설의 확장을 정선아리랑의 속성으로 보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후렴-정선아리랑에서의 후렴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경복궁 중수(1865~1872) 이후에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이나 본래적으로 덧붙임(addition)의 기능일 뿐이라는 논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60년대 녹음된 자료들에서 추정되는 바에 따르면 어떤 시점에선가 하나의 사설(각편)로 쓰이다가 1930년대 쯤 아리랑의 전국적인 두각으로 영향을 받아 후렴으로 정착 되었다고 보게 된다. 그 근거는 현지민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고, 후렴의 악곡이 본사의 악곡과 동일하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오백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불복하여 정선·원주·여주·삼척 일대에 은거한 목은 이 색을 위시한 고려유신들이, 고려(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34대)가 5백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망하게 한 이성계를 원망하여 지은 시에 연유했다는 전설이 담긴 소리이다. 이것이 일제시대 때 편곡되어 신민요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40년대에는 유행가로 불리고, 70년대 와서는 가요로 불려지는 소리이다. 전문 소리꾼에 의해 불려지는 것은 장식음이 많고 고음으로 질러내는 기교가 요구되는 소리로 메나리 선법이 짙다. 곡명은 후렴구에서 유래하며 정선 지역 설화에서는 고려유신들이 고려가 5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망한 것을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곡 전체의 분위기는 애처롭다. 미·라·도의 주요 음과 솔·레의 경과음으로 구성되며, 미로 시작하여 라로 끝난다. 장단은 느린 중모리, 전체적으로는 낮은 음으로 부르며, 특히 낮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후렴구와 한 옥타브 높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본 마루의 대비가 이 민요의 매력이다. 다른 아리랑과 같이 후렴을 먼저 부른다.


*강원도아리랑
원래는 언모리와 비슷한 장단에 메나리토리로 된 강원도 자진아리랑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일제시대 음반화하면서 경토리로 되어 토속성을 상실, 통속민요가 되었다. 1920년대 초부터 발매된 S·P 음반 중에서도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이상준의 1921년《신찬속곡집》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잡가로 널리 불렸음을 추정케 한다. 선율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고 가사에 나타나는 몇몇 단어는 강렬한 이미지로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려주기도 한다.(한명희)

다음의 사설은 이옥화가 부른 소리의 사설로 리갈(C198)에 수록된 것이다. 각 마루마다 후렴을 달리하고 있다. 뒤의 사설은 소리꾼들에 의해 전승되는 사설이다.


*서울제정선아리랑
강원도 민요 중 백미로 꼽히며 예술작품으로 까지 평가를 받는 아리랑이다.(이혜구·한만영) 1948년 처음 김옥심에 의해 불려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오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8년 강원도 순회공연 중 정선지역 공연에서 정선아라리를 듣고, 이창배가 이를 ‘무대소리’ 엮어보자며 구성해서, 그 해 김옥심에게 부르게 했다(한성자 증언)는 설이고, 또 하나는 김옥심이 구성하여 이창배 앞에서 불러보자 “그 소리 괜찮구먼”이라고 하여, 그 뒤로 김옥심이 무대에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춘희·이호연·김영임도 유사하게 이해하고 있다.) 어쨌든 이 소리는 강원도에서 불려진 것이 서울로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해방 후 이창배와 김옥심에 의해 불려진 것만은 분명하다.

첫 부분은 엮음으로 사설을 주어 섬기고, 둘째 부분은 느린 한배로 나오는데, 여기부터 세마치 장단을 근간으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셋째 부분은 후렴구로 대개 합창으로 받지 않고 독창으로 받는 특징이 있다.

전승 사설은 담음 세 가지이나 문헌 사설은 상당히 많다. 또한 정선의 아리리 중 엮음의 앞 사설은 모두 이 아리랑의 사설로 전환되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이 아리랑은 긴아리랑과 함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경기소리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일반화 되지 못해 전승이 단절 위기에 있다.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후렴-사설-소리’로 구성되었고, 한오백년과 함께 주요음과 꾸밈음이 같다. 이 두 가지는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특히 설화상으로도 정선아리랑에서 분화되었음이 분명하여 이번에 김순녀를 통해 수록했다. 특히 한오백년은 정선아리랑 사설이지만 한문투여서 잘 불리지 않는 사설들을 가락에 얹었다.







김순녀의 전승체계


세계가 우리 음악을 주목하는 이유의 하나는 민속음악의 견고한 전승체계와 그것이 현장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계 유네스코가 <아리랑상>을 제정한 것이나 판소리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한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리랑, 특히 정선아리랑의 전승체계는 우리 스스로에게나 세계에서 주목 할 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음반의 주안점을 바로 이 같은 정선아리랑의 전승체계를 반영하는 것과 문헌 속에만 있는 사설을 되살려 내는데 두게 되었다.

이는 정선아리랑의 중요한 특징이며 속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전수·전승체계를 관찰 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정선군 정선읍 덕송2리(송오리)에서 5대째 살아오고 있는 김연수 가계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 가계는 동네 소리꾼이셨던 남효자 할머니가 88년 작고하기 전까지 아들(김연수)과 딸(김옥자)과 손녀 넷에게 자연스럽게 소리를 전해주어 정서적 기반을 형성케 했고, 3대(1대 4, 2대 4, 3대, 2명)의 소리 층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장녀 순녀와 차녀 순덕 자매가 20대에 여러 경창대회에서 수상을 할 만큼 재능을 갖고 있고 언니는 서울에서, 동생은 고향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 적격으로 보게 되었다.

특히 언니는 유일한 강원도 출신 국악인으로 경기소리제로, 동생은 고향에서 전통적인 메나리제로 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순녀는 양식적 경계가 희박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서 ‘퓨젼’ 또는 ‘크로스오버’를 대비해야 한다고 볼 때, 정체성을 갖고 경기소리제로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웠다. 해방직후 김옥심이 정선아리랑을 경기소리제로 불러 “민요라기보다는 예술음악”(이혜구)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정선아리랑의 성가를 높였듯이 ‘제2의 김옥심’으로 성장과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보배롭다 하겠다. 그리고 동생 순덕은 사투리를 유지하고 기능에 것 넘지 않는 평균적인 성음의 소유로 교수자로 적합하며, 음량이 탁월하여 장시간의 사설치레가 가능하다는 점이 돋보였다. 이번 음반에서는 가족 내 세대별 전승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3차에 걸쳐 가족 10인을 대상으로 녹음을 했다. 이 중에 두 자매를 제외하고는 현지에서 단 한 차례 자연스럽게 녹음을 하여 즐겨 부르는 사설과 꾸밈음의 차이 그리고 같은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가를 확인 하고자 했다. 그런데 어머니(순녀 중심)와 이모보다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딸 넷 모두가 나름의 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가계의 기질은 모계적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이 가계를 중심으로 한 전승 체계는 10년 단위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매를 중심으로 한 김연수 가계(家系)는 매우 이채롭다.






                                                                                  
               <김순녀·순덕 가계도>
              남효자(할머니·1899~1988)
                         ↓
            김연수(71)   +   전인식(74)
              옥자(75)   ↓  귀봉(64)
    
                           순녀
                           순덕 + 김동수
                           순이 ↓  
                           순여      
                                 상근
                                 상아


김순녀(순영)


김병하(예능보유자)·김진환(김뻑꾹예술단장)· 안비취(경기명창) 사사
1979년 정선여고 졸업
1980년 KBS 민요백일장 최우수상 수상(정선아리랑)
1981년 서울로 이주, <김뻑꾹예술단> 입단, 국악협회 정회원
1985년 제2회 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정선아리랑)
2002년 월드컵 기념 공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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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의 주요 내용


<한시형편>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창밖은 삼경인데 보슬비가 오고요/ 우리둘의 먹은마음은 두사람만이 안다
정선아리랑에서 ‘바로 그 것’으로 인식되어 불려지는 대표적인 사설이 공동체의 생활 경험과는 동떨어진 첫 번째 사설이다.

정선아리랑 ‘제 일절’로 지칭 할만한데, 어떤 노래에서든 제 일절로 불려지는 데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다고 본다.

이는 고려말 이성계 중심의 역성혁명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일상의 체험보다 중요하게 받아드린 특별한 계기에서 연유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설은 전체적으로 소수이지만 정선아리랑의 정체성, 역사와 어원을 파악하는 데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사설들이다. 이 <한시형편>의 일부를 김순녀가 부른 <한오백년>에서 소리화 했다.




<일상편>

한치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에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살아 나지


니나 내나 한번 여차 죽어지면 겉매끼 일곱매끼 속매끼 일곱매끼 이칠이 십사 열네 매끼 찔끈 짤끈 꽁꽁묶어 초롱불아 불밝혀라/ 상두꾼아 발맞춰라 어하넘차 떠들러매고 북만 산천에가 폭삭 썩을 인생들 남듣기 싫은 소리는 부디 하지 맙시다.

정선아리랑을 ‘삶의 소리’라고 말하는 배경이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사를 노래하는 사설이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많고 내용상으로도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애와 고부간의 갈등 같은 가족 관계에서부터 산간농가의 의식주와 관련한 소박한 일상사 까지 다양한 화자에 의해 표출된다. 특히 산간민들만의 화전생활상의 궁핍상과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곤두래와 딱주기 산나물로 보리고개를 넘겼던 사연 등 산속(山俗)이 그대로 노래되고 있다. 그런데 정선민들은 이러한 곤궁한 생활을 결코 부정하거나 도피하려 하지 않는 긍정적인 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을 ‘사랑의 노래’라고 하기도 한다.




<애정편>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 박이 다떨어 진다


정선읍내 물래방아는 사시장철 물살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모르나


남녀간의 사랑과 질시 그리고 봉건시대의 악폐로 꼽히는 조혼 문제, 이로 인한 성적 갈등도 희화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주로 여성이 화자일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아우라지 처녀 사연의 사설은 산간 처녀 총각의 애뜻한 정한을 담고 있다. 또한 딱따구리의 강한 부리를 대비하여 조로(早老)한 남편의 성적 무능을 나무라는 우의적인 사설도 원망이기 보다는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때 여기에 포함된다. 이점에서 같은 성애를 그렸다 해도 진도아리랑의 대담하고 질박농탕한 성애의 묘사와는 다른 것이다.




<산수편>

이웃집은 다문다문 山은 울울창창/ 山水좋고 人心좋아서 무릉도원일세


몰운대 방석에는 신선이 놀던 곳이요/ 층대 밑에 맑은 폭포 금상첨화 이루네

생활 주변의 자연경관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사설들인데, 기암절벽·약수·꽃 등을 그린 것으로 극소수이지만 <한시형편>과 중복되기도 한다. 이는 공동체의 체험에서 그려진 것이기 보다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정선지역민들에게 있어서 주변 자연물은 오히려 생활의 장애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선에서 ‘무릉도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척박한 사정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참고문헌과 각주 생략)




<역사편>

정선사십리 발구덕십리에 삼산 한치인데/ 의병난리가 났을때도 피난지로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조각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은 한덩이로 뭉친다.

내용상으로는 고려말 격변의 상황으로부터 근대사 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저항적 의식이 표출된 사설들을 말 한다. 아마도 단일 민요에서 우리의 전 역사를 노래한 경우는, 그것도 거의 저항적인 의식으로 노래되기는 정선아리랑이 유일하다고 본다. 이 속성 역시 정선아리랑의 정체성의 한 단면인데, 려말선초(麗末鮮初) 격변의 역사상황을 각별하게 받아드린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위의 첫 번째 사설은 구한말 의병전쟁의 한 거점이 정선이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사설은 남북 분단상을 생활어로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정선아리랑은 국가적 상황을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표출, 관념이 아닌 체험으로 구체화 하고 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을 ‘역사의 노래’라고 말하게 된다.

이번 김순녀의 발표를 통해 모든 아리랑의 시원이 정선아리랑에 있고, 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경기제정선아리랑이 정선아리랑의 전 바탕에 함께 있는 것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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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녀의 정선아리랑 전바탕> 발표회를 축하 드립니다.



김원창/ 정선군수



아리랑의 고장, 우리 정선군 출신 김순녀의 <렉쳐 정선아리랑 전바탕> 발표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발표회 자료집에도 명기하였듯이 우리군은 토속민요의 전승체계가 위축되어가는 현대에서 이를 유지·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의지의 하나가 가사집<정선아리랑> 발간과 <정선아리랑축재>의 개최입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사업에서 개인의 발표회나 음반 발매 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감이 없지 않은 듯 합니다. 이제 정선아리랑의 외연을 넓히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 음반 발매와 발표회를 갖게 되었음에 격려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특히 이번 발표회를 -렉쳐 정선아리랑 전바탕-이란 주제로 한다하니 정선아리랑의 세계와 가치를 전하려는 뜻이라고 볼 때 더욱 격려의 뜻을 표합니다. 모쪼록 이번 발표회를 계기로 서울에서 불려지는 강원도아리랑·한오백년·김옥심제정선아리랑이 직접 확산의 결과이고, 더불어 전국의 모든 아리랑이 정선아리랑의 품에서 확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고장 출신 명창으로서 더 큰 활동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준비한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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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세계화에 기여하시 길




신나라 회장 김기순



아리랑을 사랑하는 저로서 우선 공연의 주인공이신 김순녀 선생과 <렉쳐 김순녀의 정선아리랑 전바탕>을 기획한 추진위원회에 축하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아리랑 하면 바로 정선아리랑인데, 그런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이를 알리는 일에도 소홀히 했음이 사실입니다. 더불어 정선아리랑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 됩니다.

이제 아리랑의 세계화는 국가 이미지를 '고속성장'에서 '문화국가'로 바꿀 필요가 있는데다, 이미 어느 정도 세계 속의 노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봅니다.

김순녀선생은 지난 해 가장 방대한 사설을 본인의 3대 가족 10인의 출연으로 담은 신나라에서 출반한 <정선아리랑>을 제작하는데 주역이셨습니다. 이번에 다시 무대에서 그 진면목을 선 보이신다니 기대가 매우 큽니다.

김순녀선생의 큰 장점은 정선 출신으로서 정선아리랑으로 이미 수상경력이 있는데다가 서울·경기소리를 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발휘 된다면 강원도 소리와 서울·경기아리랑들을 바탕소리로, 또는 퓨전식으로, 그리고 크로스오버 형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소리꾼으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일을 준비하신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와 국악신문사의 노고에도 박수를 보내는 바 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김순녀선생의 <렉쳐 김순녀의 정선아리랑 전바탕> 발표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2005. 3





알고, 알리고, 사랑하여 세계화 하자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세계화추진위



강원도 소리를 ‘아라리’라고 하고 이를 모든 아리랑의 ‘모천(母川)의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표성을 ‘정선아리랑’에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정선을 ‘아리랑의 고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당위적으로, 상징적으로만 강조 했을 뿐, 왜 그런가를 말 하지 않았다. 보석을 품고만 있으면 그 것은 보석의 진가를 사장시키는 것일 뿐, 소중하기에 그랬겠지만, 보석은 그 빛을 발하면 발 할수록 귀해지지 그 빛이 날아가는 것은 아닐 터, 소아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은 아라리를, 정선아리랑을, 정선을 말하고 듣고자 한다. 그래서 서울지역에서 불려지는 강원도아리랑, 김옥심제정선아리랑, 한오백년이 그 한 갈래며 본조아리랑 까지도 정선아리랑에 연원이 닿아있음을 확인하여 알리려 한다. 이를 먼저 알고, 그리고 다시 알려야만, 아라리의, 정선아리랑의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리랑의 진정한 이해와 사랑은 모든 아리랑의 대표로 인식되어 있는 본조아리랑이 바로 정선아리랑에서 연유했음을 알고, 이를 설득시키지 않고는 그저 오지 정선의 아라리로만 남아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설득시켜야 할까? 그것은 우선 서울에서 불려지는 앞에 열거한 아리랑들과 정선아리랑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 정립시켜야 한다. 물론 음악적이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말이다.

이번의 발표회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퓨전아라리’ 이기도 하고, ‘크로스 오버아라리’ 이기도 하다. 정선출신의 정선아라리 대통령 수상자로 경기창 구사, 경기창을 구사하는 정선아라리 소리꾼, 거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김순녀는 그래서 주목된다.

부디 이번의 김순녀 버젼 <정선아리라랑 전 바탕> 발표회가 정선아리랑의 지평을 새롭게 여는, 김옥심으로 하여 존재와 맛이 알려졌다면, 이번에는 아리랑의 원류성이 보편화 되어 정선이 모든 아리랑을 품는 어머니로 재탄생 되게 하고, 나아가 대중화되고, 세계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20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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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정선아리랑 전 바탕>으로 다시 서렵니다



김순녀



잔설 속에 매화가 봄바람에 웃으며 그윽한 향기을 발하는 을유년 새봄.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울 계절에 정선아리랑 발표회를 갖게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허허로운 우주에 천지가 개벽하고 시간이 지남에 천지자연에는 소리가 있어 온갖 조화를 낳고 인간에게도 성음이 있음에 그 소리를 통해 각자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여 왔습니다

악지에서 이르기를 “음의 일어남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생겨난다”함에 정선아리랑은 노래라기 보다는 소리에 가깝고 읆조리며 부르는 구성지고 슬픈 노랫가락은 작은 감동으로 다가와 우리네 마음을 정화시켜주며 첩첩산중 힘든 생활 속에서도 조용히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소리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온 아라리야말로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순박한 우리의 것으로 지구촌 어느 곳에서라도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내 놓을 수있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이 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더욱 갈고 닦아 갈 것을 다짐하며 많은 성원과 질책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부모님, 신나라·국악신문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김뻑국에술단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많은 관심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겨레>퍼옴-김산의 미공개 ‘자술서’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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