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신문기사



  송영수(2011-01-16 20:16:51, Hit : 595, Vote : 106
 4.jpg (24.0 KB), Download : 156
 5.jpg (58.9 KB), Download : 13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2764
 [한겨례21] 아리랑에 얽힌 오해와 진실 “더 이상 아리랑치기는 없다” 2003.09.17





지난 월드컵 때 윤도현밴드를 따라 고래고래 아리랑을 불러댔던 당신.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 하지만 아리랑에 얽힌 오해는 만만치 않다.

먼저, 우리가 지금 부르는 아리랑은 세종대왕 때도 불리던 오~오랜 노래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땡! ‘윤밴’이 부르던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O.S.T로 처음 사용된 곡. “쓸쓸한 초막에 날은 저물고 광활한 저녁바람 소리 없이 불어올 때” 주인공 영진이가 일제의 앞잡이를 낫으로 찌른 죄로 순경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서글픈 풍금 반주와 함께 처량히 흘러나오는 노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청천하늘에 별도 많고 세상에 살이에 한도 많다.”

나운규의 영화가 단성사 개봉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아리랑 신드롬을 일으키자, 이 영화의 테마곡인 <아리랑>은 민족의 입에 굳어진 노래가 됐다. 이 아리랑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온 나라에 유행했던 까닭이다. ‘본조 아리랑’은 53년 휴전 직후 판문점 포로교환 현장에서도 연주됐고, 89년 남북 체육회담에서도 남북한 공식 통일 노래로 지정됐다.

그렇다면 ‘본조 아리랑’이 외국인에게 가장 처음으로 알려진 아리랑일까? 그렇지 않다. 고종의 정치 자문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H. B. 헐버트는 1896년 처음으로 아리랑 악보를 채보해 기록을 남겼다. 이 아리랑을 나운규의 아리랑과 비교해 ‘구조 아리랑’이라고 일컫는다. 헐버트는 아리랑을 한국인의 ‘포크송’으로 소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은 노래다. 조선인들은 서정적이며 교훈적이고 서사적이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즉흥곡의 명수인 조선인에 의해 수없이 즉흥곡으로 변주된다. 하지만 그 후렴은 변하지 않고 불려진다.”




그럼 ‘구조 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의 ‘원조’인가? 역시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리랑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원도 지역에서 불리던 아리랑으로 통한다고 본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가사 수만 해도 1300가지가 넘는 정선 아리랑에서 아리랑이 출발했다”고 말한다. 강원도 산골에서 불리던 노래가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은 1867년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면서부터였다. 강원도 뗏목군을 포함해 온 나라 목수들이 서울로 불려올려져 강제 부역에 종사했다. 대원군은 이들이 혹 난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해 밤마다 잔치를 베풀었는데 당시 전국의 내로라 하는 연예집단이 대거 동원되었고, 이때 정선아리랑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충청•경상•전라도 각 지역의 일꾼들 모두 자기 고장 식대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아리랑이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봉화아리랑 등 갖가지 아리랑이 온 나라에 불린 것은 결국 19세기 말부터였으니 아리랑의 전통은 불과 1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한민족 역사의 풍파 속에서 단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늦은 밤 취객의 호주머니를 터는 범죄 행위를 ‘아리랑치기’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자. 경찰은 국악협회 등의 제안을 받아들여 앞으로 ‘아리랑치기’ 대신 ‘부축빼기’를 공식 용어로 쓰기로 했다. ‘부축빼기’는 범인들이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진 행인을 부축해주는 척하면서 금품을 노리는 수법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 [1] 한국전쟁 때 유엔군을 위해 발간한 한국 홍보책자. 아리랑 악보가 실렸다. [2] 아리랑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는 펄 벅의 <갈대는 바람에 나부껴도> 초판본 표지. [3]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 가수 피트 시거가 영어로 부른 아리랑이 담긴 1970년대 음반.





48   [연합뉴스] "화제의 책 팔도 아리랑 기행외" 1994.01.12  송영수 2011/01/17 577 99
47   [YTN뉴스] "태극기의 어제와 내일" 2010.11.17  송영수 2011/01/17 558 105
46   [아시아투데이] "태극기의 도시 구리시, 태극기 강연회 개최" 2010.11.15  송영수 2011/01/17 504 82
45   [동아일보] "한반도기 적절한지부터 따져봐야" 2005.11.21  송영수 2011/01/17 520 103
44   [동아일보] “3·1만세 행진곡은 ‘아리랑 노가바’였다” 2009.02.28  송영수 2011/01/17 542 111
43   [국민일보] "음악가 성향놓고 애국가평가 부적절… 국가상징연구회 김연갑 위원장" 2006.04.07  송영수 2011/01/17 640 100
42   [오마이뉴스] "우리 겨레, 노래로도 항일했다" 2006.03.02  송영수 2011/01/17 531 93
41   [동아일보] "아리랑 뿌리는 고려말 이색의 한시" 2006.05.25  송영수 2011/01/17 548 112
40   [동아일보] "구한말 ‘가사체 아리랑’ 발견" 2005.09.17  송영수 2011/01/17 557 89
39   [연합뉴스] "아리랑' 찾아 일시귀국 이정면 박사" 2005.06.15  송영수 2011/01/16 487 119
38   [연합뉴스] "영화 '아리랑'이 녹슬고 있다" 2005.02.17  송영수 2011/01/16 515 110
  [한겨례21] 아리랑에 얽힌 오해와 진실 “더 이상 아리랑치기는 없다” 2003.09.17  송영수 2011/01/16 595 106
36   [한겨례21] "아리랑의 변신, 장단에서 선율로" 2003.09.17  송영수 2011/01/16 574 96
35   [한겨례21] "김산을 인터넷으로 만난다" 2002.12.16  송영수 2011/01/16 602 89
34   [kbs] 2010.09.03 최초 발굴 조선정벌가 ‘침략 야욕’ 노래로 표현  기미양 2010/11/26 592 107
33   [kbs] 2010.08.29 문화 말살정책 극복하고 ‘한류 돌풍’  기미양 2010/11/26 616 119
32   [kbs] 2010.08.18 일본 최초의 아리랑 음반 발굴  기미양 2010/11/26 653 127
31   [kbs] 2008.10.02 미국 군가로 불린 우리의 ‘아리랑’  기미양 2010/11/26 707 118
30   [kbs] 2007.10.27 영화 기념우표 ‘아리랑’ 오류 논란  기미양 2010/11/26 627 117
29   [kbs] 2007.08.14 오늘에 되살린 그날의 환희  기미양 2010/11/26 611 126

[1][2] 3 [4][5]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