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김연갑의 나라사랑 애국가연구

'애국가' 찬가


'애국가'!

어제는 열강으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염원하며
오늘은 분단조국의 통일을 손꼽으며
다시 내일은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하며 부르고 불러야 할 노래.

백 여년 전 풍전등화의 조국에 바친 지사들의 혈서와 민중들의 지지로 갈고 닦여
수난사 의 현장에서 불려온 노래.

하여 '애국가'는 백년 전의 노래 아닌 백년간이나 불려오는 노래이니
어떤 노래가 있어 '애국가'의 역사성과 민중성을 대신 할 수 있으며
그 누가 있어 역사의 혈흔 밴 유산을 버린다 하겠는가.


'애국가'여!

이땅에
이 민족에
다시 내일에까지 불려질지이니
그대는 '역사의노래'이고 '노래의역사'이니라.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으며
김 연 갑 씀



2백 번째로 '韓國幻想曲'을 들으며


왜 수많은 소리와 노래 중에서 굳이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가 되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역사의 노래 ' 애국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천년 전부터 불려 온 '아리랑'의 수수께끼를 백년 전 부터 불려져 온 '애국가'에서 풀 수 있을까?
이제 2백 번째 '韓國幻想曲'을 들으며 「國歌 '愛國歌 硏究'」의 序文을 쓴다.
1992년 11월 16일

러시아 페테르스 부르크 이름 모를 거리,
일단의 집시 악사들을 만났다.
악사 중 한 명이 소리 쳤다.
"브이 카레이스키? 유지나?-세비리아 카레스키?"
우리의 대답도 필요없이 그들은 손짓으로 우릴 불러 세웠다. 순간, 드럼 스틱이 지휘봉이 되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 '愛國歌', 우리의 國歌'愛國歌'가 러시아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아주 색다른 4인조 금관악기만의 '愛國歌' 연주였다.
그날, 거리에서 그들과의 遭遇는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韓國幻想曲' 錄畵를 위해 레닌그라드 심포니 메인홀을 향해 가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그 感動, 그리고 그날의 드미드리에프 지휘 '한국환상곡'과 '아리랑고개' 初演의 感動은 긴, 아주 긴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그 여운이 오늘 이 글을 쓰게 했다.

그랬다.
오랫동안 '韓國幻想曲'과 '愛國歌'만을 생각했다.
<나라사랑 애국가>('86 KBS-2R)·<3.1절 특집 '애국가'>
('87 KBS 1TV)·<3.1절 특집 태극기>
('90 MBC TV)·<탄생 대한민국 제3부.나라노래 '애국가'>
('90 KBS-1R)·<한국의소리 제5부'한국환상곡 그리고 애국가'>
('93 KBS-1R.사회교육방송)
그리고 <국가.애국가의 歷史性과 正統性연구>
('93 국가상징연구회 창립세미나 발표) 등의 참여가 이 책을 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95년 4월 내내 일본 전역을 헤맸다.
MBC TV와의 '일본 속의 아리랑 찾기'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일본 곳곳에서 국가 '기미가요'의 부활을 확인했다. 거기에다 관동대지진 때 '기미가요'를 부르지 못하면 朝鮮人으로 지목, 참살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미가요'의 부활은 곧 日本 軍國主義의 부활임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10월, 「미친 韓日關係史」 공동 집필을 위해 만난 스즈키 다쿠마(鈴木琢磨: 산데이마이니치신문 기자)와 金京媛(在日예술인) 과의 만남에서 '기미가요'· 韓國 '愛國歌'·北韓'愛國歌'에 대한 열띤 토론도 있었다.
그리고 1백여년 전 '大韓帝國 愛國歌' 作曲과 '기미가요'를 編曲한 후란츠 에케르트의 기묘한 生涯를 얘기하면서 「미친 韓日關係史」 속의 '잃어버린 國歌'에 대한 토론과 추모사업도 계획했다.

설레이는 일을 하고 싶다.

統一祖國 國歌!
統一祖國 國歌論으로 激論을 벌이고 싶다. 누군가와, 빨리.

1994년과 1995년 내내 신열과 좌절 속에서 살았다. 횡성의 정주한 선생님은 산삼을 구해 주셨고, 서지학자 李鍾學선생님, (주)신우전자 김군배사장님, <한국문화정보> 金煉吉사장님, 종로문화원 반재식원장님, 그리고 KBS 이상여 PD께 그동안의 충고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동료들 서주원, 정미정, 백미정, 김경순, 권수향씨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1996. 4.26.

여의도에서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