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땅이 기름지다 해서 ?州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흔히 섬하면 어업이 盛할 것이란 선입견이 무색할 정도로 주민들
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하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최상품에 속하는 이곳의 미역, 김등의 海産物은 이곳 진도의 특산품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섬 중에서 꽤 큰 섬(세번째)으로 꼽히는 진도는 섬 전체와 보물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명종 때 金?尹 진도에 와 남긴 글을 보면
「아득한 마음 그지 없는데 / 작은 배 일렁이며 배회하네 / 비가 오니 구름이 섬을 가리고 바람이 이니 물이 하늘에 뜨
는구나 / 안개와 더불어 사는 신선 못됨을 부끄러워 했더니 / 이제 내가 견우성을 범하는 神仙이 되었나니 / 저기는 무
슨 나라, 어느 고을인고 섬 밖에 파란 연기 피어오르네」라고 읊었다.
또 전라관찰사 李叔?의 글에는
「珍島는 그 섬이 아득히 떨어져 있는 천혜의 요새다(天府地之). 그 길이가 오륙십리인데 산이 높고 물이 깊다.
땅이 기름지고 목장이 있어 비단같은 말떼가 들을 덮은 땅이다. 유자나무가 주렁주렁 과일로 숲을 이룬 곳.
이를 일러 보물의 광(?)이요, 재물의 곳집이라 할 수 있어서 일찍부터 사실들의 왕래가 끊길 사이 없었다.
그러나 바다가 섬 오랑캐인 日本과 접해 있어 고을의 인심과 풍속이 완고하고 억셀 수밖에 없었다.」
金?尹과 李叔?의 珍島評은 이곳이 기름지고 우아한 땅이라는 점에선 일치하나, 이숙함의「고을 인심…운운」한 것
은 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歷史的 事實 登場시켜야 할 것 같다.
고려 太祖 王建이 王位에 오르기 前 泰?國장수가 되어 後百濟王 견훤을 칠 때 그는 이 보물의 섬 진도를 먼저 함락
해 이를 터전으로 곡창 나주를 차지했다.
그리고 13세기 몽고군에 끝까지 항쟁했던 삼별초가 찾아든 곳도 진도였고, 14세기 왜구가 잠시 근거지로 삼았던 곳
도 이곳이었다.
또한 진도는 고려가 망하고 李氏 朝鮮이 들어선 이후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기 前 세종 19년(1437년)까지 텅텅 비
워 두었던 기록도 가지고 있다.
지금 이곳 주민의 선조는 선조 이후 인근 海南과 靈岩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진도는 섬이면서도 1906년
까지 영암과 해남에 面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것이 진도의 略史인데 이를 훑어보면 이숙함의 글에서 왜 삭막함을 느끼었나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러나 이런 史的 사실을 뒤로 하고「응응응…」간드러지게 뽑아내는 진도아리랑을 들을 때 과거의 아린 상처는 간 곳
이 없다.
아마도 울돌목 거친 여울과 급류에 슬픔을 몽땅 내어던져버린 모양이다.
대신 풍류와 멋을 珍島의 전유물인 양 꼭꼭 다져내려 오늘의 風物을 이룬 듯 싶었다.
요새 사람들은 진도하면 그저 진돗개 라든지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것들만 연상한다. 그리고 '진짜 순종 진돗개 한 마
리 가졌으면…'. '진짜 바다가 열리는 장관을 한번 봐야 할 텐데…'하는 전도로만 珍島를 이해하며, 所有하려 든다.
現代人에게 所有慾의 충족을 위한 생각을 빼고 뭐 쓸 만한 생각이 있겠느냐 하는 말이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어디 진도의 보물이 돈만 주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인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하는 가락을 어떻게 돈 주고 가질 수 있으며, 강강
수월래를 어떻게 어느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겠는가.
진도아리랑과, 염장 개고리타령, 길꼬냉이, 상사소리, 절로소리 등의 들노래, 강강수월래, 씻김굿 등 진도는 그대로 민속
의 보고(寶庫)였다.
그런데 이 귀한 것들을 상냥한 말 한 마디와 막걸리 한 사발만 돌리면 쉽게 얻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진도를 떠나선 진
짜배기 가락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連陸橋를 건너기 전 그 진정한 맛과 운치는 진도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사람이「문경새재…」하면 다른 사람은「소매끈 졸라매고…」로 받아 밤새도록 가락을 융합시킨다.
그 좋은 갯내 싱싱한 미역에, 만병통치 구기자에, 허술한 다방에도 어김없이 걸려 있는 四君子와 글씨들…
어느 정도 藝에 눈이 트인 사람이라면 앞에 펼쳐지는 진도만이 가진 독특한 향기를 맡아 정신이 몽롱해 질만큼, 南道 섬
風致는 그만이다.
그런데 눈을 조금 삐딱하게 뜨면 진도읍내 멋대가리 없는 양옥집이며, 농사 지어봤자 손해라는 농민의 소리며…
그들이 그렇게 고대했던 연륙교 탓인지 이곳에도 고유의 노래판이 깨질 조짐이 여럿 발견된다.
실제로 藝鄕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육지를 잇는 다리가 개통되고 난 후(84년) 몰려드는 도시 사람의 돈바람이 본질적인 진
도의 멋을 파괴시킬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풍년되어 아리랑 노래 부르고, 굿판 벌여 놓고 춤과 노래로 한바탕 어울려 놀던 순수한 마음들이 그저 돈 많이 버는 것 만
큼 즐거워 한 대서야 진도가 진정한 민속의 寶庫라 불릴 수 있겠는가?
진도대교를 되돌아 건너며 조담환씨가 들려준「진도아리랑」전설을 정리해 봤다.
「진도 한 당골에 한총각이 살았지. 풍채 좋고 기골이 당당한지라 뭇처녀들이 가슴 조이면 총각을 사랑했겠지…
하지만 당골에선 서로 끼리끼리 결혼해야 했는데 워낙 기질이 있었던 총각은 이런 습관을 용납 못한거야.
그러니 도망힐 수밖에… 간 곳이 대구 어디였는데 거기서 이 친군 머슴살일했지… 그러다 주인딸하고 연앨하게 되고, 주
인집에서야 머슴놈한테 딸을 누가 주나? 그래 또 총각은 도망한 거야.
이번엔 어여쁜 처녀를 데리고 말야…
그때 넘던 고개가 문경새잰데, 그래서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하는 가사가 생겼다는 거지.… 이들이 진도에 들어오니까 고
향에선 큰 날 리가 났어 왜냐면 무속 집안에 양가집, 그것도 육지 양반네 딸이 자기들 무법을 계승하려구 들어 왔으니… 이
거 큰 경사로 여긴 거였어. 결국 이 여자는 당골의 유습대 내림굿을 해서 세습무가 됐고, 바로 이 굿판에서 동네사람들이 이
여자의 미색과 신분을 흠모해서 부른 노래가 진도아리랑의 시원(始源)이라 이런 얘기였지…」
얼큰히 취기가 오른 원장은 연방 줄담배를 빨며 구수한 얘기를 들려줬지만 그의 구수한 구변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소리와 몸짓에서는 진도 사람만이 가진 끈끈한 그 무엇인가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설과 함께 전해지는 얘기는 귀 기울일 만한 것이다. 아리랑의 맥을 찾는 일이기도 한데 왜 정선아리랑과 진도아
리랑은 곡과 노랫말이 판이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아리랑으로 묶었으며… 또 본 노랫말과 어울리지 않는 후렴은… 어찌된
연유일까?
가장 세련된 민요 중의 하나인데 어딘가 전문인의 손이 갔음 직한 맛은 뚜렷하다. 특히 판소리의 맛은 뚜렷하다.
그 얘기는 1900년도 초반에 우리나라 대금의 효시오 창시자인 임회면 산막리 출신 박종기 선생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러한 사실은 문공부 문화재 수석전문위원인 이곳 출신 난개 박진주, 인간문화재 박병천, 민속에 조예가 깊은 구춘홍의 말
에 힘입어 신빙성이 높다.
당시 신청(神廳)에서 박종기 선생을 비롯하여 박진천, 박동준, 채중인, 양홍도 등이 함께 모여 아리랑을 작사·작곡을 했
다 하는데 진도아리랑의 장단은 세마디 장단이며 선율은 시나위형으로 중머리 장단에 불리어진다.
'휘영청 달 밝은 밤 광나루에 배 띄우고 / 진도아리랑 가락에 흐르다 멈춘 강물을 밀치고 가르며 두둥실 떠 내려가네 / 서
산에 지는 해는 지고싶어 지느냐 / 날 두고 가신 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휘어
질 듯, 꺽이울 듯하면서 이어지는 가락이다.
분명한 것은 진도아리랑이 창작이라 해도 그 멋, 그 맛은 언제나 진도의 아리랑맛 그대로일 것이다.
버스는 흔들거리며 밀양읍내로 들어섰다. 아무런 특색 없는 거리 위로 내리쬐이는 햇빛이 벌써 뜨겁게 느껴진다.
밀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밀양강(전에는 南川江)가에 평양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루인 영남루가
있고, 그 밑에 아랑閣(이 아랑閣의 정식명칭은 貞純아랑閣)이 자리잡고 있다.
밀양 사람들에게 이 아랑閣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전설상의 인물 阿 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으니, 후세의 밀양 사람들도 그만큼 절개가 곧다는 의미와 전국 각
지에서 부르는「아리랑」이 바로 이 阿 으로부터 유래되었는지 하는 믿음을 지니게 한다.
아직「아리랑」이 언제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아리랑이 아랑에서 나왔다는 이들의 믿음을 입증
할 길이 없지만, 점필재 김종직, 변계량, 사명당 등 절개 곧은 人物들이 배출된 면에서 보면 아랑 설화도 같은 정신적
줄기인 듯 싶다.
아랑의 傳說은 李朝 明宗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府使로 있던 尹某에게 한 딸(아랑)이 있었는데 나이는 열여섯이요, 재주와 미모가 뛰어나 윤부사 부부는 이 딸을 애
지중지했다. 그래서 관아 뒷편 별당(衙後別堂)에 유모를 붙여 침식케 했는데 어느 날 저녁 유모가 큰 소리로 호랑이가 낭자
를 물어갔다고 외쳐댔다.
윤부사는 크게 놀라 아졸들을 풀어 낭자를 찾게 했지만 낭자는 간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尹府使 부부는 병이 나 서울
로 돌아가 버렸는데, 그 이후 밀양에 부임하는 부사는 부임하자마자 원인 모르게 죽어가 누구도 밀양에 부임하기를 꺼려
했다. 그렇게 몇해를 지난 후 서울 사는 進士 李某가 나이 사십이 되도록 과거에 급제를 못하고 팔도를 떠돌다가 영남루
에 다달았다.
여기서 李進士는 아랑의 혼백과 만나게 되고 아랑의 혼백은 그에게 자초지종 자신의 애통함을 들려주면서 한을 풀어주
실 간청한다.
이진사는 그길로 상경하여 과거를 보고, 또 급제해 밀양에 부임하기르 자청한다. 그러나 정착 그가 밀양에 당도했을 때 관
속들은 신임 이부사가 다른 이들처럼 첫날을 못넘기고 죽으려니 생각하고 저희들끼리 수근대며,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관속들에게 명하여 尹부사 이후로 관에 근무하던 아졸을 열람해보니, 과연 원귀가 알려
준 대로 朱氏誠을 가진 通引이 있었다. 부사는 곧 통인을 수색하여 그를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형틀에 묶어 놓고는
"내가 윤소저를 죽인 흉악한 죄상을 모두 알고 있으니 네 입으로 시인하라"고 질타했다. 이에 통인도 이부사가 결코 범속
한 인물이 아님을 깨닫고 자백하기를, 자기가 윤낭자를 한번 보고 마음속으로 흠모하다가 신분이 다른 탓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처지여서 돈으로 유모를 고여 남자를 영남루까지 유인해서 욕심을 채우려 했다. 그렇지만 낭자가 완강히 저
항하자 아랑을 칼로 찌르고는 시신을 근처 대나무밭에 묻었다고 실토했다.
마침내 진상을 밝혀내고 이부사는 즉시 이 소식을 서울에 있는 윤부사댁에 알려 유모를 압송, 통인과 대질 신문한 결과 모
든 일이 부합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통인과 대질 신문한 결과 모든 일이 부합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통인과 유모는 장살
(杖殺)되고, 낭자의 시신을 잘 안장시키니 以後로 다시는 신임 부사가 횡사하는 참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한편의 미스테리극을 보는 느낌이다. 이 전설은 주로 장지연이 채집한 것을 토대로 했는데 여럿 있는 아랑전설 가운
데 가장 짜임새 있고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필자의 추측이 약간 가미된 것이지만 여담격으로 한마디 삽입시켜볼까 한다.
다름 아닌 아랑에 관한 말인데, 밀양에서 언제부터 失明 人物 尹낭자가「아랑」으로 불려졌는지 정확히 究明할 길이 없
다. 단순히 장지연의「5백년 기담」을 읽어 보면 윤낭자가 거처하던 곳이「衙後別堂」이고 이 처녀는 관아 뒷 별당에 사
는 낭자(아랑)인 것이다. 따라서 이 낭자의 별칭이 衙랑 (아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혹시 이 衙랑 (아랑)이 고유명사
화 되어 阿랑(아랑)이 된 것은 아닐지.
물론 여담이다. (밀양에선 아랑의 本名을 東玉이란 한다)
해마다 4월이면 화사해지는 봄빛에 맞춰「밀양아리랑제가 거행된다.(4월 16일)
그 뜻은 아랑의 정절을 기리고 넋을 달래기 위한 것이지만, 신록과 더불어 벌어지는 잔치이기에 밀양 사람들의 봄맞이 축
제의 여운이 더 강하다.
모처럼 좋은 옷으로 갈아 입고 짓푸른 밀양강(예전의 南川江)가에서 하루 해를 보내는 즐거움이 지금 사람에겐 아랑의 전
설에 앞서 더욱 설득력 있는「아랑제」의 의미인 듯도 싶다.
그러기에 유독「밀양아리랑」은 봄빛깔에 맞춰 경쾌하고 삶의 어두운 모습이 보이질 않는가 보다.
저녁 식사를 일찌감치 마치고 단장면 표충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기왕에 밀양까지 와서 사명당에게 인사 한번 안 드린
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