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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아리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참석자 :
  • 나운영(목원대교수, 작곡가)
  • 고 은(시인)
  • 박재삼(시인)
  • 김연길(한국출판정보센터 대표)
  • 이양상(형대문예사 대표)

    사 회 : 김연갑
    (한국출판정보센터 기획부장)

    일 시 : 1886. 6. 18(水) 오후6시

    장 소 : 서울역 프라자 그릴







  • 이양상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선생님들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아리랑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들이기에 더욱 이 자리가 귀하게 여겨지는군요.
    사실은 저도 이제 아리랑의 맛을 아련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아리랑 자료집을 출판하는 한 출판인이기에 앞서 아리랑의 참 맛을 느끼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동안 7년여 동안 50여종, 2,000여 수를 수집 정리한 김연갑씨의 수고가 정말 값지게 되도록 또 오늘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한 많은 독자 들에게 아리랑의 참 맛이 전달될 수 있도록 귀한 말씀 많이 나눠 주시길 바랍니다.


    김연갑
    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현대문예사」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리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오늘 정선의 아리랑을 연구하시는 부군수님 또 서강대학교 김열규교수님, 신경림 선생님도 자리를 해 주시기로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셨습니다. 대신 다섯분께서 더 많은 말씀 부탁드립니 다. 그러면 먼저 아리랑은 과연 왜 우리에게 불려지는가 하는 것부터…


    고 은
    내 생각은 그래요. 찌들었던 우리 조상들의 가장 적나라한 흔적, 이게 민요, 특히 아리랑 아닐까요? 이건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하는 말이 아니니까 정확하지는 않겠지요?
    제주도에 민요가 많다든가 강원도 산골에, 또 과거 유배지였던 진도에 노래가 많다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김연길
    네, 조상들의 흔적이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지난해 일본에 가서 느낀 것인데 교포들 사이엔 오히려 여기 에 사는 우리보다 사투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분이 있었고 또 아리랑을 정말 옛날 맛나게 부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 분의 이마에 난 주름살은 마치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아로 새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양상
    최근 신문에 소련·중공지역의 교포들에게 아리랑이 불려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고 은
    그게 바로 그만큼 고된 삶이었음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아리랑이야말로 참 아리랑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박재삼
    아리랑은 애국가보다 더 애국적인 노래고 또 더 많이 불려지지 않습니까? 내가 오래 전에 대한일보사에 기자로 재직할 때 정선엘 갔었는데 그때, 지금은 없어졌겠습니다만 장터 주막 주모가 정선아라리를 기가 막히게 부르더군요.
    그 때 그 주모 얘기가 아는 소리는 이 아라리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자기 의 신세를 아라리 가사에 넣어 부르기 때문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아리랑은 개인의 심사를 끼워 부르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연갑
    그렇습니다. 자신의 신세타령 뿐만 아니라 남의 얘기도 싣고 다니는 바람 같아요. 그래서 어떤 분의 글에서 「아리랑은 지하 방송」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아리랑에 대한 매력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 습니다.
    나교수님께서는 과거, 특히 제주도 민요에 대해서 연구하신 적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 민요 중에서도 아리 랑의 특별한 맛이 어떤 것인지,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고 은
    예, 그렇습니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는 음악적인 면에서 비중이 크다고 봅니다.
    나 같은 사람이야 글로만 표현할 뿐인데 나교수님께서 많은 부분을 말씀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나운영
    예, 사실은 관심을 갖지만 어려운 작업입니다. 특히 아리랑이라고 하는 민요의 음고의 변천도 불분명한 형편이라서… 결론이 되겠습니다만은 지금 서울 또는 경기아리랑이라고 하는 민요는 강원도 지역의 아리랑권이 변조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이러한 분포와 현황에 관해서 최근엔 정신문화원 같은 곳에서 작업이 진행중인 것 같더군요.


    김연갑
    그럼 준비된 식사를 하면서 각 지방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음악-


    식사 도중 울릉도아리랑·밀양아리랑·문자보급가·종두선전가·HULBERT가 채보한 아리랑·강원도아리랑·엮음아리랑· 홍희진 아리랑을 들었다.


    고 은
    마지막 들은 노래가 우리나라 어린이입니까? TV에서 본 것 같은데…


    김연갑
    예, 우리나라 어린이입니다. 저 노래를 부를 때에는 세 살 짜리 였는데 이태리에서는 과거「검은고양이 네로」 라는 노래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운영
    전연 우리나라 맛이 아닌데요?


    고 은
    울릉도아리랑이라는 것이 있어요?


    김연갑
    예, 지난해 KBS 취재팀과 함께 저희가 발굴해 낸 노래죠, 나교수님 들어보니까 어떠세요?


    나운영
    역시 기본은 강원도아리랑이군요. 그런데 엮음이 자주 나오는 것이 아주 특이하군요. 이후에 자료를 좀 주면 구체적인 특징을 규명해 드리겠습니다만 얼핏 듣기로는 역시 강원도아리랑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고 은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가사내용은 뭐예요?


    김연갑
    제가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놀란 것이 바로 노랫말인데요. 아주 여성적입니다. 또 울릉도라는 섬을 정착지와 벗어나려고 하는, 고립된 섬으로 생각하고 있는 서민적인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향나무가 있는 울릉도는 꿈의 나라」라고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울릉도 고개는 자물통 고개」라고 표현을 한 예가 그렇습니 다. 또한 가락에 있어서도 마치 파도치듯 평조와 엮음을 번갈아 가며 부르는 것도 큰 특징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최근의 한 석사논문에 의하면 <엮음>의 발생 원인은 해방, 이탈을 갈구하는 현상의 표현이라고 했는데, 그 지론을 울릉도아리랑에 대응시킨다면 탁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양상
    가사수는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김연갑
    예, 제보해 준 분이 62세의 고령인 탓으로 기억하는 노랫말이 그렇게 밖에 안 돼요. 그럼 문제가 된 김에 우선 아리랑의 종류는 얼마나 되고,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느냐부터 얘기를 나누기로 하죠. 저희들 자료에 의하면 나교수님 께서 청주방송국 합창단용 악보집에 진도아리랑을 편곡 한 것이 있더군요. 먼저 말씀 좀 해주시죠.


    나운영
    어제 집에 있는 옛날 축음기판을 뒤져서 조사를 해봤는데, 이 축음기판에는 강원도아리랑과 그냥「아리랑」만 보이는데 그것들이 모두 지금의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을 부른 것이었더군요. 그러니까 1926년 이전에는 강원도아 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정선아리랑이 포함되어 불려졌고, 나운규 아리랑영화가 개봉된 이후인 1927년부터 경기아리랑·긴아 리랑·해주아리랑이 나오더군요.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은 40년대에 와서 나타나더군. 특이한 것은 강원도아리랑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이 황해도아리랑입니다. '후렴'이「아령, 아령 아라리요」로 된 것도 특이 하구요, 그리고 이상준 선생 의 속곡집 上권이 1914년에 나왔고 신찬속곡집이 1921년, 세 번째 나온 것이 조선속곡집 下卷입니다. 그게 1929년인데 그 때 비로소 본조아리랑이 나왔습니다.


    김연갑
    나운규 영화가 개봉된 후 일이죠.


    나운영
    그렇게 유명했으면 처음부터 나왔을 텐데 1914년, 1921년에는 보이지 않다가 1929년의 증보판에 실렸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연갑
    이번 작업에 있어서 나교수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S·P레코드를 참고한 것은 저희들에게 결정적인 자료였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늘 애석해 했던 것이 악보 또는 원주민의 육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현재 우리가 전통민요로 알고 있는 소위「서울아리랑」또는「본조아리랑」또는「경기아리랑」이라고 하는 아리랑이 나운규의 영화 주제곡에서 비롯되었 다는 사실을 확인케 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문헌상으로 볼 때도 1926년 이전에 나온 이상준의 속곡집을 비롯한 당시 민 요집에서 지금 아리랑의 곡이나 가사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고 은
    나 역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뭐냐하면 '나운규의 아리랑 노래가 오히려 아리랑의 맛을 망쳐버렸다'라는 생각 을 해왔어요. 확실히 다른 아리랑보다 '잡가'라고 할까요, 신민요라고 할까요, 그런 맛이 나는 게 서울 아리랑 같아요


    박재삼
    민요 연구에 있어서 속가(俗歌)·신민요(新民謠)·토속민요(土俗民謠)·잡가(雜歌)등의 용어상의 문제입니다만, 여하튼 「본조아리랑」은 말하자면 신민요라고 보아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럼, 교수님, 이 아리랑과 다른 아리랑과의 차이라면….


    나운영
    비교 자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의 관계와 같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춘천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울릉도아리랑 등은 음악상의 어떤 묶음이 형성되고 긴 아리, 자진 아리도 역시 한 테두리에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도, 밀양과 서울 본조아리랑의 관계는 후렴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음악적으로 묶기가 어렵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본조아리랑의 관계는 후렴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는 것 이외에 음악적으로 묶기가 어렵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본조아리랑의 개념 자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됩 니다.


    고 은
    그럼 진도, 밀양, 정선 등의 아리랑은 독자적인 발생으로 밖에 볼 수 없겠는데…


    김연갑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뭐냐하면 제주 오돌또기와 경기 오독떼기와 강릉 오독떼기와의 관계, 다시 말해서 곡조도 노랫말도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제목으로 보는 것 그러니까 어떤 한 뿌리에서 출발한 노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또 공간적으로 전달자에 의해서 변형이 되다보니 전혀 별개의 노래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재삼
    제 생각은 어느 노래가 좋으니까 이미 있던 노래에 좋은 노래의 후렴만 따왔다거나 제목만 따왔다고 볼 수 없을까요.
    예를 들면 기능도 노래도 자연 다르지만 후렴이 같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얼럴럴 상사듸야' 같은 것처럼 말이죠


    나운영
    제주 오돌또기는 육지에서 섬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곡조 자체로 봐서는요 오돌또기는 그게 신민요입니다.


    김연갑
    어떻든 오돌또기도 아리랑만큼 연구 대상이 되는 민요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의 김영동 교수의 글을 보니까 오돌또기에 관한 개별적인 연구논문 한편이 없다고 지적했더군요.


    김연길
    그러면 곡이 다르고 노랫말이 다른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아리랑은 몇 종류나 되는지요.


    이양상
    이번 자료집에 의하면 문헌상에만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 악보가 있는 것, 그리고 현지에서 확인된 것만을 대상으로 할 때 약 25가지에 1500여수, 문헌상에만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는 것은 30여종에 600여수입니다. 예를 들면 공주, 순창, 구례, 안주아리랑 같은 것들이죠.


    김연갑
    종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확인할 수 없는 것, 중공교민들이나 그 이외의 교포들의 아리랑 등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나리라고 봅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보고 특히 북한지역의 민속이 연구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아리랑은 어떤 때에 불리워지는 가에 대한 얘기, 즉 아리랑의 기능에 대해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고 은
    내 시중에 노수복 할머니에 대한 시가 있습니다.
    그 분이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니 더 이상 아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나야 어떤 이론도 없고 체계도 없지만 내 감정만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실 자체에 아리랑의 기능, 정의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양상
    나도 신문을 통해 노수복할머니가 정신대에 끌려가 겪었던 처절한 삶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스러운 삶을 산 분이 늘 부르는 노래가 하필 아리랑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고 은
    그러니까 이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에 숨어있고 한국인이 가 있는 곳은 세계 어느 땅덩어리든 아리랑이 있을 것입니다.
    추풍령에도 아리랑이 있고, 영동지방에도 아리랑이 있고, 태백산 골짜기에도 아리랑이 숨어있는데 지금은 진도, 밀양, 강원도 이런 곳의 아리랑만 떠올랐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소외되고 핍박을 받은 땅입니까, 또 볼가강에도 노예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또 흑인들의 영가가 그 질곡에서 나온 게 아닙니까, 뭐 지금 얘기한 것은 시적 추정이라고 할까? 저는 그냥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김연갑
    민요라는게 결국 민중의 소리이기 때문에…


    고 은
    제주도의 민요가 많다고 하지만 그것이 신나게 노느라고 만들어진게 아니잖습니까?


    김연갑
    고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리랑의 분포는 문헌상이지만 전국적으로 보여지는게 사실입니다.
    특히 일제시대 때 저 항의식을 담은 노랫말이 많은 것을 보면 역시 어려운 처지에서 불려진 것 같습니다.


    김연길
    여주·이천쪽에서는 아라성이 모심는 노래로 불려진다고 했죠?


    이양상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강릉아라리나 이 여주·이천, 또 중원지방의 아라성은 노동요가 되지요.
    노랫말은 전연 다르지 만 곡조상으로 볼 때는 같은 메나리권이죠.


    박재삼
    그럼 아까 들은 뗏목아리랑, 울릉도아리랑 지금 이 아라성은 우리가 생각 못했던 아리랑의 특이한 기능이겠군요.


    김연갑
    제가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커다란 성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아리랑의 여러 기능이었습니다.
    결국 아리랑 은 다른 기능요처럼 국한된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닌 민요가 갖는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896년 Hulbert의 기록 에 의하면 아리랑은 일종의 풍어제때 불려진 의식요였고, 그리고 1937년에 정선어러리 가사를 기록한 동아일보에 의하면 정 선어러리는 화전민들의 노래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보더라도 아리랑이 여러 기능을 가지고 불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이러한 기능연구의 부족이 아리랑을 마치 술 한잔 먹고 부르는 유희요로만 몰아부치는 결과를 낳게 했고 그래서 일부 민 요학자들까지도 아리랑의 가치를 오히려 다른 민요보다 낮게 보는 풍조를 낳게 했습니다.


    박재삼
    다른 기능으로 불리워지는 예도 있습니까.


    이양상
    좀더 신중을 기해야 되겠습니다만 '어허 아리랑 달구야'를 후렴으로 부르는 달구질노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묘터 를 다지며 부르는 노래죠. 또 신안쪽에서 채집된 상여소리에 이와 비슷한 후렴을 쓰는 상여소리도 채집되어 있습니다.


    김연갑
    물론 논문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저는 아리랑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인의 노래 라고 볼 때 그때의 기능은 신가(神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산을 향해 비는 주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 다.
    많은 이론을 뒷받침해야 되지만 저의 주장으로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부르는 메나리라는 노래와 또 심메마니들이 부르 는 메·나리도 아리랑의 오랜 형태 중의 하나라고 볼 때 강릉에서 신가로 불리는 영산흥(김선풍교수는 상유화도 영산홍으 로 보고 있음)도 아리랑의 한 형태라고 봅니다.
    조금 복잡한 전개지만 메아리→메나리→산유화의 변형과 메아리→아리·어 리·우리→아라리·아리랑의 두 형태로 변형되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출판될「다큐멘타리아리랑」에서 나름대 로 이론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나운영
    김선생의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음악적인 면에서도 어떤 맥이 있습니까?


    김연갑
    네, 있습니다.
    지금 위에서 말씀 드린 메나리, 아라리, 아리랑, 긴아리, 자진아리, 또 아라성이 모두 소위 메나리권입니다.


    고 은
    어려운데요.


    이양상
    오늘 이 자리가 아리랑에 대한 깊숙한 것까지를 다룰 만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학술적인 것들은 다음 기회로 미 루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김연길
    일본에 가서 일본사람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받은 게 바로 아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결 국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학계에서는 해명작업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요.


    이양상
    그에 대한 논문이 20여 편 되더군요


    박재삼
    '아미일영설'이라는게 있더군요. 아라사(러시아)·미국·일본·영국은 조심하는 얘기인 것 같고 또 경주 불국사 근처 의 알영천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김연갑
    그뿐 아니죠.
    양주동 박사, 이병도 박사가 제시한 지명과 관련됐다는 설이 있고, 정선의 고노(古老)들이 얘기하는 '누가 내 마음을 알리요 '하는데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아리고 쓰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 이도 있고, 경복궁 중수 때의 고된 부역과 관 련지어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약 20여 가지의 주장이 있습니다만 모두 고적(古籍) 해석과 견강부회(牽强附會)적인 주장어로 써 아리랑이 민요, 더 구체적으로는 소리에서 근거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양상
    밀양의 아랑과 관련짓는 얘기도 있더군요. 또 진도아리랑 같은 경우는 대금의 명수였던 박종기 선생이 창작했다는 것 과 연관된 얘기도 있고…


    김연갑
    임동권 교수 같은 분은 어떤 뜻을 갖고 탄생된 노래일런지는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뜻이 없는 후렴으로 사용되고 있 는 무의미한 후렴으로 보았고 최근 경향신문의 한 기사에 의하면 불경의 구절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더군요.
    그러 나 대표적인 아리랑이라고 하는 정선아리랑이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횡성에서 얼어리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리랑의 어원을「아리랑」에 한정시킨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이양상
    고 은 선생님이 약속이 있으신지 자꾸 시계를 보시는데 더 많은 얘기는 다음 출판기념회 때 하기로 하고 이쯤해서 마 무리를 지으면 어떨까요.


    김연갑
    예, 고 은 선생님이 댁이 지방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 좌담회의 마무리로서 선생님들께서 말씀하 시지 못한 아리랑에 대한 말씀을 한 마디씩 듣기로 하죠.


    나운영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녹음자료를 보내주시면 채보를 해 드리고 좀 더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할 계획입 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까지의 민요 연구 태도가 너무 어문학 쪽에 치중되어 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음악적 인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결론을 얻지 못했습니다만, 정선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의 관계 나 강원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과의 관계 등은 음악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전 통적인 채보방법과 양악의 채보방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박재삼
    나는 장편 서사시로 아리랑을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고 은
    성급한 결론을 여기서 내리기란 어려운 것 같고…
    문제는 발로 현지답사를 해서 주민들에게 직접 들어보고 같이 불러보고 해야 참 맛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연갑
    네, 문헌상으로나 현지답사를 통해서나 아리랑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숨쉬고 있고 또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온 것만은 사 실인 거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은 연구를 통하여, 또 시인들 은 시와, 혹은 노래로 그 모습을 부각시킬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양상
    어째 오늘 사회를 맡으신 김연갑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을 혼자 다 하시는 것 같아요(일동 웃음)


    김연갑
    네, 오늘「아리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선생님들의 좋으신 말씀을 듣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의 미가 큰 것 같습니다.
    때로는 기쁨 속에서 때로는 슬픔 속에서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해온 아리랑! 그것은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마 음의 정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한국인에게 아름다움이자 진실이고 또한 정입니다. 이렇게 우리들 가슴 속에 흐르 며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아리랑을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단정짓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이러한 자리가 자주 마련되어 더욱 많은 얘기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의 이 좌담회도 그러한 의미 에서 아리랑의 참모습을 아는데 조그마한 받침돌이 되리라 믿으며 오늘 이 자리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연갑의 아리랑에 관한 첫 출판(1986)

    민족의 숨결 그리고 발자국 소리
    아리랑(현대문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