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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미양(2005-10-26 21:36:29, Hit : 3003, Vote : 1717
  <돌아 온, 아주 특별한 아리랑>전

             ‘평화의 소리 아리랑’ 음반 제작 기념
             <돌아 온, 아주 특별한 아리랑>전


전시회 명칭- <돌아 온, 아주 특별한 아리랑>전
장소-인사동 네거리 아리랑명품관 2층 전시실
기간-2003. 8. 30 ~9. 9
주최-사) 한민족아리랑연합회·신나라레코드 공동
후원-명품요리<아리랑>·아리랑명품관 시공텍크

개최 취지
  이번 대구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이 입장하여 단가 <아리랑>이 연주되었고, 북한 선수단 써포터 <아리랑응원단>이 결성되고, 소리극<아리랑>이 공연되는 등 또 한번 아리랑의 함성이 우리 가슴을 벅차게 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여 ‘아리랑’의 역사성과 세계화 현상을 통해 아리랑이 ‘평화의 소리’임을 확인하고자 세계속의 아리랑 자료를 수집, 전시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세계에서 입수한 전시자료는 신나라레코드사와 5년 계획의 ‘305-아리랑 프로잭트’의 3년차 입수 자료로 9월 중 발매할 음반 <평화의 소리, 아리랑>에 수록할 예정이다.

전시 자료 해설

휴전회담과 아리랑
1950년 6월 25일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전쟁” (<한국은 세계의  잠을 깨웠다>의 저자 종군기자 히킨스의 표현)인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10시 12분, 3년 만에 ‘침묵의 11분간’의 조인식으로 “어떤 극적 요소도 없이, 화해의 정신도 없이” (당시를 취재한 조선일보 최병우기자의 표현)휴전이 되었다.
그런데 유엔군 대표 헤리슨 중장과 북측 대표 남 일장군이 각각 휴전조인 문서에 서명을 하고 악수조차도 없이 양쪽 문으로 나오자 동시에 유엔군 의장대와 북측 군악대에서 음악이 연주 되었다. 그 연주곡은 바로 양측 모두 아리랑이었다. 아! 얼마나 ‘극적인가! 얼마나 화해적인’ 사건인가! 그리고 의외의 아리랑 연주였던가!

2. 한국전쟁과 아리랑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쟁은 인적 교류의 장으로 문화인류학적으로는 문화의
  전파·확산의 결정적인 계기이다. 同族相殘인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1개
  국 유엔군 병사들의 참전으로 군사문화,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 분야의 교류는 뚜
  렷했다. 이것이 60년대부터의 우리나라에서 팝 음악이 유행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한데,  사실 전장에서는 노래도 무기일 수가 있다. 전의를 북돋우기 위해 군가는
  반드시 필요하고, 적군의 전의를 꺽기 위해 심리전을 위한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
  이 다. 그래서 장병들은 본국과 현지민에 의한 위문 공연에서 많은 노래를 접하
  였고 그 중에 전쟁국의 전통 민요나 국가와 같은 노래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
  어서 귀구하여서는 본국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한국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알게
  된 노래를 전파시켰다.  
  그리고 이중에 혹자는 아리랑을 자기화 하여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것은 일반적
  인 음악의 유통경로와는 다른 차원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위문 공연으로 방한한 인연으로 아리랑을 전파, 확산 시킨 인물과 작품은 여러
  나라에,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대표적인 것으로 미군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예를 들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아리랑을 째즈화 한 것이고
  또 하나는 영어 버전으로 부른 것이다. 전자는 위문 공연차 잠시 한국에 머물렀
  던 음악인에 의해서고, 또 하나는 병사로 참전, 후에 가수가 된 인물에 의해서다.

  1)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의 ‘AH DEE DONG BLUES’- 먼저 째즈 작품으로 째즈계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전해지는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의 ‘AH DEE DONG BLUES’이다. 이 작품이 탄생한데는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편곡자 오스카는 1951년 10월초 일본 오끼나와 기지의 미군 위문단 연주 색션맨 중 베이스 연주자로 피아노 연주자 챨스 밍거스와 함께 공연을 마치고 한국전 위문공연에 와 있던 다른 연예인들과 합류, 귀국을 위해 인천에 잠시 기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때 아주 우연히 우리 아리랑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인천에 설치된 임시 미군기지에 기착, 동료 음악인들과의 합류를 위해 체류 한 것은 약 1시간 정도였다. 이 때 오스카는 통역병의 안내를 받아 야전 화장실에서 일을 보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문밖에 있던 한국 통역병이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오스카는 순간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일 중에도 문을 열고 통역병에게 그 노래가 어떤 것이냐고 묻었다. 통역병은 그저 “아리랑으로 아무 때나 부르는 우리 민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아리랑을 부르는 것이 그야말로 다반사인 한국인으로서는 휘파람으로 부른 것이 특별할리 없어 다른 설명을 붙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오스카로서는 깊은 감흥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도 감수성이었겠지만 아리랑의 음악성, 거기에 전쟁 중인 나라의 스산한 모습에서 특별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귀국하여 그 기억을 되살려 째즈로 편곡을 하여 발표했다. 그는 그 통역병이 “아-리-랑”이라고 한 것을 “아- 디- 동”으로 잘못 듣고, 음가그대로 표기를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AH DEE DONG BLUES’이다. 피아노·드럼·첼로·그리고 그의 전공인 베이스, 이렇게 네 가지 악기로 짜여진 고전적인 째즈 작품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평가는 첫 번째 음반( ‘savoy'사의 <discovery>-이 앨범은 1946년부터 베스트만 수록한 것으로 알려진다.)에 연습곡(TAKE1~3) 3편 모두를 수록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선율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세이스가 아닌 첼로를 연주한 점 등이 그렇다.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오스카의 째즈계에서의 명성과 전쟁으로 이목을 받고 있는 나라 한국의 민요라는 점에서 널리 연주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스카는 불행하게도 1960년 연주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와의 사연이 함께 묻히게 되었다.
이후 ‘Korea'나 ’arirang'이란 표기가 없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전해지게 된 것은 멤버 중 챨스 밍거스가 자신의 앨범  <the young Rebel>에 재수록하고, 국제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와 교류를 가졌던 오사카 한 일본 베이스 연주자에 의해 존재가 알려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우리에게 전해지기로는 역시 째즈 뮤직션으로 오사카에서 활동하던 교표 2세 김병수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하여 30여년 지나서 우리에게 돌아온 아리랑이 이 ‘AH DEE DONG BLUES’다. 이는 아리랑이 세계적인 음악 장르인 째즈로의 확산이며, 세계화의 첫 모습이기도 하다.
  
2) Peter Seeger(핏 시게르)가 부른 ARIRANG- 영어 버전 ‘아리랑’으로 역시 의미 있는 것으로 미국인 가수 Peter Seeger(핏 시게르)가 부른 ARIRANG이다. 핏 시게르는 월남 전 반전 노래로 유명한 kingston trio가 부른 ‘꽃들은 어디로 갔는가?’(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의 작사·작곡자이다. 그래서 핏 시게르는 미국정부로부터 많은 제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리랑’을 매우 정확하게 인식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피터가 직접 아리랑에 관련하여  멘트를 했다. 주목할 만한 메세이지 인데, 그 내용은 오늘의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에 아리랑이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불러왔다고 하는데 일본에 식민지로 있던 시기에는 부르지 못하게 탄압을 받은 사실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노래를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들었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남북이 전쟁을 하고 있지만 분단국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것은 하나의 나라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은 전쟁을 하는 적대적인 관계지만 ‘아리랑’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으니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니라는 지론이다. 전쟁 중이었던 시기에, 참전 외국군이었지만 아리랑의 상징성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가수라는 직업의식에서 감지된 것이겠지만 아리랑의 음악성이나 전쟁 중에도 불려지는 아리랑의  연대정신과 공시(公示)매채로서의 기능이 있었기에 참전 용사들에게 까지 강렬하게 전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너무나 적확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료는 아리랑이 그저 어쪄다 외국인에 알려진 것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역사적인 계기에 전파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특별한 자료인 것이다. 이상에서 두 가지 자료를 살폈다. 모두 한국전쟁 기간에 ‘아리랑’을 아름다운 한국의 민요로 또한  ‘Korea'의 상징(symbol)으로 전해진 실상을 보여준 자료인 것이다.
다음 전시 쟈료들 역시 언어와 악기와 창법상의 특징을 보이며 아리랑이 얼마나 세계속에서 널리 불리고 있으며 거의 유일하게 세계 브랜드화 한 문화 컨텐츠임을 알려준다.

3. 세계속의 아리랑

음반자료
1) 칸타테 도미노의 성가 ‘lullabuy’-아리랑 곡조를 성가(聖歌)화 한 예이다.
2) 몽골 khuumil(흐미) 창법에 의한 아리랑-아리랑의 음악적 원초성 또는
    보편성을 확인시켜 준다.
3) 독일 이르고 트리오의 ARIRANG-전쟁과 분쟁 국가를 째즈로 표현했는데, 현악      기의 마찰음들로 한국 정황을 표현했다.
4) 북한 옥류금에 의한 <아리랑>-북한이 내세우는 성공한 개량악기 옥류금에
    의한 연주이다. 옥류금의 특징과 아리랑의 다양한 맛을 가장 폭넓게 표현한
    작품이다.(옥류금은 북한이 세계에 자랑하는 개량악기의 최정점으로 서양의
    피아노와 하프  그리고 우리의 현악기 가야금을 합성한 현악기이다. )
5) 영국 혼성 듀엩 후랭크 치킨의 ARIRANG-영어와 일어로 부른 듀엩고이다.         영국에서 취입된 것이다.
6) 일본 사미센 연주 아리랑-세계적인 맹인 연주가 치크 하찬의 작품이다. 맹인이     라 어린 시절 버림받아 살던 때 조선여인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그는 그녀가 해     방이 되자 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조선여인임을 알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     서 치크하찬은 늘 이런 사연을 말하고 아리랑을 연주한는 것으로 알려졌다.
7) 폴모리 악단의 앨범 ‘ARIRANG MIRACAL’의 수록곡-전 세계 60여개국의 광     고음악으로 쓰일 만큼 가장 유명한 작품. 1975년 12월 첫 방한 때 아리랑을 접     하고 이듬해인 1976년 발표, 우리를 놀라게 한 작품이다. ‘편곡의 마이더스’로 세     계적인 인물인 만큼 아리랑 역시 그럴 것이다라는 기대정도는 했으나 결과는 너     무나 놀라웠던 것이다. “경쾌한 현대조의 8박자와 유럽 스타일의 전통적인 기능     화성 결합”이 폴 모리아의 특징인데 바로 <아리랑>이 딱히 그대로 적용된 작품     이었다. 반응은 세계적이었다. 그래서 1976년 앨범의 타이틀이 이 되었다. 이로     서 을 그의 대표작인 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으로 그야말로 아리랑을 세계화      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숨겨진 사연이 하나 있다. 그것은 1976년 이 음반이 필립스    레코드사에서 첫 발매되었을 때는  곡목이 <이스턴 러브 송>이었다는 것인데 이    미 아리랑을 알고 있던 핼 와튼이란 인사가 한 교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     교포는 다시 레코드사와 폴 모리아에게 <한국의 민요 아리랑>으로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고유 명칭으로 바로 잡게 된 것이다. 만일 처음    에 <아리랑>으로 바로 잡지 않았다면 이 곡은 한국 고유의 민요가 아니라 마치    국적 없는 곡이거나 또 아니면 폴 모리아가 작곡한 작품으로 고착될 뻔 했던 것    이다. 그러니까 편곡자와 악단을 초청하여 계기를 만들고, 곡목을 바로잡아 대표    적인 민요 아리랑의 아름다운 선율을 우리 것으로 되찾은 것이다.

8) 이태리 소녀의 이태리어 ‘아리랑’-검은고양이 네로‘로 유명한 제끼도르 가요제 1  
    등 수상곡이다.

문헌 자료

1. 중공군 <항미원조수첩>
2) HARVARD-RADCLIFFE CHORAL MUSIC, ‘ARIRANG’- 세계적인 악보 전문     출판사에서 1960년  edited by ELLIOT FORBOS가 펴낸 악보.
3)《KOREA AND HER NEIGHBOURS》-아사벨라 버드 비숖 여사가 1894년과      1897년 네 차례 한국여행 후 쓴 여행기. 1897년 발행한 이 책에서 비숖은          “한국인은 음식에서 밥을 빼 놓을 수 없듯이 음악에서 아리랑은 밥과 같다.”
4) 韓半島》-1883년 일본인 외교관 노부오 준뻬이(信夫淳平)가 조선 인천의 <인천     이사청> 발령을 받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들었다는 아리랑을 기록한 《仁川港25     年史》이다. 이 책에는 “ 페허 같은 갈대 숲 사이로 슬픈 노래가 들려오는데 내     게는 그것은 망국의 비가로 들렸다. 그 노래가 아리랑 이다.”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1901년에 낸 란 책 속에 기생들이 부르는      노래로  소개하며 재 수록 되었다.  이 《韓半島》는 한국에 대한 일본 내에서     의 관심이 고조되자 마치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였다.  
  

5) PASSING OF KOREA-미국인 H`B 헐버트가 장로교 선교사로 들어와 고종의     정치 고문역을 하던 당시인 1896년 선교잡지 《Korea Repository》에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 악보를 채보,  발표한 것이다. .          
6)《이방민족의 민속연구》-1925년 독일 민족민소학회가 발행한 《이방민족의 민      속연구》이다. 이 책은 안드레아스 교수 등 저명한 민속학자들이 당시의 국립      형무소에 수감된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타민족의 민속을 조사한 보고서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백계군에 용병으로       참 전했다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 안 슈테판이라는 조선인 외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조사 부분에는 놀랍게도 각각 ‘하리랑’·‘아리랑가’·‘아리랑     쓰리랑’으로 명명된 아리랑 세편이 담겨 있다. 구한말 조선 유민들의 실상의        일면인 것이다.
7) THE HISTORY OF MUSIC-1910년 미국에서 발행된 음악사전, 여기에 동양권     은 물론 전세계 대표적인 민족의 노래를 수록했는데 놀랍게도 아리랑 가사와 그     상황이 수록되었다. 필자는 알렌으로, 헐버트의 기록을 인용 하고 있다. 이는 헐     버트의 공헌을 확인 시켜주는 자료이다.
8) KOREA SINGS FORK AND POPULAR MUSIC AND LYRICS-하태흥이 번역    한 것으로 60년대 해외에 아리랑을 전파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한 자료집이다.      1960년 연세대학교출판부 발행.

                기타 20여점, 총 40점 해설 생략   -끝-





아리랑 박물관 자료(일부)
참고사항

1. 아리랑의 개념(명칭 중심)
우리는 여러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언필칭 ‘50여 종에 3천여 수’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지역에, 그 지역 이름을 단 것(진도·밀양 등)이나, 기능에 따라 부르는 것(뗏목아리랑)이나, 후렴의 음가를 명칭으로 한 것(‘아라성’)이나, 음악적 특성을 이름에 얹어 부르는 것(긴아리랑·엮음아라리) 등, 특히 조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지어 부르는 것(중국 ‘기쁨의아리랑’, 일본 ‘나의아리랑’, 미국 ‘민들레아리랑’)이나 가곡(조수미의 ‘아리 아리랑’, 최영섭작곡 ‘의병아리랑’)이나 가요(조용필의 ‘희망의아리랑’, 한 돌의 ‘홀로아리랑’) 등을 포함한 것이다.
소품자료-
구형 라디오·녹음기 30여개
團成社(영화 <아리랑>이 개봉되고 재상영이 있었던 극장으로 2002년 10월 해채 될 때 기초에 있던 벽돌) 기초 벽돌 3장
국내외 취재 사진(필름) 53백 컷

민중사 자료-
제문-20여점
한글 간찰-50여통
노비 문서- 5종
일기-10여종
6,25일기(필사 원본)- 10여종
연애편지- 20여통
한국전쟁 관련 자료-50여점

참고자료
관련기사 스크랩 북-10여권
<민속조사보고서>(정신문화연구원)-30권
<민속대관>-10권
각 군지-30여권
각 군 발행 민요집-30여종
<민속학>-30여권
<민요논총>-10권
기타 참고도서 3천여권

음악자료
가사작품 <한양가> 외-20여점
시조-10여점
가요-

나운규 전시자료-










공지   >제 1 회 DMZ 아리랑 평화 페스티벌

 기미양  2006/06/01 2379 308
4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 개봉 80주년 기념 토론회  기미양 2006/09/25 2617 271
3   김연갑선생의 출판기념회  기미양 2006/06/01 2216 290
   <돌아 온, 아주 특별한 아리랑>전  기미양 2005/10/26 3003 1717
1   김연갑선생 홈페이지 운영자입니다  기미양 2005/10/24 2501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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