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신문기사



  송영수(2011-01-17 16:25:30, Hit : 551, Vote : 112
 13.jpg (55.6 KB), Download : 116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2280154
 [동아일보] “3·1만세 행진곡은 ‘아리랑 노가바’였다” 2009.02.28


광복군 군가집에 아리랑 수록
우리의 전통민요인 ‘아리랑’은 3·1운동을 지탱하는 동력이자 독립군의 활동을 지원하는 근간이었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협회 상임이사가 27일 공개한 ‘광복군 군가집’에는 아리랑이 군가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다.


국모의 흉계 시해 항일을 낳고 / 일제의 기습합방 항일을 낳네♬

1919년 3월 1일부터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던 만세운동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는 무엇일까.

바로 ‘아리랑’이다.

30년 동안 아리랑을 연구해 온 김연갑 한민족아리랑협회 상임이사는 3·1운동 90주년을 앞둔 27일 ‘3·1운동 당시 아리랑의 역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김 이사는 “전국 곳곳의 만세운동을 기록한 자료를 종합해 보면 현장에서 주로 불렸던 노래는 애국가, 찬송가, 아리랑이었다”며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는 학생뿐 아니라 배우지 못한 일반 국민도 쉽게 부를 수 있는 아리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총독부가 3·1운동 당시 연행했던 사람들을 조사해 기록한 취조문서에 따르면 당시 집회는 집결-애국가 제창-독립선언서 낭독-시가행진-번화가 집결-연설-노래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집회는 항상 일반 시민과 학생들의 아리랑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김 이사는 “당시 지역마다 각기 다른 가사의 아리랑이 존재했다”며 “각 지역의 3·1운동 상황은 아리랑의 가사로 전국에 전파돼 다른 지역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모의 흉계 시해 항일을 낳고/일제의 기습합방 항일을 낳았다/삼순(三旬)에 구식(九食)하여 아사(餓死)를 낳고/우리네 순절함이 절신을 낳네.’(충남 대전)

‘논둑아 밭둑아 날 살리라/이 불콩이 날 죽인다….”(경남)

강원 춘천시에서는 ‘춘천 의병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독립군들은 아리랑의 선율에 가사를 바꿔 암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독립군들 사이에서 일본군의 수를 전달할 때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가사를 일본군의 수에 따라 ‘이십 리도 못 가서’ 또는 ‘삼십 리도 못 가서’라는 식으로 아리랑을 불렀다는 것.

이렇게 독립군들 사이에서 불렸던 아리랑은 1941년 임시정부가 정식으로 발행한 ‘광복군 군가집’에도 수록됐다.

김 이사는 “제대로 된 언론도 없던 시절 전국에 3·1운동의 물결을 몇 달 동안 일으켰던 동력 가운데 하나는 입에서 입을 타고 퍼져나간 아리랑이었다”며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아리랑은 훗날 독립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48   [연합뉴스] "화제의 책 팔도 아리랑 기행외" 1994.01.12  송영수 2011/01/17 582 100
47   [YTN뉴스] "태극기의 어제와 내일" 2010.11.17  송영수 2011/01/17 563 106
46   [아시아투데이] "태극기의 도시 구리시, 태극기 강연회 개최" 2010.11.15  송영수 2011/01/17 514 83
45   [동아일보] "한반도기 적절한지부터 따져봐야" 2005.11.21  송영수 2011/01/17 527 104
  [동아일보] “3·1만세 행진곡은 ‘아리랑 노가바’였다” 2009.02.28  송영수 2011/01/17 551 112
43   [국민일보] "음악가 성향놓고 애국가평가 부적절… 국가상징연구회 김연갑 위원장" 2006.04.07  송영수 2011/01/17 645 101
42   [오마이뉴스] "우리 겨레, 노래로도 항일했다" 2006.03.02  송영수 2011/01/17 540 94
41   [동아일보] "아리랑 뿌리는 고려말 이색의 한시" 2006.05.25  송영수 2011/01/17 553 113
40   [동아일보] "구한말 ‘가사체 아리랑’ 발견" 2005.09.17  송영수 2011/01/17 564 89
39   [연합뉴스] "아리랑' 찾아 일시귀국 이정면 박사" 2005.06.15  송영수 2011/01/16 496 120
38   [연합뉴스] "영화 '아리랑'이 녹슬고 있다" 2005.02.17  송영수 2011/01/16 523 110
37   [한겨례21] 아리랑에 얽힌 오해와 진실 “더 이상 아리랑치기는 없다” 2003.09.17  송영수 2011/01/16 598 107
36   [한겨례21] "아리랑의 변신, 장단에서 선율로" 2003.09.17  송영수 2011/01/16 579 97
35   [한겨례21] "김산을 인터넷으로 만난다" 2002.12.16  송영수 2011/01/16 612 89
34   [kbs] 2010.09.03 최초 발굴 조선정벌가 ‘침략 야욕’ 노래로 표현  기미양 2010/11/26 600 108
33   [kbs] 2010.08.29 문화 말살정책 극복하고 ‘한류 돌풍’  기미양 2010/11/26 623 119
32   [kbs] 2010.08.18 일본 최초의 아리랑 음반 발굴  기미양 2010/11/26 659 127
31   [kbs] 2008.10.02 미국 군가로 불린 우리의 ‘아리랑’  기미양 2010/11/26 715 120
30   [kbs] 2007.10.27 영화 기념우표 ‘아리랑’ 오류 논란  기미양 2010/11/26 635 118
29   [kbs] 2007.08.14 오늘에 되살린 그날의 환희  기미양 2010/11/26 618 127

[1][2] 3 [4][5]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